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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Jun 17. 2021

자궁근종 수술 후기 #04 방귀대장 와이프의 등-장!

수술 + 1, 2일 차 / 소변량 테스트, 항생제 부작용, 링거 제거



수술 + 1일 차 (수요일 - 수술 다음날)


수술 후 맞이하는 첫 아침. 남편의 아침밥이 병실로 도착했다.

밥이 먹고 싶어 부럽게 바라보았지만 수액 덕분인지 배고파서 눈물이 나거나 손이 떨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밥 한 숟갈, 저 반찬 하나 입에 넣으면 참 맛있겠다는 느낌 정도.



수술 후 원장님이 회진 오셨을 때, 수술 다음 날 침대에서 바로 일어나면 어지러울 수 있으니 침대를 세워 20분 정도 앉아있다가 내려오라고 말씀하셨던 걸 떠올렸다. 누운 상태에서 무거운 눈을 비벼가며 리모컨의 버튼을 찾아 눌러 침대를 세워 앉았다.



이건 마치 지옥의 윗몸일으키기 1,000세트를 억지로 어딘가에 묶여서 한 느낌이었다. 수술 부위가 따끔거리거나 찢어지는 느낌, 뭐 이런 게 아니라 격한 운동 후 배의 근육이 아주 심하게 당기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침대 하단에 대롱대롱 달려있는 소변주머니. 이 주머니가 소변줄과 함께 내 요도와 이어져 있겠지..? 이건 어제 마취 후 수술 직전에 달아주신 건가..? 알 수 없었다.

수술 후 입원실로 옮겨진 이후, 수술 부위를 쳐다보면 괜히 아프고 무서울까 봐 배꼽부터 허벅지 쪽은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아서 소변줄을 보지도 못했고, 그에 대한 생각조차 없었다. 얼마나 수술 부위 보는 것을 겁냈던지 퇴원하는 날 아침까지도 배꼽 쪽은 보지 않았다.


간호사님께서 혈압을 재시고 항생제를 투여하시며, 무통주사는 이제 다 썼다고 말씀하셨다. 밤새 주사를 틀어놓고 자서인지 아침에도 수술부위의 통증은 없었다. 용기를 내어 일어나서 살짝 움직여보는데 무통주사의 부작용 중 하나인 울렁거림이 느껴져 헛구역질을 한 번 했다.



빨간약을 가져오셔서 지레 겁을 먹었는데 예상외로 전혀 아프지 않았다. 소변줄을 뗄떼는 "아아~" 하고 소리를 내라고 하시는데, 내가 소리를 내는 사이 소변줄을 쭉 잡아당겨서 빼신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끔찍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어지는 소변량 테스트. 간호사님께서 8시 이전에 화장실에 가는 분들은 잔뇨 테스트에서 거의 다 실패하시니, 좀 더 오래 기다렸다가 정말 못 참겠을 수준으로 요의가 느껴질 때 소변을 보라는 팁을 주셨다. 그렇게 소변줄을 뗀 채로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으니 서서히 소변이 마려운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간호사 선생님 말씀처럼 좀 더 기다렸다가 9시 30분쯤 되어서야 링거대를 끌고 느릿느릿 화장실로 향했다. 드디어 수술 후 내 몸으로 보는 첫 소변이다.



아플까 걱정하며 변기 위에 간호사님이 주신 받침을 깔고 소변을 보았다. 살짝 따끔하면서 병아리 오줌처럼 소변이 나오더니 이내 따끔함도 사라지며 평소처럼 시원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개운한 기분을 느끼며 말씀대로 소변이 찬 받침을 화장실 바닥에 두고 나와 간호사님을 기다렸고, 침대에 누워 잔뇨 테스트를 마저 한 뒤 통과했다. 통과하지 못하면 다시 소변줄을 꽂아야 한다는데 난 도저히 맨 정신에 소변줄을 꽂을 자신이 없었다. 어떤 느낌인지는 모르지만, 다시 꽂으셨다는 분들의 후기들을 보니 웬만하면 겪고 싶지 않은 느낌이었다.


엉덩이 밑에 받쳐져 있던 패드도 제거하고 이제 드디어 챙겨 왔던 팬티형 생리대를 착용했다. 피는 조금씩 나오는 상황. 아주 적은 양의 생리처럼 퇴원 날까지 쭉 피가 나왔다.



걷기 운동의 시작. 이 날부터 퇴원까지 한 시간에 병원복도 10바퀴씩을 걷는 미션이 주어졌다. 어깨까지 차올랐던 것 같은 빵빵한 가스통은 전날 열심히 심호흡 한 덕분인지 다 빠져있었고, 복부 쪽에만 가스가 가득 차 있는 불편한 느낌이 남아있었다. 이제 남은 건, 이 가스를 배출하는 일이다. 수술 후 열심히 걸어야 장유착도 막을 수 있으니 정말 열심히 걸어야 한다.



10바퀴를 돌고 병실에서 쉬다 다시 나올 때마다 몸이 조금씩 나아지는 게 확실하게 느껴졌다. 그 느낌이 좋아서 한 번 나올 때마다 10바퀴 이상을 걸었다. 같은 수술을 하신듯한 분들도 산부인과 복도를 열심히 걷고 계신 게 보여서 나도 더 힘을 내어 걸었다.





걷다 지쳐 근종 때문에 가입했던 카페에 접속해 방귀 꿀팁을 찾다가, 로비 소파에서 고양이 자세를 살살 취해보았다. 완벽한 고양이 자세는 어려운 몸이니 대충이라도 시도해봤는데, 갑자기 배에서 뭔가가 꾸르륵하며 움직이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좀 더 몸을 살살 비틀어보다 드디어 첫 번째 가스에 성공했다. 그런데..




긴급상황이었다. 부랴부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남편을 보호자 침대에 던지듯 밀어 넣고 화장실로 떨리는 발걸음을 옮긴 나. 당장 TV를 틀고 볼륨을 높여달라고 짜내듯 말한 뒤-




그냥 방귀도 아니고 축하할 정도의 거대한 똥방귀를 터버린 것이다. 빵빠레 폭죽이 터지듯, 여의도 한강공원의 불꽃축제를 하듯 웅장하고 화려했던 빵빠레 방귀. 처음으로 튼 방귀가 이런 거대한 소리의 방귀라니. 



부끄러움을 느끼는 새에도 방귀는 눈치 없이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래도 가스를 배출했으니 다음날이면 물을 먹을 수 있다. 잠자리에 들기 전 혈압을 체크하러 오신 간호사님께 드디어 가스 배출에 성공했다는 말씀을 드리고 한껏 축하를 받은 뒤 잠이 들었다. 입원하니,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것만으로도 칭찬을 받는 아기가 된 느낌이다.





수술 + 2일 차 (목요일)



김밥에 참기름을 바른 것인가. 소가 앞머리를 핥고 간 것인가. 머리가 엄청나게 떡졌다. 거울을 보니 못생겨 보이는 분장을 해놓은 듯싶다. 남편이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걸 느낄 수 있었던 입원시간이었다.



오전의 걷기 시간. 뱃속의 가스는 가득 찬 느낌이고, 장이 얼른 자리를 잡길 바라며 열심히 움직이면 방귀의 신호가 깊게 느껴졌다. 그런데 꼭 변을 함께 달고 오는 방귀.



방귀만 나오는 게 아니라 변도 나올듯한 느낌에, 걷기 운동을 하다가도 화장실에 계속 들락날락해야 했다. 원장님과 간호사님들께 들으니, 이것은 관장 때 남아있던 변과 항생제가 만나 일으키는 작용 중 하나였다.

입원기간 내내 나를 괴롭히던 폭풍 가스와 묽은 변, 그리고 그에 맞먹는 빵빠레 소리의 방귀. 결혼하고 별 걸 다 보여준 기간이었다. 관장 이후 먹은 건 물 뿐이라 변이라고 해봐야 아주 묽은 액체 느낌인데, 이 날 점심과 저녁으로 미음을 먹고도 밤 10시까지 계속 이 난리를 쳤다.

그저 인생의 동반자 옆에서 수치스러울 뿐이었다. 그런데 이것도 10번 넘게 반복하니, 나중엔 수치고 뭐고 편해졌다. 나는야 방귀대장 뿡뿡이.




점심과 저녁에는 미음과 몇 가지 반찬이 나왔는데 간도 잘 되어있고 너무나도 맛있었다. 최고!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혈관들이 들어가 버린단 말씀을 하셨는데, 수술 이후 회복기간이라 그런지 내 혈관들이 몽땅 숨어버렸다.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왼쪽 손목, 왼쪽 손등 모조리 다 실패다. 다른 간호사님이 오셨지만 여전히 실패.



두 군데 다 실패여서 결국은 제일 불편한 부분에 바늘을 꽂았다. 팔이 접히는 부분. 채혈했던 그 부분이다.



중간에 수액과 피가 팍 터지듯 역류하는 바람에 시트 한쪽이 피와 수액으로 다 젖기도 했고, 또 한 번은 수액이 다 떨어진 줄 모르고 있다가 피가 수액줄의 압력으로 역류하며 수액줄을 타고 거꾸로 올라가는 바람에 다급히 간호사실에 전화를 걸기도 했다. 변과 방귀가 계속 나오는 것도 힘들었지만 이 수액줄 때문에 더 힘들고 지친 하루였다. 아픔은 없지만 아주 징글징글한 느낌. 수액줄 때문에 머리 감기 예약을 잡아놓은 것도 늦춰야만 했다. 그래도 여차저차 오후에 다시 예약을 했고, 드디어 머리 감기에 성공했다.



의자에 앉을 때도 품에 안듯이 감싸주시며 살살 눕혀주시고, 일으킬 때도 조심스레 살살 일으켜주셔서 아주 편했다. 머리를 말릴 때도 반쯤 누운 상태로 말려주시고 두툼한 담요를 덮어주셔서 배 땡김이나 한기 없이 편안하게 머물다 올 수 있었다. 입원 중 최고로 편안한 시간이었다.


TV로 <맛남의 광장> 프로그램을 보는데 맛있는 음식들이 참 많이도 나왔다. 앞으로는 저런 맛있는 것도 못 먹는단 생각에 너무 우울했지만 링거를 제거하자마자 밀려오는 행복함. 자유인이 된 느낌이었다!



링거를 제거하면서 간호사실에 새 환자복도 부탁드렸다. 낮에 머리도 감고 링거도 떼고, 뽀송뽀송한 새 환자복도 입으니 벌써 확 나은 느낌이 들었다. 어찌나 자유롭고 행복하던지 종일 겪었던 피곤한 일들이 무색할 정도로 잔뜩 들떠 잠이 오질 않았다. 진심으로 행복했고 앞으로는 이렇게 입원하는 일이 없도록 건강관리에 힘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은 드디어 입원 생활의 마지막 날. 수술 후 3일 차인 금요일이다.

홀가분한 기분으로 자꾸만 들뜨는 마음을 억지로 누르며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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