게시교육 : 어린 날의 페르소나

by 스마일한문샘

열여덟 살 3월, 미술 선생님께서 부르셨습니다.

"한자 글씨 잘 쓴다며? 게시교육 써 봐."

순간 콩당콩당...... '작년 선배처럼 잘 쓸 수 있을까?'

얼결에 말씀드렸습니다.

"저보다 더 잘 쓰는 친구가 있는데, 같이 써도 될까요?"

그렇게 저는 고사성어, 궁서체로 글씨 쓰는 친구는 영어 숙어를 쓰게 되었습니다.

3월 넷째 주부터 게시교육 있어 매주 토요일 오후에 운동장 앞 게시판을 열었습니다. (그때는 주 6일제라 토요일에도 등교했습니다.) 처음 쓰는 날 손이며 마음이 왜 그리 떨리던지요. 그래도 친구와 같이 써서 덜 쑥스러웠답니다. 오며가며 응원해 주는 친구들 덕분에 발개지는 볼을 꾹꾹 눌러 가며 썼습니다. 다 쓰니 오후 2시? 코끝으로 다가오는 따스한 바람 맞으면서 유리문을 닫았습니다.

多多益善(다다익선), 塞翁之馬(새옹지마) 같은 사자성어가 많았고 五十步百步(오십보백보), 敗軍之將不言勇(패군지장불언용)처럼 꽤 긴 말도 있었습니다. 긴 성어 쓰는 날은 글씨 크기, 간격 맞추는 게 일이었습니다. 쓰다 영 아니다 싶으면 다 지우고 다시 쓰고, 한참 쓰다 이슬비가 찾아와 비 맞으며 쓴 적도 있습니다. 그렇게 쓰면서 점점 글씨가 늘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3월과 11월의 글씨는 부쩍 다릅니다.

학년말, 1년간 수고했다고 학교에서 봉사상과 일기장을 받았습니다. 뜻밖의 상도 기뻤지만 토요일마다 학교 칠판 쓰던 시간이 남모를 즐거움으로 남았습니다. 오후 햇살 받으며 한 자 한 자 쓰던 순간, 잘 쓴다고 칭찬하던 친구들, 열심히 쓰라고 격려해 주시던 여러 선생님들을 기억합니다. 가끔 칠판 필기가 버거울 때마다 초록 교복 입고 초록빛 게시판에 사각사각 글씨 쓰던 날을 돌아봅니다.

게시교육 자료. 오랜 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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