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나 Jun 21. 2021

자궁근종 수술 후기 #5 병원 안녕, 드디어 집으로

단일공 복강경, 폭풍 회복이 맞았어



수술 + 3일 차 (금요일)


떡지지 않은 머리카락과 세안 후 로션을 발라 결이 정돈된 피부, 깨끗한 환자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기침할 때, 옆에서 남편이 웃길 때는 배가 당겨서 좀 힘이 들지만- 걷기 운동할 때도 속도가 더 붙었고, 무엇보다 확실히 덜 지치는 게 느껴졌다.


아침부터 나오는 밥도 얼마나 맛있던지. 싹싹 다 비우고 싶었지만 수술하고 장기들이 자리를 잡는 기간이라 그런지, 입은 계속 원하는데 배가 금세 빵빵한 느낌이 들어 양껏 먹을 수 없었다.





원장님의 말씀을 듣고 한 방에 침대에서 일어난 나. 수술 바로 다음 날 극심한 배 당김으로 윗몸일으키기 1,000개를 한 듯한 느낌을 받던 난 어디에..? 원장님께서 이런 리모컨에 자꾸 의존하면 회복이 더뎌진다고 하셨다. 원장님 말씀처럼, 불편해도 최대한 평상시처럼 움직이려고 해야 회복이 빠른 것 같다.


가끔씩 내게 수술 다음 날 도대체 어떻게 걷기 운동을 한 거냐고 물어보시는 분들도 계실 정도로, 수술 다음 날 걷기 운동은 어딘가 잘못된 느낌이 들만큼 배가 당기고 힘들다. 하지만 꿋꿋이 자력으로 일어나 남편의 부축도 마다한 채 혼자 링거대를 붙잡고 복도를 걸었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했다. 이렇게 초반에 열심히 노력하니, 퇴원할 때쯤엔 수술을 안 한 사람처럼 잘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건강히 회복할 수 있었다.


수술 때 기도삽관의 여파로 목이 간질거리고 자꾸 가래가 끼는 느낌이 있어서, 원장님 회진 때 이 사항도 전달드리고 가래약을 처방받았다. 약을 먹으니 목도 차차 좋아지는 느낌.



저녁마다 손목 링거를 통해 항생제가 들어올 때면 손목에 차갑고 뻐근한 느낌이 든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그 느낌이 선명해서 갑자기 손에 땀이 나는 것 같다. 약이 손목에 투여될 때마다 손목의 뻐근함을 시작으로 코까지 약 냄새가 스미던 그 느낌.



수술 후 첫 초음파 검진을 받으러 진료실로 내려갔다. 수술하면서 혹시 다른 증상도 발견되진 않았을까 생각에 몹시 떨렸다. 선생님이 다른 문제를 말씀하시면 어떡하나, 아니다, 마음을 비우자. 그렇게 떨리는 맘을 붙잡고 들어간 진료실. 다행히도 양쪽 난소, 자궁 내막 두께 등 모든 것이 정상이어서 안도했고 감사했다. 선생님께서 꼼꼼하게 3중으로 꿰매 주신 자궁의 사진도 함께 확인했다. 아아- 이제 정말로 끝났구나.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 뒤, 다음 예약 날짜를 잡고 병실로 다시 총총 올라왔다. 입원 날엔 채혈한 팔을 붙잡고 떨리는 마음으로 병실에 올라갔었는데, 이 날 진료를 받고 나서는 날아갈듯한 마음을 품고 병실로 향했다.



그리고 남편이 사다준 디카페인 커피. 커피 없이 못 사는 사람이 커피 맛 자체를 5일 만에 보는 것이다. 고등학생 때 커피에 맛을 들여 평일 저녁 미술학원에서는 자판기 커피를, 주말에는 던킨에서 카페모카를 호로록. 그렇게 10년이 훌쩍 넘게 365일 커피를 달고 살던 나였는데. 근종 수술 후에 커피도 자제하려고 하지만, 커피를 완전히 끊는 건 너무 힘들다. 그래도 반만 먹고 남기는 식으로 조절해 나가고 있다. 내겐 붉은 육류를 끊는 것보다 커피를 끊는 게 100배, 아니 1,000배는 더 힘들다.



다시 입원기로 돌아와서, 남편과 다음 날 퇴원 수속 후 집으로 돌아갈 이야기에 신나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저녁밥을 맛있게 먹어 치운 뒤, 전 날보다 더 행복하게 TV 핸드폰 보 신나는 저녁을 보내다 오랜만에 잠다운 잠을 자보자며 불을 끄고 누웠다.



없이 자는 두 번째 밤. 간호사 선생님들도 새벽에 한 번도 들어오지 않으셨다. 집에 가서 자면 얼마나 꿀 같은 밤일까. 이 날도 충분히 감사한 잠자리였다. 모든 걸 다 끝낸 나! 대견해! 칭찬해!





수술 + 4일 차 = 퇴원일 (토요일)



다음날은 일어나자마자 맛있게 밥을 먹고 깨끗이 씻은 뒤 차곡차곡 짐을 정리했다. 잘 쉴 수 있었던 따뜻하고 포근했던 병실도 가지런히 정리하고 1층 접수대로 향했다.


내가 입원했던 산부인과의 입원병동은 간호사님들, 청소해주시는 분들, 식사를 가져다주시는 분들 모두 천사같았다. 그래서 회복도 더 빠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항상 불편하진 않은지 친절하고 다정하게 체크해주시고, 두려운 마음에 바보 같아 보일법한 질문을 해도 세심하게 대답해 주셨던 모든 분들. 원장님께서도 개복 수술로 꺼내야 할 어려운 위치의 근종을 단일공 복강경으로 깔끔하게 제거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선생님께 예약하고 수술을 받을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힘들게 수술해주신 만큼 건강관리에 힘써서 다신 수술대에 오르지 않도록 할 것이다.



다음 외래진료까지 샤워 불가라 그저 머리만 감고(힘들게 감긴 했다) 하체에 샤워기만 살살 뿌린 건데 이게 뭐라고 잠이 그렇게 쏟아지는지. 집에 왔다는 게 너무 좋아 긴장이 싹 풀려 잠이 더 쏟아진 것도 있겠지만, 수술 후 체력이 떨어졌음을 이 날부터 서서히 실감할 수 있었다.



입원하는 동안 인터넷을 통해 주문했던 폭신폭신한 수면 원피스로 갈아입고, 엄마의 손길이 가득 담긴 밥까지 든든히 먹고 나니 잠이 마구 쏟아졌다. 남편과 나, 빵나가 모처럼 서로 함께 있다는 평온한 기분으로 잠을 청했다.


자궁근종 수술은 산후조리하는 것처럼 잘 관리해야 한다고 들었어서, 본격적으로 공주처럼 지내 볼 생각이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지냈다. 남편도, 도움 때문에 들러주시는 엄마도 동의했으니 아주 뻔뻔한 공주놀이를 했고, 덕분에 아주 잘 쉴 수 있었다.


이렇게 길고 긴 자궁근종 진단부터 수술, 퇴원까지의 이야기가 마무리됐다. 정보를 찾으며 너무나도 괴롭고 힘들었다. 세세한 것까지 궁금한 게 너무 많아 검색창을 여러 개 띄워놓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읽고 또 읽었다. 그때 근종 카페에서 도움도 많이 받았지만, 블로그에 에세이처럼 기록해 놓으신 분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읽었다. 그 과정에서 공감, 위로를 얻으며 용기가 자라나 큰 도움이 되었다.


엄마는 수술 전에 더 걱정되게 맨날 그런 이야기들을 왜 읽고 있냐고 물어보셨지만, 오히려 솔직한 이야기들과 정보들을 많이 접하고 수술을 받아서 입원기간 내에도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도 수술이 끝나면 내가 제일 자신 있는 그림과 글쓰기로 나의 투 머치 토커 기질을 발휘해 잘 정리해 놓아야겠단 다짐을 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쓰고 그리면서 솔직히 너무나도 힘이 들었다. 수술 전 이야기부터 써내려 가는데 맘고생했던 게 고스란히 다 떠오르고, 다시 그때로 돌아간 것만 같아 버거웠다. 글로 썼던 이야기를 다시 그림으로 그리면서 2차로 기억을 떠올리는 것도 보통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의미 있는 작업이라 생각해 겨우겨우 버텨내며 다 완성했다. 이렇게 완성된 이야기에 많은 분들이 사연을 이야기해주시고 공감해주셔서 정말 감사했고 또 힘이 됐다. 아마 이런 기억들을 먹고 자양분 삼아 계속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닌가 싶다. 인터넷의 특성상 내 이야기를 어떤 사람들이 읽을지 다 알 순 없지만, 내가 도움을 받고 용기를 내며 웃기도 했듯- 누군가도 내 이야기를 보며 수술에 대한 두려움을 덜 수 있다면. 그렇다면 정말 기쁜 일이 될 것이다.



※ 다음 이야기는 자궁 근종 수술 이후 회복기와, 먹고 쓰는 제품의 변화에 대해 정리한 이야기로 올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