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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에는 돌아오는 복(福)

'스키장에서 다시 한번 경험한 인생의 진리'

by 한나Kim

저번 주에 둥이 학교에서 스키장을 갔다. 뉴질랜드에서 1년 사는 김에 이곳의 스키장은 반드시 경험해 봐야지 생각하고 있었기에 나랑 요하네스도 함께 다녀왔다.


아이들은 아침 7시에 학교에서 버스를 타고 가고, 나랑 요하네스는 차를 타고 출발. 쌩 자연에 있는 스키장이라 그곳까지 진입하는 게 난코스라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던 터라,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약 110킬로가 떨어진 Mt Hutt 스키장으로 향했다.


예상은 하고 있었다. 일단 스키장에 충분한 눈이 있어야 하므로 꼭대기에 위치해 있을 것이고, 또 정상까지 가는 길이 포장된 도로는 아닐 거라는 것을. 사실 우리는 오직 이 날을 위해 4륜구동 SUV를 구비했다. 2륜구동이면 스키장 가는 게 힘들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뉴질랜드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4륜구동 SUV가 적합하긴 하다.

일단 하얀 설산으로 이루어진 자연을 바라보며 달렸다. 진정한 여정은 스키장으로 올라가는 산의 입구부터 시작된다. 척박한 돌산을 오르고 또 오른다.

물론 길이 넓지 않다. 혹시라도 반대편에서 차가 오면 옆으로 비켜주다가 가드레일이 없기에 절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다행히도 새벽이라 위에서 내려오는 차는 없었다. 끊임없이 오르다 보면 눈으로 덮인 길이 나오기 시작. 거기서부터 2륜구동차는 무조건 체인을 끼워야 한다.


우리는 4륜구동차다. 그것도 2007년 산 현대 '싼타페!' 둥이보다 7살이 많은 차이지만 끄떡없지. 뉴질랜드는 1년마다 반드시 차정비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오래된 중고차도 굉장히 튼튼한 편이다. 우리의 18살 산타페 군, 힘이 얼마나 좋은지, 체인 따위는 필요 없다. 자신감 뿜뿜 멈춤 없이 설산을 오른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이 더 잘 보인다. 척박한 길을 보고 있으니, 네팔의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를 갈 때 바라보던 도로가 떠올랐다. 기계의 힘이 아닌, 사람의 손을 이용해 만든 네팔의 도로와 뉴질랜드 스키장으로 가는 길이 이리도 똑같을 줄이야. 떨어지면 바로 죽는 것까지


...


우리가 도착하고 1시간 후에 학교 버스가 왔다. 버스에서 둥이가 친구들과 낄낄 거리며 내린다.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었더니 손만 ~ 고 지나간다. '나를 보긴 한거뉘?'


아이들이 열심히 스키를 탄 후, 점심을 먹기 위해 테이블에 앉았을 때도 마찬가지. 둥이에게 슬슬 다가가며 인사를 했는데, 친구들이랑 장난을 치느라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이다. 어머나 이 애미가 눈치가 없었구나. 반 친구들끼리 즐겁게 지내는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된다.


스키 타는 것도 즐거웠다. 허나 그날 강풍이 심해서 쉬운 슬로프만 열렸기 때문에 진짜 자연 같은 슬로프는 경험하지 못했다. 그냥 한국의 비발디파크 같은 느낌? 그러나 사람이 없어서 굉장히 여유가 있는 정도랄까.

얼굴 한 번 마주치기 힘들 정도로 스키만 타던 둥이가 오후 3시 반에 되자, 다시 버스를 타고 학교로 출발했다.

우리도 짐을 챙긴 후 하산을 하려고 할 때, 저 멀리 한 커플이 스키장비를 든 채 손을 흔든다. 대범하게 흔들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테지만, 보일랑 말랑 소심하게 흔드는 모습을 보니 뭔가 마음이 간다.


"요하네스, 우리 저 사람들 태워주자."

"그냥 가자. 멀리까지 데려다 달라면 어떡해?"

"멀어 봤자 아래 주차장이겠지. 태워주자"

"올만에 스키 타서 그런지 피곤해. 오늘은 싫어"

"뒤에 둥이가 없잖아. 평소에는 못 도와주니까 도와줄 수 있을 때 도와주자"

"그럼 쟤네들 장비는 니가 실어줘"

"오키"


창문을 열고 외쳤다. "컴온~"


그들은 프랑스 커플이었다. 여자는 3년 전에 워킹홀리데이로 왔다가 뉴질랜드가 너무 좋아서 워킹비자로 바꾼 후 일하고 있다고 했고, 남자는 작년에 왔다고 한다. 둘 다 스키를 좋아해서 시즌권을 끊고 이곳저곳에서 타는 중이라고. 차는 2륜구동이라 아래 주차장에 놓고, 올라오는 차를 얻어 타고 왔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벌써 주차장에 도착.


그들을 내려주고 출발을 하려는데 고무 타는 냄새가 진동을 다. 아마도 내려올 때 기아를 안 바꾸고 브레이크만 쓰면서 내려와서 그랬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며 10분을 더 갔나? 또다시 고무 타는 냄새와 함께 계기판에 잠깐 빨간색 경고등이 켜졌다가 사라졌다!


불안함에 요하네스가 경고등을 사진으로 찍은 후 AI에 물어봤다. 답변은 오일이 부족해서 나타나는 경고등이고, 혹시 오일 부족이 아니라면 모터에 데미지가 가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으므로 즉시 운전을 중단하는 좋다고 다.


ㅜㅜ


걱정이네. 둥이는 아까 출발했는데.. 혹시라도 견인차를 불러야 한다면 아이들은 어쩌나 싶은 생각에 아찔했다.


불안한 마음으로 요하네스가 차 밖에서 이곳저곳을 확인하고 있을 때, 정말 뜬금없이 우리와 똑같은 연배의 산타페가 홀연히 나타나 차를 세운다. 그곳에서 자그마한 여자분이 내렸다. 약간 박나래 같은, 작지만 단단한 느낌의 30대 초반 키위였다.


"Do you need help?"라는 외침과 함께 저벅저벅 여전사처럼 다가왔다. 우리는 편견에 사로잡힌 나약한 인간인지라, 여인이 오는 것을 보고 기대감은 1도 없이 상황을 설명했다.

그랬더니 그녀가 당당하게 자기가 봐줄 테니, 보닛을 열어보란다. 어? 포스가 장난이 아니다. 요하네스 군 자세를 조신하게 고치고, 그녀에게 홀린 듯 보닛을 열어드렸다. 여전사님이 오일을 체크한 후, 오일 문제는 아니란다. 이번엔 시동을 걸어보라고 한다. 헐레벌떡 자리로 들어와 시동을 켜드렸다. 계기판을 보면서 모터 온도도 괜찮고, 여기도 괜찮고, 저기도 괜찮단다.


여기저기 다 체크한 후, 그녀가 단호하게 말했다.


"잠깐 모터에 열이 많아서 그랬던 거 같아. 차는 전혀 문제없으니까 그냥 가면 돼. 단, 달리는 중에 그 빨간 경고등이 다시 들어온 후, 사라지지 않으면 그때는 견인차를 불러. 지금처럼 잠깐 들어왔다가 없어지는 것은 문제 될 게 없으니 걱정 말고 가던 길 가."라고 말한 후, 다시 홀연히 사라지셨다.


ㅇ_ㅇ


저분은 하늘에서 보내준 천사인가? 그저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나?


그녀의 단호한 멘트 덕분에 뭐에 홀린 듯 아무 걱정 없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린 요하네스가 말했다.


"그 천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갔을까? 그녀가 출발하고, 우리도 바로 출발했는데 차가 안 보이네... 아까 프랑스 커플 진짜 잘 도와준 거 같아. 덕분에 산타페 여신을 만난 게 아닐까 싶어"

"그래. 앞으로도 도울 기회가 있으면 도와주자!"


...


돌고 돌아 결국 다시 돌아오는 '복(福)'이란 생각이 든다. 적어도 인생에서는 진리가 단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었다. 이것을 뉴질랜드 스키장에서 다시 한번 경험할 줄이야.


한 번뿐인 인생, '착하게 살아야지'라고 또 다짐했다. 왜냐하면 인생은 길고, 그 긴 여정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며, 그 순간 어떤 인연이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녀와 같은 천사가 될 수 있기를. 그리고 그녀에게 늘 좋은 일만 있기를 기도한다.


'여전사님 너무 멋졌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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