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떨리는 마음을 아시는 건지, 불을 전부 다 켜지 않으시고 은은한 조명등만 살짝 켜고 들어오신 간호사님. 나의 항문 관장을 담당해주실 분이셨다. 침착한 마음으로 주섬주섬 일어나 인사드렸다.
아무리 남편과 친하다고 해도 결혼한 지 2년 좀 넘은 우리. 방귀도 안 튼 사이라 관장하는 시간 내내 나가 있어 달란 부탁을 했다. 부스스한 얼굴로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나가던 불쌍한 남편. 미안해. 이런 극한의 모습은 아직 보여주고 싶지 않단다.
항문 관장약은 총 4번을 넣게 되는데 관장 1번당 최소 3분을 버텨야 한다. 1분만 참으면 글리세린만 나와서 관장 효과가 없고, 3분 정도는 버텨야 항문 내로 삽입된 약물이 돈다고 하셨다. 다 지난 일인데도 이 이야기를 쓰면서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어 진다. 그땐 정말, 항문이 터져나가는 줄 알았다.
선생님께서 작고 소중한 나의 항문에 주사기로 차가운 용액을 쭉 밀어 넣으신 후, 천천히 일을 보라며 방을 나가셨다. 평소 고통을 잘 참아왔던 편이라 난 잘 버텨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완벽한 오산이었다. 1분이 지나자 저절로 침상에서 무릎을 꿇는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저절로 겸손해지는 자세.
수술 이틀 전부터 육류는 먹지 말라고 하셔서 최대한 부드러운 음식 위주로 먹은 데다, 전 날엔 아예 흰 죽만 먹어서일까. 이것이 관장 효과구나 싶을 정도로 와장창 나오는 것들은 없었다. 첫 번째 관장을 마치고 병실 문을 빼꼼 열어놓았다. 이렇게 문을 열어두고 침대에 누워있으면 저 멀리서 간호사님께서 관장이 끝났다는 신호로 보시고 다시 들어오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어진 다음 관장.
4번의 관장 모두 챙겨간 마이비데 물티슈 덕분에 깔끔하고 개운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남편은 이 격렬하고 치열했던 소리들을 듣지 못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그래, 아직까진 신혼의 느낌을 지키고 있어!
정말 내가 수술이란 걸 하는구나. 이제 돼지갈빗집으로 도망치기도 너무 늦었구나. 간호사님께서 수술복으로 갈아 입혀주시며 머리도 양갈래로 묶어주시는데, 혹시 땋는 걸 원하는지 물어보셨지만 그런 소소한 즐거움(?)도 선택할 수 없을 만큼 잔뜩 움츠러들어있던 상태였던지라 그냥 묶어달라고 말씀드렸다.
뒤가 시원하게 뚫린 수술복을 본 남편. 수술실까지 위에 걸치고 갈 옷도 챙겨주셨으니 너무 놀라지 말렴. 호텔에서 휴양지 원피스로 저렇게 놀라게 하고 수영장으로 달려갈 생각을 해야 하는데 병원에서 이러고 있다니. 이때부턴 아예 한 숨도 잘 수 없었다.
아침 여덟 시, 세수와 양치를 마친 뒤 로션을 발랐다.
방을 나와 계단을 내려가니 날 기다리고 있는 휠체어. 인생에서 최초로 타보는 휠체어였다. 생각보다 승차감이 좋아 편안했지만 이것은 수술실로 가는 길. 선생님이 뒤에서 휠체어를 밀어주시고 나는 그대로 앉아 남편을 쳐다보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맨날 웃긴 이야기, 시시콜콜한 이야기만 하고 이렇게 걱정시키거나 놀라게 해 본 적이 없는데.
남편을 뒤로한 채 수술실 입장. 안락하고 따뜻하던 병동과 다르게 차갑고 무서워서 더 떨렸다. 게다가 내가 첫 수술 환자라 그런지 이 넓은 수술센터에 환자라곤 나밖에 없었다. 수술실 특유의 조용하고 차갑고 파란 분위기도 겁나는 마음을 증폭시켰다.
남편에게 들으니 내가 들어간 이후로는 환자분들과 산모님들이 줄줄이 들어가셨다고 했다.
이것이 척추마취였던 것 같다. 이 주사를 맞고 나면 수술 후 깨서도 훨씬 덜 아플 거라며 마취 선생님이 떨리는 마음을 토닥여주셨다. 주사를 맞으며 맞은편 벽의 알 수 없는 온갖 약품과 도구들을 바라보는 순간 다시금 눈물이 고였다. 차가운 병실, 낯설고 좁고 딱딱한 침대, 세상에 나 혼자인 느낌.
뻐근함과 동시에 퍼지는 마취기운에 다른 주사들을 맞는 느낌이 가볍게 여겨질 무렵, 심전도기 같은 게 몸에 부착되기 시작할 때였다. 잔뜩 겁먹어 있다는 걸 만천하에 알리듯 수술실 내에 내 심장박동이 빠르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나중엔 기계에서 경고음처럼 삐이-삐이-!! 소리까지 크게 울려 몹시 창피했다. 선생님들께서는 진정하고 심호흡을 하라며 나를 달래주셨다.
이미 잔뜩 겁난 걸 인증도 했겠다, 사실은 정말 무섭다고 고백을 하고 눈물을 또르르 흘렸다. 따뜻하고 차분하게 달래주시는 선생님들의 말씀대로 심호흡을 천천히 하며 눈을 감아보는데, 머릿속에 왠지 마취가 안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슬픈 예감은 늘 현실이 되곤 하지..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눈을 떴는데 어느새 회복실에 누워있던 나. 심호흡 한 번 하고 눈뜨면 끝이라더니 진짜였다.
몸은 엄청나게 무겁고 정신도 몽롱한 상태. 무겁고 뻑뻑한 눈꺼풀만 송아지처럼 껌뻑대고 있었다. 움직일 수도 없고 그저 엄청나게 추운데 여기에 몸이 아주 무거운 이상한 느낌이었다. 눈 덮인 산에서 온 몸이 눈에 파묻힌 채로 몇 시간째 조난당한 상태이면 이럴까 하는 상상마저 들었다. 그래도 예상했던 통증이 없다는 게 참 신기했고 감사했다.
다행히 수술 내내 아무 문제도 없었고 수혈할 필요도 없었지만, 다른 병원이었다면 개복수술로 변경해서 제거해야만 했을 근종이 하나 있었다. 복강경으로 제거하기 힘든 위치의 근종. 이 근종과 더불어 초음파에서 보이지 않던 눈곱만큼 작은 근종까지 꼼꼼히 제거해주셨다고 했는데, 아마 그래서 수술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지지 않았나 싶다.
이것이 나를 괴롭히던 근종들. 대장격 큰 근종과 작은 근종들이 나란히 누워있다. 이 병원은 근종 제거 후 크기 비교를 위해 늘 모나미 볼펜을 근종 옆에 함께 두신다.
근종 아이들아, 다신 만나지 말자!
병실에 올라와 정신없는 채로 환복을 했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올라와서 선생님들 손길에 의해 환복이 진행됐던 것 같다.
무통주사가 틀어져 있어서인지 수술의 통증은 정말이지 하나도 없었다. 그냥 하반신이 마비된 기분. 다만 목이 칼칼하고 살짝 아픈 느낌에, 입술과 혓바닥이 바짝 마른 느낌이 들었다. 물 먹인 거즈를 입에 물고 건조함을 달래다가 나중엔 물을 아주 살짝 입에 머금은 후 종이컵에 뱉어가며 버텼다.
나중엔 물가글도 살짝 했다. 그렇지만 물가글 할 때 물을 삼킬 수 있으니 아주 주의해야 한다. 웬만하면 안 하는 게 낫다. 가스가 나올 때까진 이렇게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다.
항생제를 맞고 나서는 갑자기 울렁거림이 느껴져서 무통주사를 껐다. 끄고 나서 통증이 어떨까 염려됐지만 그저 약간의 생리통 느낌이었다. 절대 약을 먹을 수준이 아닌 약한 생리통의 느낌. 자궁에 칼을 댔는데 이렇게 안 아프다니 신기할 정도였다. 확실히 나를 수술해주신 원장님의 환자분들이 통증을 덜 느끼시던데 나 역시 그랬다. 이 정도면 수술할만한데?라는 허세가 밀려올 정도였지만, 사실 정말 허세이고 절대 다신 수술대에 오르고 싶지 않다.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하면 이렇게 수술 후에 바로 못 앉아 있는다고 하셨지만, 나는 다리를 뻗고 앉아 심호흡도, 기침도, 대화도 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원장님께서 가신 이후로는 기침과 심호흡을 더 열심히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스통이 점점 심해져 상체가 아파왔기 때문이다.
가스통은 마치 못 뀐 방귀가 쇄골까지 꼼꼼히 올라가 있는 느낌이랄까? 의외로 수술 통증보다 가스통이 더 괴로웠다. 다음날부턴 회복의 날이니 수술한 당일인 오늘, 가스통을 없애보잔 마음으로 미친 듯이 심호흡을 했는데 전 날 못 잔 여파와 마취의 여파로 잠이 쏟아졌다. 하지만 밤 10시까진 잘 수 없다. 무조건 심호흡과 기침으로 가스를 빼내며 버텨야 한다.
이렇게 졸다 깨다를 반복하며 심호흡, 기침을 밤 10시까지 이어간 후에야 이제 자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잘 수 있었다.
잘 때는 아주 약간의 통증도 없이 죽은 듯 푹 자고 싶어서 낮에 꺼놨던 무통주사를 켜고 잤다. 그러나 시간마다 선생님들이 들어오셔서 혈압을 체크하시기 때문에 통잠은 무리였고, 남편도 같이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그래도 잠들어 있는 순간만큼은 깊게 잘 잤다.
몸에 주렁주렁 달린 게 너무 많아 적응도 안되고 힘들었던 날. 링거대에는 무통주사, 수액들. 내 몸 아래는 소변줄, 엉덩이 밑에는 패드가- 그래도 소변줄 덕에 화장실에 안 가도 되는 건 편했다. 수술 당일 그 몸으로 걷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으니.
이렇게 아주 큰 일을 치러냈다. 게임 퀘스트를 하듯 항생제 테스트, 제모, 먹는 관장, 항문 관장 등을 이겨내고- 제일 큰 보스 퀘스트인 수술까지 마쳤다. 이제 남은 미션은 병원에서 열심히 회복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