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4교시. 『명시암송집 · 독서록』 나누어 주고 쓰는 방법 설명하면서 "저는 읽은 책 목록 얼마나 썼을까요?"
"25년이요."
"정답! ㅇㅇ이가 바로 맞췄네요. 1학년 처음입니다."
순간 "우와~~~"
ㅇㅇ이도 멋쩍어하지만 기분 좋아 보입니다.
"25년간 읽은 책 목록 쓰면서 어떤 게 좋아졌을까요?"
"정리를 잘하게 됐을 것 같아요."
"네. 맞아요. 전 INTP, 인팁입니다. 인팁의 특징이 정리정돈 잘 안 되는 거잖아요. 읽은 책 목록 정리하다 보니 정리를 잘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제 성격을 뛰어넘은 거죠."
10대 중반까지 잘 적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중등부 주보 만들고 예배 설교 요약하면서 쓰는 습관이 붙었습니다. 결정적으로 메모의 불을 지핀 건 고1 때 하나수첩. 쓸 말 많아 작은수첩까지 만들면서 쓰고 정리하고 가다듬어 갈무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스마트폰 쓰고부터는 메모장과 블로그를 공책처럼 씁니다.
묘계질서(妙契疾書)라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빨리 메모한단 뜻입니다. 성호 이익과 다산 정약용 덕분에 유명한 말인데, 주희(朱熹)의 <횡거선생찬(橫渠先生贊)> 중 "정밀하게 생각하고 힘써 실천하며,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재빨리 기록했다[精思力踐, 妙契疾書]."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횡거는 중국 송나라 때 유학자 장재(張載)의 호입니다.
쓰다 보니 정리하게 되고, 기록이 쌓이니 자료가 됩니다. 좋은 걸 보고 들으면 후기로 다듬으니 어떤 날은 해묵은 메모에서 깨달음을 얻습니다. "적을 때 생각은 기록이 된다."(정민, 『책벌레와 메모광, 149쪽)를 오래 담으면서 오늘도 한 자 한 자 옮깁니다. 좋은 일은 고운 그림으로, 슬픔이나 막막함은 글쓰기의 연료로.
아직은 온보다 오프가 편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