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나 Jul 23. 2021

어두운 터널을 걷는 친구를 위로하는 방법




나도 알고 친구도 아는 문제, 그리고 둘 다 아는 그 문제에 대한 답.

아는 답대로 다 행동할 수 있다면 감정, 인간관계, 일 모든 게 다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안될 정도로 마음이 무너져서 친구가 나를 찾아오는 것이고, 나 역시 그런 날 친구를 찾아가는 것이다. 이미 다 아는 이야기와 답이지만, 홀로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할 심적 여유가 없는 날은 믿을만한 누군가에게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놓게 된다.



충고와 현실적인 조언이 진정으로 필요한 날이 있고, 또 그런 말들이 심히 따갑고 매섭게 들리는 날이 있다.

사회성이 바닥이 아닌 이상 내 앞에 앉은 친구가 진짜 충고를 원하는지, 아니면 지금의 조언과 충고가 마음을 와르르 무너지게 할지는 진심 어린 대화로 알 수 있다. 모진 충고가 필요한 날도 있지만 앞에 당장 무너져가는 사람이 있을 땐 일단 마음부터 잡아주는 게 우선이다.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것도 위태로워 보이는 친구에게 현실 조언? 친구가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큰 죄를 짓지 않은 이상 그건 진정으로 친구를 위함이 아니다. 나약한 자기 자신보다 더 약해 보이는 친구를 보며 위안 삼고, 그를 보고 안도감을 느끼며 몇 마디 조언으로 관계의 우위에 서고 싶어 하는 얄팍한 마음.




안 그래도 매섭고 차가운 세상인데 기대 보겠다고 온 친구에게 뼈 때리는 말 따위 정말 하고 싶지 않다. 내가 뭐라고. 요즘엔 우울한 사람에게 힘내라는 말이나, 네가 예민해서 그렇다는 말 등의 이상한 조언을 하지 말라는 얘기들이 잘 퍼져있어서 다행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퍼진 건 그만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많다는 거겠지.




공허함과 헛헛함을 이미 안고 온 친구에게 또 다른 공허함을 주고 싶지 않다. 아니, 내 친구도 똑똑해서 이미 정답은 다 안다고! 세상에 현실적인 정보를 얻을 곳은 이미 엄청나게 많다. 지식인, 커뮤니티, 인스타, 블로그 등. 나한테 그런 정보성 얘길 들으려고 찾아온 건 절대 아니다.




나도 이런 적이 있어봐서 잘 안다. 너무 무너질 것 같은 날, 한 걸음씩 집에 가기도 힘든 날. 집에 돌아가 씻고 마주할 적막함이 두려운 날. 잠을 자려고 불을 껐을 때가 버거운 날. 그런 날은 잔뜩 고인 마음을 흘려보내고 싶다. 사려 깊은 친구를 만나 함께 마음을 흘려보내고 나면, 저기 숨어있던 용기가 점점 존재를 드러낸다.




이렇게 용기를 내서 마주하는 날이 하나 둘 흘러가며, 힘든 터널의 시간도 조금씩 지나간다. 그러면 어느새 기대지 않고도 홀로 문제를 마주할 수 있는 날이 온다. 무거운 감정으로 칭칭 옭아매여 있던 마음이 자리를 잡으며, 이성적으로 건강하게 문제와 마주하는 날이 온다.



나도 터널을 걸어봤기 때문에 그 적막함, 두려움, 외로움을 잘 알고 있다. 그럴 때 터널을 걷는 나를 다그치는 건 정말이지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터널 속에 주저앉아 물도 식량도 낭비하게 만들 뿐. 충고와 조언도, 터널을 나와 숨을 몰아쉴 수라도 있게 될 때, 그때 해야 들을 수 있다.


물론 노력 없이 용기를 내는 수고도 없이 매일매일 앓는 소리만 하는 건 절대 안 될 일. 하지만 그렇지 않던 친구가 어느 시기에 긴 터널을 걷게 된다면, 그 손을 꼭 잡아주고 필요할 때 함께 걸어주는 것. 그게 중요하다. 그래야 소중한 사람들을 오래오래- 무탈하게 볼 수 있다.


나는 정말이지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다.

오래도록 손을 잡아주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무기력증을 한 방에 날려버린 급성신우신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