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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Jun 09. 2021

자궁근종 수술 후기 #01 수술 확정, 눈물이 펑펑



2020년 8월 어느 날, 종합검진에 다녀오던 길. 집에 오는 길에 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검진의 막바지 무렵, 초음파 검진 때 자궁근종이 꽤 크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가슴에 돌이 들어앉은 것처럼 먹은 것도 없는데 체한 느낌이었지만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남은 검진을 마치고 밥을 먹으러 향했다. 태연한 척 찜닭에 볶음밥까지 맛있게 다 먹은 후 커피를 사던 순간, 밥 먹던 내내 뻐근하듯 묵직하던 눈에서 분수가 터지듯 눈물이 흘러나왔다.


이 날 따라 초음파 검사 때 배 쪽에서 오래도록 움직이던 선생님의 손.


"자궁근종 있는 거 아시죠? 6cm가 넘는 것 같네요."

"다른 근종들도 보이는 것 같은데, 산부인과에 가서 꼭 재검진받으셔야 합니다."


검진이 끝난 후, 걱정이 가득한 마음으로 배에 덕지덕지 발라져 있던 젤을 닦아냈다. 닦아도 닦아도 남아 있는 듯한 젤이 내 몸 안에 있는 근종의 존재를 확실시하는 듯 느껴져 불쾌했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문을 열자 눈이 부신 햇빛이 병원 창문을 통해 쏟아졌다. 그 틈에 보이던 남편의 해맑은 얼굴. 진짜 거짓말 아닌가? 이 방에서 대체 무슨 얘길 들은 거야. 이게 갑자기 왠 날벼락이지?



결국 이렇게 수술대에 눕게 되는 건가. 이런 일이 이렇게 말도 안 되게 갑자기 찾아오나?

배에 흉터가 남으면 어떡하지. 만감이 교차했다.



결혼 전 산부인과에서 검진을 받을 때 근종이란 존재를, 그 뜻을 처음 알게 됐다. 처음 선생님께 근종이란 단어를 들었을 땐 혹시 이게 암인가 하는 마음에 사색이 되어 눈물이 또르르.

하지만 암과는 전혀 상관이 없으며 내 자궁 속 근종들은 크기도 작고 자리한 위치들도 전혀 문제 되지 않으니 아직은 걱정 말란 말씀을 듣고 마음을 놓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이후로 금방 없어질 줄 알았다.









역대급 장마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 잔뜩 흐리고 비가 내리는 날씨에 더 기운이 빠졌지만 마음을 다독이며 가입했던 근종 카페에서 정보들을 찾아보았다. 내가 갖고 있는 근종보다 훨씬 큰 근종을 가진 분들도 계셨는데 대부분 근종의 크기가 6cm를 넘기면 수술을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수술이 확정되어가는 느낌. 엄마는 나를 보며 속상함을 감추지 못하셨고, 그 모습을 보는 나는 더 속상해졌다.




차라리 어디가 아팠더라면. 그래서 하는 수술이었다면 좀 더 후련하게 마음을 먹었을 텐데. 아무 증상도 없이 살다가 갑자기 알게 된 근종이란 존재. 그리고 검색하면 할수록 더 선명해지는 수술 여부. 갑자기 도살장에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자궁이라니.. 왠지 억울하고 속상했다.


한 일주일은 실컷 울고, 그다음부터 평정심을 가진 뒤 근종 카페에서 열심히 정보를 수집했다.



단일공, 복강경, 개복수술, 로봇수술, 하이푸, 경화술 등- 근종 제거를 위한 수많은 수술과 시술들이 있었고

그 많은 정보들과 후기들은 간신히 평정심을 유지하는 내 마음에 폭풍우를 일으켰다가 다시금 잠잠하게 했다가 끝도 없는 요동을 치게 했다. 사실 수술 전후의 시기보다는, 진료 보기 전 정보를 검색할 때와 진료 후 수술 날짜를 기다릴 때가 제일 마음이 힘든 시기이다. 걱정, 불안, 두려움으로 마음이 옭아매어진 시기.



내가 찾아본 원장님은 배꼽에 구멍 하나만을 내어 근종을 제거하는 단일공 복강경으로 아주 유명하신 분이었다. 배에 칼이 닿은 흉터도 남지 않고 다른 부위에 구멍을 뚫을 필요도 없고- 배꼽만 뚫어 배에 흉터가 보이지 않는 수술.


같은 병원에서 수술하신 분들의 수술 후기도 좋았다. 마취가 풀린 후 너무 고통스러워 울기만 했다는 분들이 계셔서 무서웠는데, 이 병원에서 수술하신 분들은 마취에서 깨어나신 후 회복도 빨랐고, 별다른 통증 이야기도 하지 않으셔서 더 마음이 끌렸다. 무엇보다 원장님께서 근종을 아주 꼼꼼히 제거해주신다는 이야기. 입원기간을 보낼 병동 시설도 좋아서 진료예약을 하러 전화를 걸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10월, 진료 날이 다가왔지만 이 시기에 급성신우신염에 걸리는 바람에 다시 예약을 한 달 뒤로 미루게 되었다. 그렇게 기다리다 다가온 예약 날인 11월 19일.


역시나 내가 예약한 원장님의 환자분들이 엄청나게 많았고, 예약한 시간인 4시 20분을 훌쩍 넘은 시간에서야

선생님을 만나 뵐 수 있었다. 떨리고 무서운 마음도 컸는데 옆에 같이 가신 엄마가 더 걱정하시는 듯 보여 너무 속상했다.


잠시 문진을 하고 초음파 검사로 자궁을 보기로 했다. 벽 너머에서 옷을 갈아입고 의자에 앉아 선생님, 간호사님과 함께 검사를 시작했다.





제일 먼저 6.3cm 근종을 함께 보았다. 모양이 이렇게 될 때까지 왜 병원에 안 왔냐고 하셔서 검진 시작부터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근종 수술 시의 상황도 역시 감자 비유를 하셨다. 단단한 감자는 꼬챙이를 쑤욱 넣으면 한 번에 집히지만, 안이 무너진 감자는 꼬챙이를 넣으면 한 번에 집히지 않는다는 말씀. 꺼낼 때 쑤욱- 꺼내지지 않고 구멍 난 감자처럼 무너지기 때문에 수술할 때도 어려움이 있다는 말씀에 벽 너머 엄마의 한숨이 들려왔다. 엄마는 내심 근종이 작아졌다는 이야기를 기대하고 오셨기 때문이다. 엄마! 아니야~ 기대를 버려!

여기에 더해 다른 작은 근종들도 4개가 더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정도면 빈혈과 빈뇨가 있었을 거란 선생님의 말씀. 하지만 종합검진 피검사에서도 전혀 이상이 없었고 화장실도 마시는 물의 양에 비해 남편보다 훨씬 덜 가는 편이었던 나인데. 이게 바로 무증상 근종이란 건가? 하긴 그랬으니 병원에 갈 생각을 하질 못했지. 하혈도 없고, 생리통도 친구들에 비해 평범한 수준이었던 나. 물론 PMS는 있었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생리 때 더 피곤한 느낌도 있었으며 덩어리 혈이 많이 나오긴 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평범한 생리 증상인데. 초음파 내내 무럭무럭 자라난 근종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터벅터벅 다시 속옷을 챙겨 입고 진료실 의자에 힘없이 앉았다.


선생님께서 다발성 근종은 재발률이 높으니 이번에 수술을 하게 되면 수술 후 6개월 뒤에 깨끗한 자궁으로 빨리 아이를 가지는 게 좋다고 하셨다. 아기 계획은 전혀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나처럼 마음먹고선 나중에 후회하고 오시는 분들이 많다고 단호하게 얘기하시는 선생님.

어떻게 쭉 계획이 없다고 장담하냐고 되물으셨는데, 나도 단호하게 계획이 없는 마음을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이 때는 근종 수술을 받아야 함이 확정된 상태라 그런 설명을 드리기도 너무 벅찰 정도로 힘이 들었다. 여기에 더해, 자궁은 계속 수술하는 게 좋지 않으니 2번 이상 재발하면 자궁적출을 고려하자는 말씀까지 들었다.





적출 이야기에서 엄마가 참았던 눈물을 살짝 보이셔서 너무 놀랐지만, 동시에 갑자기 마음이 담대해졌다. 이제 나도 30대가 되어서일까. 엄마의 눈물을 보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강한 무언가가 꿈틀대며 올라오는 묘한 기분이 느껴졌다. 용기, 담대함, 평정심. 갑자기 모든 걸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어차피 해야 할 수술이라면 빨리 해내고, 우리 엄마가 속상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마음. 선생님의 수술 자신감과 꼼꼼한 수술 진행 및 마무리 이야기까지 싹 듣고 나니 다른 병원은 더 이상 가고 싶지도 않았다. 이미 정보를 충분히 알아보고 이 병원에 왔으니 여기서 선생님께 수술받기로 결정.

안 그래도 선생님 진료 보기도 힘든데 어물쩍대다 수술 날짜가 더 미뤄지면 내 마음만 힘들 것 같아서 제일 빠른 수술 날짜로 부탁드렸고 아주 다행히도, 12월 8일 첫 수술이 가능하단 이야기를 들었다!




채혈을 제일 싫어하는 나이지만 이때만큼은 엄마의 눈물을 보고 나서 담대함이 급상승하여 인생 최초로 두려움 없는 채혈을 마쳤다. 빈혈도 없고, 나머지 부분들도 문제가 없어서 나의 수술 날짜는 완벽히 확정이 되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야 결과를 알 수 있는 검진 사항들에서 혹시 문제가 생긴다면 따로 전화를 주실 것이고,  여기서 이상이 있는 부분은 다른 병원에 가서 재검사를 진행하고 와야 한다고 하셨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상황보고를 하고 용감하게 밥을 우걱우걱 먹은 뒤, 컴퓨터 앞에 앉아 수술 전 필요한 준비물들을 메모장에 차곡차곡 정리해 보았다.


일단 치과 예약. 수술하려면 교정 유지장치를 제거해야 한다고 하셔서 치과에 전화해 유지장치 제거 예약을 했다. 그리고 왁싱을 해야 하나 고민에 잠시 빠졌다가, 수술 전 소중한 2주 동안 마지막 만찬들로 무엇을 먹을지를 생각했다. 또 수술 후 필요한 압박스타킹은 어떤 제품이 좋을지, 마이비데, 산모용 패드, 이런 것들을 검색하며 오직 수술만 머릿속에 가득한 저녁시간을 보냈다.





결국 진료 당일에 수술 날까지 정하였고 이렇게 여러 가지 감정들이 뒤섞인 하루를 보냈다. 씩씩한 마음과 슬픔, 두려움이 공존했던 아주 지치는 하루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다 잘해왔듯, 이번 일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뜨거운 물로 샤워한 뒤 꾸역꾸역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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