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자꾸 눈길이 간다.'
예상치 못한 순간의 키스였지만 너무 자연스러워서 당황스러웠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자연스럽게 입맞춤을 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대화를 했다. 나는 자연스러운 척 행동은 했지만, 솔직히 그 급작스런 이벤트가 나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조금 후에 유리드와 로버트가 숙소로 돌아왔다.
우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어나 짐을 챙긴 후, 오하까 비치에서 '초코라테 아저씨'가 운영한다는 로맨틱한 숙소를 향해 출발했다. 요하네스가 지난 여행에 머물었던 곳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계속 생각이 나는 장소이기에 이번에 친구들과 다시 가는 거라고 했다.
기대를 하고 도착한 그곳은 정말 아름다웠다.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모래사장, 2미터가 넘는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 그리고 그 거친 바다 앞에 러블리한 숙소가 덩그러니 있었다.
사장님 이름이 '초코라테'라고 했다. 작고 거무잡잡한 피부에 히피 머리를 하고 있던 그는 참 자유로워 보였다. 그가 이 아기자기한 집을 직접 손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화장실 전등은 큰 조개로 만들어져 있었고, 바닥과 세면대는 비비드한 색깔의 모자이크 타일로 꾸며져 있었다. 너무나 아기자기하고 자연스럽고 또 안락한 자연으로 만든 집이었다.
운명의 장난인지 초코라테 하우스에는 도미토리가 없었다. 숙소가 작아 방도 딱 2개뿐이었다. 두려움 없이 혼자 배낭여행을 즐기던 용감무쌍한 나였지만, 남자와 관련되어서는 굉장히 숙맥이었기에.. 왜 하필 어제 키스를 했을까... 미쳤지 내가. 두려움에 이런저런 생각이 교차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요하네스와 같은 방에 들어와 짐을 풀고 있었다 ㅠㅠ
저녁이 되기 전까지는 신났더랬다. 바닷가에서 놀고, 백사장을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초코라테 아저씨가 직접 만든 해먹에 누워서 넷이서 돌아가며 이야기 짓기 놀이도 하고, 같이 저녁도 먹고.. 대자연과 함께한 그때의 모든 순간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그러다 점점 밤이 다가왔다.
이제 슬슬 방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놈이 설마 나 덮치는 거 아냐? 하는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남자랑 한 침대에 누우면 무조건 오케이 한 거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컸기 때문이다. 내가 미쳤지ㅠㅠ 어찌 같은 방을 잡았을까ㅠ라는 걱정이 계속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나름대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을 했다. 필시 그랬을 것이다.
어색함을 뒤로한 채, 어둠 속에서 계속 걸었다. 집채만 한 파도 옆을 걸으며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깜깜한 하늘이 얼마나 깨끗한지 손에 닿을 듯한 별들이 눈앞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그때 그가 속삭였다.
"Can you see the Milky Way?"
나는 Milky Way란 단어를 그때 처음 들었다. 그럼에도 단번에 이해했던 은하수. '와 저게 은하수구나!' 바람도 선선하게 불었고, 시원한 파도소리에, 까맣지만 밝은 밤하늘..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은하수까지.
'이곳은 천국이구나. 나는 지금 천국에 있다.'
로맨틱한 분위기에 휩싸인 채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그러다 키스를 했고, 어찌어찌 스킨십을 한 거 같다. 그치만 더 이상은 원하지 않는다고 나의 분명한 의사를 전달하자 그는 바로 멈추고 나를 존중해 줬다.
시간이 지나 요하네스한테 이 부분을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참기 힘들지 않았냐고. 그랬더니 그는 섹스를 하느냐 마느냐의 의사는 전적으로 여자에게 달려있다는 답변을 했더랬다. 그렇구나.. 근데 왜 나는 그 결정이 남자한테 있다는 생각을 했을까. 돌아보면 그때 나는 어렸고, 또 너무나 수동적인 여성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오하까 해변에 위치한 로맨틱한 장소에서, 그가 원하는 사랑의 행위를 거부했다. 나는 이 남자랑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그저 여행지에서 만나고 헤어질 사이인데 뭐 하러 감정을 만드나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결혼한 사이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역시나 나는 그와 잠을 자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나는 여전히 보수적인 사람이니까. 솔직히 다음 생에는 좀 가벼운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 ㅠ
그렇게 우리의 아름다운 첫밤이 지나간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자꾸 그에게 눈길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