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면 연락해!

정답은 없지만

by HannaH

그 친구가 좋으면 내가 연락해서 만나면 된다.

그 친구가 나에게 연락하지 않아도

내가 그 친구를 여전히 좋아하면 나는 연락을 하고 또 만나자고 한다.


난 이렇게 생각하는 편이라고

아마 충정로 어디를 걸으면서

내가 아주 좋아하는 친구에게 말한 적이 있다.


내 친구는

자신이 일방적으로 연락을 한다고 생각하면

섭섭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때 나는 내 생각을 말해주었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이 친구를

정말 오랜만에 만났다.


원래 지난주에 만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녀가 감기 기운이 있다고 한 주를 미뤘고

나는 그 사이 감기가 걸려 이제 나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보통이면 쉬고 싶었을 테지만

또 취소하고 싶진 않았다.


여하튼...


내 친구는 요즘 친구를 정리 중이란다.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는데

자신은 그렇게 잘 되지 않는단다.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꼭 내 말이 정답은 아니다.

나는 잘 지내냐 전화도 하고 한 번 만나자고 하는데

일방적이라 느껴지면 서운한 게 당연하고

나도 그 정도가 심하다면 그만둘 것 같다.


"그 친구가 좋으면 내가 연락해서 만나면 된다.

그 친구가 나에게 연락하지 않아도

내가 좋으면 나는 연락을 하고 또 만나자고 한다."


이 마인드는 사실 다른 친구가 나에게 해준 말이다.

그 친구는 대학 때 자기가 혼자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자기가 먼저 연락하고 만나자고 했고,

먼저 연락을 받거나 만나자고 하는 얘기는 못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이 어느 정도 흐르니 서로 좋은 친구가 되었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나도 그렇게 마인드를 바꿔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괜히 친구들은 나에게 왜 연락을 안 할까 생각할 시간에

내가 먼저 연락해 보고

만나자고도 해보고 하면 되지 않나?

어릴 때는 누구나 나를 찾아줬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니

내 친구들은 똑같은 친구들이지만

내가 편해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내가 우정이나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한층 건강해진 느낌이었다.


시점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 친구가 좋으면 내가 연락해서 만나면 된다"라고 생각하면

우정과 관계의 중심에 '내'가 있다.

친구의 연락을 기다리면

그 관계의 중심에는 '너'가 있다.


내가 바라보는 시점에서 관계는

'내'가 중심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좋아서 만나고

'내'가 시간을 내는 노력을 하고

'내'가 '너'를 아끼는 것.


'너'가 나를 좋아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너'가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를 물어주는 것도 좋지만,


'내' 시점에서는 나를 중심에 두고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너'의 시점에서도 '너'가 시간과 여건이 되면 나에게 손을 내밀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나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친구의 서운함을 백분 이해한다.


그리고

나에게 정답인 것이

너에게 정답이라는 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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