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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Jun 23. 2021

자궁근종 수술 후기 #6 앞으로 뭘 먹고 살아야 하지?

회복기 / 야즈정 부작용, 먹거리 때문에 스트레스 폭발!




수술 후 집에 돌아와 청소도, 식사 준비도 할 수 없었던 나는 가족들의 도움을 받으며 출산한 산모가 산후조리를 하듯 지냈다. (난 근종을 낳은건가?) 엄마가 가까이 사셔서 참 다행이었다.


근종 카페에서 정보들을 찾아보면, 근종 수술 이후엔 잘 먹고 잘 쉬어줘야 그 이후에도 체력 저하나 몸의 이상없이 오래도록 무탈하다는 이야기가 많다. 엄마는 나의 몸조리를 위해 질 좋은 한우와 미역을 사다가 미역국을 한 솥 가득 끓여주셨다.




그러나 수술 후 먹지 말아야 할 음식 중 하나가 바로 붉은 육류였다. 내가 수술을 받은 병원 의사선생님의 공식 말씀은 아니지만 근종 카페, 그리고 개인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여성 호르몬이 들어간 음식은 당연히 좋지 않고, 붉은 육류, 우유, 카페인, 찬 음식, 튀김류 전부 다 자궁 근종 환자라면 피해야 할 음식이다. (김봉석 원장님께 뭘 먹지 말아야 하는지 여쭤봤을 때, 원장님께서는 여자 몸에 좋다는 건 쭉 피하라고 하셨다. 그 중 단호하게 말씀하신 단 하나는 바로 두유였다.)




미역국 속 고소하고 맛있는 소고기는 단 한 점도 먹지 못하고 외래진료까지 미역과 국물만 먹었다. 보통 수술후엔 육류로 단백질을 보충하지만, 내게 허락된 육류는 오직 하얀색 뿐. 그것도 모두 굽거나 찌고 삶은 것으로만 먹어야 한다. (물론 수술 후 6개월이 지난 지금은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아서 아무거나 다 잘 먹고 있다) 하지만 붉은 육류 없이도 미역국과 건강한 반찬만으로도 최고의 한 상이었다. 몸의 모든 세포가 회복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지, 모든 음식들이 단 한 번도 질리지 않고 늘 맛있었으며 항상 배가 고팠다.



일어나 엄마네 집에 가서 아침식사를 하고 쾌변한 뒤 잠을 잤다가, 또 일어나 점심을 먹고 쾌변한 뒤 낮잠을 쿨쿨 잤다. 나는 이렇게 낮잠을 자주 자던 사람이 아닌데, 잠이 엄청나게 쏟아졌다. 아기가 된 기분이었다. 변은 매일 하루에 3번이나 봤다. 그것도 모두 건강한 변으로만!

자고 먹고 약간의 노동도 하지 않고, 일말의 스트레스도 받지 않으니 피부가 뽀얘졌다. 사람이 윤기가 도는 느낌이 이런걸까? 수술한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건강해보이던 내 모습.


무거운 것도 들지 말고 청소도 하지 말라셔서 정-말 공주님처럼 지냈다. 게다가 이렇게 쉬기만 했는데 살도 2kg나 빠져 뱃살이 없어지는 놀라운 일까지! 역시 건강한 걸로 챙겨 먹고, 잠도 잘 자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니 사람이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다만 자궁 내 고여있던 피가 계속 조금씩 나와서,(정상적인 과정) 처음엔 편히 누워 지내도록 팬티형 생리대를, 나중엔 팬티라이너를 차고 지내야 했다. 그렇게 지내다가 간 첫 외래 진료.



자궁이 좀 부어있긴 하지만 곧 괜찮아질거라 하셨다. 그리고 이 날 이후로는! 드디어 샤워가 가능하다고 하셨다. 방수 테이프를 붙여야 한다는 언급도 없으셨으니 이것은 수술한 배꼽에 물이 바로 닿아도 된다는 이야기! 하지만 난 겁이 많아서 이틀 정도는 방수테이프를 붙인채로 샤워를 했고, 그 이후에서야 배꼽에 물이 닿는 걸 허락했다.



드디어 나도 야즈정이란 걸 먹는구나. 비잔이고 야즈고, 이런 피임약들은 익히 들어온 부작용들 때문에 정말 먹고 싶지 않았다. 근종 수술 후 대략 세 달 정도는 아물지 않은 자궁의 상처로 인해 생리양도 많고 아플수가 있으니 피임약을 먹으며 생리양을 줄이는게 좋다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약을 받아왔다. 약국에서 약을 받으며 부작용을 여쭤보니, 부작용이 수백가지라 직접 읽어보는 게 낫다는 약사님의 말씀에 또 다시 걱정의 세계로 빨려들어가던 그 날의 나.



그렇게 집에 돌아와 야즈정을 먹었는데, 첫 일주일은 아무 부작용도 없었다. 오, 내가 그 부작용 없는 드문 1인인가? 이제 살도 빼고 건강하게 살아보자-! 생각했는데, 일주일이 지나면서 물설사가 시작됐다.

걷기 운동을 위해 밖에 나갔다가도 물설사 때문에 집에 뛰어오는 난리통을 겪었다. 갑자기 밀고 나오려는 설사 때문에 도저히 밖에서 산책을 할 수가 없어, 두꺼운 양말을 신고 집을 걸어다니며 만보를 채웠다.

장이 열심히 자리잡는 기간에 벌어진 일이라 변의가 밀려오면 더더욱 참을수가 없었고, 도저히 바깥 외출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외식 한 번 했다가 또 밀려오는 변의에 너무 괴로워서 울면서 집에 와 폭풍 설사를 하고 나니 야즈정에 아주 질려 버렸다. 그렇게 물설사는 점점 심해져 하루에 기본 5회를 넘기게 되었고 극심한 체력저하가 느껴지며 피로감이 몰려왔다.



이건 수술 후 회복에도 전혀 좋지 않다고 느껴져, 병원에 다시 전화를 걸어 사정을 말씀드렸고 약을 중단했다. 수술 후 첫 생리 때 피가 펑펑 나오고 아프더라도, 그 고통이 더 낫겠다고 느껴질 지경이었다. 몇 날 며칠을 약 부작용으로 시달리다보니 온 몸에 힘이 다 빠지고 우울함까지 밀려왔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먹으려고 애를 쓰긴 했다. 간호사 선생님 말씀처럼 3번만 더 참고 먹어볼까 했지만 그렇게 참다가 하루에 10번까지 설사가 늘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속상했던 극심한 체력저하. 걷기운동도 못하고 침대에만 누워있게 되자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야즈정을 끊은 그 다음 날, 설사는 거짓말처럼 바로 멎었다. 그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설사를 하지 않았고 다시 평상시처럼 회복에 힘쓸 수 있었다.



다발성 근종은 언제 재발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수술 후 첫 외래 진료임에도 괜히 마음이 불안했지만, 다행히 수술한 이후로 자궁도 깨끗하고 자궁 모양도 아주 예뻐졌다고 하셨다. 여전히 다른 문제도 없고, 자궁 내 피고임도 다 빠진 상태였다.

※ 외래진료를 받을쯤에 생리를 시작했는데, 통증도 양도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덜했다. 그리고 두번째, 세번째 생리로 향할수록 생리통과 생리양이 현저히 줄어들어가는 걸 느꼈다. 지금은 생리통이 아예 없어져버렸고 생리기간도 확실히 짧아졌다.





외래 진료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오랜만에 큰 맘 먹고 크림 파스타를 먹으러 갔다. 유제품과 밀가루의 콜라보이지만 오래도록 참았으니 상처럼 먹어주기로 했다. 참나, 크림 파스타가 이렇게 맛있었나? 맛있어서 눈물이 나다니. 하지만 정말 눈물이 고일 정도로 맛있었다. 야즈도 이제 안 먹어도 된다는 원장님의 말씀을 듣고 와 후련한 마음까지! 임신 계획에 대해 다시 물어보셔서, 아직 계획이 전혀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돌아왔다.



근종을 겪고 나서 환경 호르몬, 여성 호르몬을 모두 조심하고 있다. 대부분 의사 선생님들이 금지하시는 두유, 석류, 홍삼류는 전부 피하고 있다. 처음엔 밀가루, 카페인, 유제품, 베리류, 붉은 육류를 가차없이 다 끊어냈지만-



못 먹어서 스트레스 받는 건 사람을 너무 우울하게 만든다. 솔직히 몇 번 울었다. 근종에 좋지 않은 음식이 세상에 이렇게 많다니. 아니 사실 이건 음식의 원재료 그 자체보다도, 우리의 먹거리와 실생활에 깊숙히 침투한 환경호르몬 때문이다. 다 인간의 욕심때문에 벌어진 일. 되돌려 받는 느낌이라 뭐라 할 말도 없다.

세상에 먹을 수 있는게 너무 줄어드니 진심으로 우울했다. 차라리 그냥 조금씩 먹고, 안하던 운동을 자주 해서 땀과 노폐물을 빼기로 마음을 바꿨다. 스트레스가 근종에 주적이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근종 수술 이후로 먹는 것, 쓰는 것들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수술 후 6개월이 지난 지금은 허용하는 것들이 늘어났지만, 꾸준히 안 쓰고 안 먹고, 덜 쓰고 덜 먹는 것들도 있다. 앞으로 내가 꾸준히 관심을 갖고 관리해야 할 내 자궁. 힘들게 수술한만큼 최대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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