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우리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요하네스와 오하까(Oaxaca)로 가는 버스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친해졌다. 그러면서 그가 나에게 오하까에서의 일정이 어떤지 물어보았다.
"스케줄이 없어. 그냥 4박 5일 동안 느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지낼 예정이야. 그래서 머물 숙소도 예약하지 않고 왔는 걸"
나의 답변에 흠칫 놀란 그가,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자기들이랑 같이 여행을 하자고 했다. 솔직히 나의 여행은 늘 이랬다. 혼자서 여행을 하더라도 꼭 어디선가 좋은 사람들을 나타났고, 그들과 함께 여행을 했다. 그러다 일정이 달라지면 쿨하게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다.
.....
우리는 오하카 버스 터미널에 내려 근처 호스텔에서 1박을 했다. 남녀 도미토리가 나눠져 있는 방에 서둘러 짐을 푼 후, 바로 시내를 나가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그러다 길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던 학생들을 만나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게 됐다. 요하네스와 유리드 둘 다 칠레에서 교환학생을 한 경험이 있었기에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잘했다.
요하네스가 그들에게 물었다.
"내가 멕시코 노래를 꽤 많이 들어봤는데, 멕시코 가요는 다 사랑에 대해서만 노래하더라고. 혹시 사랑이 아닌 노래가 있니? 진짜 궁금해."
그 학생이 한참을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없네. 진짜 다 사랑 얘기뿐이네!"
멕시코는 사랑에 꽃피고 사랑에 꽃지는 그런 나라인 듯하다. 내 필리핀 친구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한국 드라마를 보다 보면 감정이 격해져서 가끔 보기 힘들 때가 있는데, 멕시코 드라마는 한국 드라마보다 백배는 더 열정과 감정이 넘쳐서 끝까지 볼 수가 없는 경우가 꽤 많다고.
우리는 오하카 시내에서 유쾌하게 하루를 지낸 후, 다음 날 '몬테알반(Monte Alban)' 유적을 보기 위해 산에 위치한 마을에서 1박을 했다.
몬테알반 유적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그런지 그리 덥지도 않았다. 그곳은 문화적으로 마야 문명과 쌍벽을 이룬다는 곳이었지만, 멕시코시티 근처에 있는 테오티우아칸을 이미 봤던 터라 감흥이 그리 강렬하지는 않았다. 그냥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한 여행이라 즐거웠다는 정도였다.
유적 탐방을 끝내고 산 마을에 위치한 숙소로 돌아와 4인실 도미토리에서 '유리드와 그녀의 남친 로버트(6년째 함께 살고 있던 커플이었고, 현재는 결혼해서 딸 3명과 행복하게 살고 있다), 요하네스, 나' 이렇게 잘 준비를 마친 후, 각자의 침대에 누웠다.
산속 마을이라 그런지, 9월의 멕시코라 하기에는 어색할 정도로 많이 추웠다. 너무 더웠다가 갑자기 추워져서 그랬는지, 요하네스가 밤중 내내 벌벌 떨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로버트가 그의 옆으로 와서 온기를 나눠준 후에야 그는 잠이 들 수 있었다.
다음 날, 그가 피곤하다며 나에게 함께 숙소에 머물기를 요청했다. 유리드와 로버트는 다른 곳으로 유적 탐방을 떠난다며 함께 가자고 했다. 두 선택지 중에 나는 망설임 없이 요하네스와 함께 있기로 정했다. 그냥 둘이서 숙소 근처 마을을 구경하면서 말이다.
마을을 잇는 작은 오솔길을 따라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산 속이라 그런지 곳곳에 안개가 껴있었던 기억이 난다. 조용했고,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그때 둘이 다니며 별 말은 안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어색함 없이 편안했다는 기억이 난다. 다 돌아다니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그 앞에 있던 해먹에 앉았다. 특별할 것 없는 그냥 천으로 만든, 낡디 낡은 해먹이었다.
그곳에 앉아서 무심히 앞을 보고 있을 때 그가 조용히 속삭이며 나에게 다가와 키스를 했다.
"I would like to know you."
'뭐가 이렇게 담백하면서도 솔직한 말이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I love you'라고 했다면 이처럼 편안하진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나에게 장난을 친다는 생각에 거부감이 들었을 것이다. 'I like you'라고 했어도 마찬가지다. 뭔가 가볍잖아.
인연이 되려고 그랬던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I would like to know you.'라는 말이 참 좋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때 저 문장 딱 하나로 그가 진실된 사람이라고 판단을 내렸던 것 같다.
...
모든 인연을 시작함에 있어 육감은 정말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렇지만 나만이 알 수 있는 느낌이니까.
어쨌든 '우리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