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의료 시스템

'비싸거나, 느리거나...'

by 한나Kim

뉴질랜드는 의료가 거의 공짜라고 한다. 1년살이 외국인 신분으로 뉴질랜드의 의료 시스템을 경험해 본 적이 거의 없어서 잘 모르지만, 현지인들의 말을 빌리자면 의사 수는 굉장히 적은 반면 환자 수는 너무 많아, ‘무료 의료’라는 말은 그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긴급하게 암 진단을 받더라도 수술 일정이 2~3년 후로 잡힌다거나, 아이가 며칠간 열이 떨어지지 않아 병원에 가야 하는데 예약이 꽉 차서 3주 후에 오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의사와의 만남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공공의료보험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해당된다는 것이다. 사보험을 가진 사람들은 병원비로 천문학적인 돈을 지불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최고의 병원에서 최고의 의사에게 수술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의료 시스템 탓에 한국인들은 이곳에 살면서 국적을 바꾸기보다는 영주권만 취득한 채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렇게 간접적으로나마 뉴질랜드의 의료 시스템에 대해 이해하고 있던 중, 직접적으로 뉴질랜드 의료를 경험하게 된 일이 있어 그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다.



나는 20대부터 가슴에 물혹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왔다. 원래 젊을 때는 유방 초음파를 잘 안 하지만, 담당 선생님께서 나 같은 경우는 20대일지라도 최소 3년에 한 번씩은 초음파를 해볼 것을 권유했을 정도다. 사실 30대 중반까지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살았더랬다. 그러다 40세가 넘어가면서 정기적으로 확인을 하기 시작했다.


뉴질랜드에 오기 딱 2개월 전, 담당 선생님께서 한 번쯤은 제대로 검사를 해보는 게 좋겠다며 조직검사를 권유하셨다. 평소라면 2년 뒤에 해볼게요라고 하겠지만, 곧 뉴질랜드에 갈 예정이었던 나는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고 싶어서 조직검사를 진행했다. 다행히도 지금처럼 추적검사만 하면 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얼떨결에 물혹의 정체를 확인한 후 편안한 마음으로 뉴질랜드에 왔다. 그리고 한량스러운 삶을 즐기고 있는데, 작년에 2명의 백인 친구가 유방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38살인 D는 양쪽 유방을 아예 제거했고, 50대 중반인 M은 유방암 4기라는 진단을 받고 괴로워했다. 특히 D는 나처럼 10개월 전에 의심스러운 물혹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 조직검사를 했고 별 게 아니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개월 후에 양쪽 유방을 모두 제거한 것이다.


그걸 알게 된 우리 요하네스 군은 그때부터 나를 들들 볶기 시작했다.


"너도 여기서 다시 검사를 받자. D도 작은 물혹이었다가, 10개월 뒤에 암으로 변해서 유방을 제거했다잖아. 혹시 모르니까 초음파를 다시 받아보자!"


어차피 곧 한국에 가는데 굳이 검사를 받아야 하나? 혹시 암이라고 해도 어차피 한국으로 갈 것이고, 별 거 아니라고 해도 한국에서 또다시 검사를 받을 건데?? 이건 시간낭비, 돈낭비 아냐?라는 생각에 받기 싫다고 거절을 했다. 그러나 요하네스 군이 어떤 사람인가. 한번 꽂히면 절대 놓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 내가 100번을 No라고 말해도, 아무렇지 않게 흡사 처음 묻는다는 듯 바로 101번을 물어보는 사람이다. ㅠㅠ


검사를 받을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일본 친구에게 내 상황을 말했는데 그녀가 뉴질랜드에서는 받지 말라고 하며 나에게 엄청난 이야기를 들려줬다.


"내 친구 중에서 여기서 유방암 4기를 진단받았던 친구가 있어. 그녀한테 7개월 아들이 있었기에 더 충격이었거든. 근데 친구들이 일본에 가서 더블 체크를 꼭 해보라고 해서 걔가 일본에 가서 검사를 다시 받았다? 근데 유방암이 아니라는 진단을 받은 거야. 지금 행복하게 잘 살고 있지. 또 다른 친구는 유방암 검사 후 정상이라는 진단을 받고 살았는데 1년 뒤에 죽었어. 유방암으로. 어차피 네가 여기서 진단을 받든, 안 받든, 한국에 가면 또 해야 하니까 그냥 한국 가서 해."


곧 한국에 들어가니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며 위 이야기를 요하네스에게 그대로 해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조건 검사를 받아야 한단다. 사람마다 다르고, 또 병원마다 다르니 최고의 전문병원으로 가면 된다고 하면서. 그렇게 나는 작년 말에 뉴질랜드에서 초음파 검사를 받게 되었다.


일단 초음파를 받기 위한 과정은 이렇다.


근처 일반 병원의 GP(General Practitioner, 일반의)를 방문해 소견서를 받는다. 그 후 1차 병원 또는 전문의를 예약한 후에 검사를 받을 수 있다. 만약 뉴질랜드 국적이나 영주권 소유자라면 40세가 넘을 경우 유방 초음파비가 공짜이나 나 같은 외국인의 경우는 대략 250~350달러가 든다고 한다. 가격이 한국이랑 비슷하네 생각하며 예약을 했다.


그렇게 2주를 기다린 후 X-ray와 초음파 검사를 진행했더니 늘 그렇듯 물혹이 있다는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똑같은 물혹이구만~' 생각하며 의료비를 내려고 하는데... 세상에나 비용이 840달러(약 73만 원)라는 게 아닌가. 몇 달간 마음 편하려고 받은 검사 치고는 꽤 비싸지 않나 싶었다.


"다른 병원보다 3배는 비싸네요?"라고 물어보니 이곳은 사보험이 있는 환자들이 오는 병원이라 그렇다고 한다. 어쩌다 보니 공공보험과 사보험의 차이를 극명하게 경험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렇게 비싼 만큼 오진율도 거의 없을 거 같다는 느낌이 들긴 했다.



이 경험을 통해 느낀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은 명실상부하게 세계 최고라는 것이다. 전문의를 이렇게나 빠르고 쉽게 만날 수 있는 나라가 전 세계에 몇이나 될까? 물론 서울과 지방의 차이가 많이 난다고는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은 여전히 세계 최강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한국의 국민건강보험과 전문의들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둘째, 의료 서비스를 민간 시장의 자율 경쟁 원리에 맡기는 의료 민영화는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율 경쟁은 공공의 이익보다는 개인이나 기업의 이익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결국 국민에게 이득이 되기보다는 엄청난 부담이 될 우려가 있다. 만약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의료 민영화가 꼭 필요하다면, 이미 이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들의 장단점을 철저히 분석하고 공개한 후, 의료계와 정부, 국민이 함께 논의하여 투표로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얼떨결에 뉴질랜드 의료 시스템을 경험하면서, 오히려 대한민국 의료의 장점을 더욱 뚜렷하게 느끼게 되었다. 비록 840불이라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지만, 직접 겪어보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부분을 오히려 분명하게 알 수 있었기에, 그 점에서 충분히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의 요지는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 만세'라 하겠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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