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뒤에는 늘 이별이 있다'
우리는 오하까에서의 로맨틱한 4박을 뒤로한 채, 멕시코시티로 향하는 야간 버스에 몸을 실었다. 멕시코시티에 도착한 바로 다음 날, 나는 미국으로 돌아가 일을 해야 했고, 요하네스는 멕시코시티에서 3개월 간 인턴십을 시작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른 새벽, 낭만이 있는 멕시코 수도에 도착한 후, 우리는 서로 다른 호스텔에 머물기로 하면서 바로 헤어졌다. 그는 내가 자기와 같은 호스텔에서 머물기를 원했지만, 나는 어차피 안 볼 사람인데 정을 붙여서 뭐 하나 싶은 생각에, 그냥 각자 다른 곳에 머물고, 이따 멕시코시티 어디에선가 다시 만나서 데이트를 하자고 제안했다.
...
그렇다. 나는 사실 철벽녀였다. 혼자 용감하게 배낭여행을 하는 철벽녀. 백인 흑인 동양인 가리지 않고 잘 사귀고, 모두와 거리낌 없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지만, 겉보기와는 다르게 '철벽녀'였던 것이다ㅠ 그렇다면 철벽녀란 무엇인가. 그들은 옷깃만 스쳐도 결혼을 생각하는 녀자들이다. 결혼만 생각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이혼도 생각한다는 게 문제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가오는 남자가 좋은 사람임을 알고 있음에도 사귀기 전까지 관찰하는 데 2~3년이 걸린다. 모든 관찰을 다 통과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사귀어볼까 하면, 그때는 이미 남자가 질릴 대로 질려버려서 그녀 곁에서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ㅜ
그까짓 도미토리에서 1박을 더 자면 어떠하리. 무엇 때문에 서로 멀리 떨어진 호스텔에서 짐을 풀고, 또 따로 만나서 데이트를 한단 말인가ㅠ_ㅠ
그때를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오하까에서의 로맨틱한 여행 후, 다시 멕시코시티에서 1박을 함께 한다면 그와 감정적으로 너무 깊어져 결혼을 하지 않을까 하는.. 거의 몽상에 가까운 두려움이 있었더랬다. 시작도 하기 전에 생각이 많아져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철벽녀. 그게 바로 나였다.
어쨌든 모든 결정은 여성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요하네스였기에, 끝까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서로 각자 숙소를 찾아 떠났다. 그리고 오전 11시경에 멕시코시티 박물관 앞 어디쯤에서 다시 만났다. 잠깐 헤어졌다가 만나서 그런가, 얼마나 반갑던지! 우린 연인이라도 된 듯 멕시코시티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그가 1년 전에 인턴십을 했던 곳도 가보고, 그때 자기가 살았던 집도 보여줬다. 심지어 그 집 벨도 눌렀던 기억이 난다. 다음 날 새벽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돌아가야 하는 내 일정 때문에, 아쉽게도 우리는 오래 함께하지는 못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하늘이 어두워졌을 때쯤, 그가 내가 머무는 호스텔로 데려다줬다. 길치인 나는 몇 번 출구로 나가야 하는지 몰라서 다른 출구로 나가게 됐다. '어? 여기는 내가 탔던 곳이 아닌데...' 어두컴컴한 곳을 한참 걷고 있는데 지나가는 행인이 요하네스한테 한마디를 했고, 그걸 들은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뭐라고 했냐고 물어보니 '여긴 너무 위험한 곳이니 빨리 숙소로 돌아가래.'
어쩐지 숙소를 헤매던 그 길에 인기척이 하나도 없더만. 분위기도 아침과는 사뭇 다르게 아주 어두웠다. 어둑한 밤이 되니 발랄하고 순박했던 느낌은 사라지고, 악명 높은 멕시코시티의 또 다른 모습이 나타났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듣던 대로 위험한 곳이었구나.. ' 마음이 아팠다.
다행히 별일 없이 숙소를 찾았고, 요하네스는 나를 데려다 주자 마자 서둘러서 돌아갔다. 그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본 기억이 난다. 아쉬움 때문이었는지, 고마움 때문이었는지.. 그냥 무슨 느낌인지 명확하게는 모르겠다.
'너를 다시는 볼 일이 없겠지. 고마웠어. 그리고 덕분에 정말 즐거웠어.'
...
여행을 하다 보면 많은 인연을 만나고, 또 쿨하게 헤어진다. 그냥 그 순간 서로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주면 되는 것이다. 헤어질 때 너무 아쉬워 이메일을 교환해 보지만, 사실 우린 이미 알고 있다. 이 짧지만 소중했던 인연이 오래가지 않을 것임을. 그렇기 때문에 여행지에서 만난 인연에게는 더 집중하게 되고, 허울을 벗어던진 나의 진실된 모습을 쉽게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만남 뒤에는 늘 이별이 있듯, 우리 또한 서로의 이메일을 교환한 채 그렇게 헤어졌다. 인연이 이렇게 쉽게 맺어지고, 또 이렇게 쉽게 흩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이처럼 아쉽기는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