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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핸내 Jun 05. 2023

1. 모두의 시작을 응원하며

시골살이 적응기 '나로 살기로 핸내' 2023년 3월 12일 

시작하며

처음 시골살이 뉴스레터를 홍보한 날, 심장이 너무 두근대서 얼른 잠자리에 들었어요. ‘누가 구독했을까?’ 들뜬 마음으로 끊임없이 구독 신청 결과를 새로고침 했어요. 그 정도의 마음이라면 밤새도록 새로고침을 누르고 있을 것 같아서 얼른 이부자리로 향했죠. 아무튼! 저의 소중한 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여러분과 10주 간 함께 할 핸내입니다. 3월부터 12월까지 전라남도 곡성군에서 농사 지으며, 작은 농촌 마을에서 일어나는 재미난 일들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저의 글이 여러분의 삶에 작은 숨 쉴 구멍이 되길, 또 대나무숲이 되어지길 바랍니다. 


보리수청과 수제담배

곡성에 온 지 5일차, 드디어 나만의 여유로운 시간이 생겼다!

‘밀린 일기도 쓰고 널브러진 옷가지들도 정리해야지. 아 맞다. 책도 읽어야하는데’라고 생각만 했다. 우선 책상에 앉았고, 앉자마자 심심했다. 서울에서는 사람들도 잘 안 만났는데, 여기서는 왜 이렇게 사람들이 보고 싶은지 모르겠다. 심지어 개 짖는 소리만 들려도 반갑다. 이 동네 개들은 사람이 오면 다같이 여기저기서 우렁차게 짖기 때문이다. 도저히 할 일에 집중할 수가 없어 옆 동네 사는 BN에게 카톡을 남겼다. “BN 뭐해요? 오랜만에 혼자 있으니 약간 심심해서 BN네 집 놀러가도 돼요?” “ㅎㅎ네 놀러오세요.”라는 답장을 받자마자 슬리퍼를 직직 끌고 BN네 집으로 향했다. 대문 앞에는 어르신의 보행보조기가 있었다. 들여다보니 마을 할머니가 BN과 함께 평상에 앉아있었다. 정각이면 꼬박꼬박 울리던 휴대폰 시계가 울리지 않아, 마을에 몇 안 되는 청년인 BN네에 도움을 청하러 온 것이다. 복지관에서 근무하던 때가 떠올랐다. “티비가 안 나와요. 휴대폰이 고장 났어요.” 등등의 민원들. 오랜만에 복지관에서의 일상을 추억하며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보는 할머니와 반갑게 인사한 후, 평상에 걸터 앉았다.


내가 할머니의 휴대폰을 봐드리는 동안 BN은 보리수청을 꺼내왔다.

보리수청?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그 보리수나무? 맞았다. 작년에 옆 동네 사는 JY네에서 보리수가 많이 났다며 BN에게 주었다고 한다. 처음 보는 비주얼에 처음 느끼는 맛. 으스러진 보리수의 빨간 과실을 보며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청을 들이켰다. 어메이징! 시-원하고 산뜻한 목넘김, 약간 떫은 듯하다가도 달콤하게 씹히는 으깬 과실! 더운 여름날 개운하게 씻은 후 평상에 앉아 벌컥 들이키고 싶은 맛이었다. 단 한 잔의 영향력은 강력했다. 딱 한 잔만 마셨기에 더 생각나고 마시고 싶고, 심지어 보리수 나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마저 하게 했다. 휴대폰에 정각알림 어플을 깔아드리고 BN은 할머니께 천마차, 율무차 같은 것들을 챙겨 보내드렸다.


“핸내, 수제담배 펴볼래요?”


두…두근… 담배라고는 연기 한 번 들이켜본 적 없기에, 수제담배는 더더욱 이색체험으로 다가왔다. 담배를 태우기 위한 준비과정은 이러하다. 장난감 같이 생긴 담배말이 도구에 담배잎과 원기둥 모양의 하얀 무언가를 넣는다. 원기둥은 입에 닿는 필터이다. 그리고 그 위에 종이를 끼워 돌돌 만다. 잘 말린 종이의 끄트머리에 혀를 갖다댄다. 혀로 쭉 한 번 스친 후, 붙이면 수제담배 완성이다. 라이터는 플라스틱이기 때문에 소지하고 있지 않아 성냥으로 불을 붙인다. 칙, 불을 붙이려면 담배를 물고 숨을 들이켜야 한다. 도저히 할 수가 없어 BN이 대신 붙여주었다. BN의 시범을 본 후, 나도 한 번 들이켜봤다. 폐까지 들이켜야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던데, 폐로 들어가기도 전에 켁켁대며 연기를 내뱉었다. 웩. 목이 칼칼하고 매웠다. 다시 도전. 3-4번 들이키니 졸음이 쏟아졌다. BN은 이미 한 번 들이키고 어질어질댔다. ‘담배 피면 몽롱하다는 게 이건가?’라는 생각과 함께 드러누워 문밖을 바라보았다. 평화로웠다. 고양이 두 마리가 올라탔던 돌담과 가마솥 덮개가 보인다.

수제담배 만들기 이색체험!
햇살 좋은 곳에서 잘 말아진 담배


시골 여성청년들이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하는 방식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1908년, 미국 뉴욕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근로여건 개선과 참정권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진다. 여성들의 투쟁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세계 여성의 날’이 지정된다. 그 날을 상징하는 빵과 장미. 빵은 생존권, 장미는 참정권을 의미한다. 그로부터 115년이 지난 지금, 우리사회는 많이 달라졌을까? 여전한 여성혐오 범죄와 임금격차, 성차별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잘 살아보아야지.


9시에 두부 만들기로 했으니깐 8시엔 일어나서 달리기를 해야했다.

빈둥대다가 8시 20분이 되었고, 결국 나는 씻지도 못한 채 달리기를 끝내자마자 두부 만들기에 참여했다. 전 날 불려놓은 유기농 국산 메주콩을 가져왔다. 두부기계와 가스를 설치하고 가마솥을 준비한다. 두부기계에 메주콩과 물을 넣으면 한 쪽 구멍에서는 바짝 마른 비지가 눈처럼 쏟아지고, 다른 한 쪽에서는 콩물이 와르르 흘러내린다. 한 가마솥 가득 받아낸 콩물을 가스불 위에 올린다. 바닥에 늘러붙지 않도록 흥부와 놀부에 나올 것 같은 큰 주걱으로 계속 저어준다. 콩물을 끓이면 거품이 몽실몽실하게 올라온다. 한 번 확 끓으면 찬물을 들이붓고 불을 끈 후 식힌다. 90도씨가 되면 간수를 둘둘 두른다. 간수를 두르는 방법은 두 가지. 나무주걱으로 콩물을 휘휘 저은 후 간수를 그대로 넣는 방법과 간수를 손으로 둘둘 두르면서 넣는 방법. 참고로 간수는 천일염을 가마니에 가만히 두면 나오는 소금물이라고 한다. 간수를 넣고나면 서서히 콩물이 몽글몽글하게 뭉쳐지며 순두부가 된다. 그때쯤이면 꼬소한 냄새에 못 이겨 결국 국자를 갖다대게 된다. 고소하고 부드럽고 입에 착 감기는 맛. 사랑해, 순두부!

줄줄 흘러나오는 콩물과 눈처럼 흩날리는 비지
저 세상 꼬수움이었던 순두부

우리가 두부를 만든 이유는 여성의 날을 기념하기 위함이다.

이번이 이곳에서 마을 여성들과 함께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3번째 해라고 한다. 두부를 만들기 전 날, 5명의 여성 청년들이 마을회관으로 모였다. 두부와 함께 드릴 편지를 쓰고, 광주에서 있을 여성의 날 행진 피켓을 만들기 위함이다.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귀농인들은 농사를 지을 때 가장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작당모의를 할 때 가장 재밌다. 작은 시골마을에서 자체적으로 여성의 날을 기념하고 즐기는 것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편지에 어떤 내용을 적을지, 박스 피켓에는 어떤 글귀를 쓰고 싶은지 대화하고 잠잠히 고민도 하며 여성의 날을 준비했다.


그간 여성의 날을 제대로 누리고, 기념해본 적이 있는가?

어쩌면 처음으로 하루종일 여성의 날을 축하하고 기념해보는 것 같다. 순두부 한 가마솥을 그대로 트럭에 싣고, 우리도 실린 채 회화마을회관으로 향했다. 전 날 만든 포스터에는 10명의 여성 어르신 성함을 적어두었다.(참고로 이 마을에는 아직도 전화번호부가 존재한다. 21년도에 업데이트 된 아날로그 전화번호부 책을 봤다.) 한 명, 두 명 오기 시작했으나 잘 모르시는 어르신들을 위해 마을 이장님께 안내방송을 부탁했다. 요즘은 휴대폰 어플로 마을방송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너무 재밌지 않은가? 이장님의 버벅거리는 방송이 웃겨서 영상으로 기록해두고, 찾아오는 할머니들을 맞이했다. 찾아오시는 분들께 여성의 날의 의미를 소개하고 우리가 만든 순두부를 나누었다. 너무 맛있게 잡수셔서 뿌듯했고, 마을 어르신들께 처음으로 인사드리는 자리이기도 하여 재밌었다.

누군가의 어머니, 아내가 아닌 이름을 불러드리고자

회화마을에서의 나눔을 마치고 우리가 사는 덕산마을로 왔다. 이곳에서는 6명의 여성을 가가호호 방문했다. 우리가 쓴 편지를 읽어드리고 네모난 두부를 전달했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직접 만든 두부를 준비하였습니다. 여성이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오래 전부터 많은 여성들의 노고가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 잘 살아가봅시다!” 이후 광주에서 여성의 날 행진을 했고, 다시 돌아와 두부를 마저 나누러 나갔다. 마지막 방문지였던 SD네에서는 우리를 위해 케이크를 준비해두었다. 편지를 읽기 전, BN이 정우의 철의 삶을 기타와 우쿠렐레에 맞춰 불렀다. 편지를 읽고 케이크의 초를 끄며 하루의 끝자락까지 여성의 날을 기념할 수 있었다.

여성의 날 끝자락에


핸내의 고민

마을 탐방을 하던 날, 혼자 농사 짓고 있는 여성 JY를 보았다.

청바지에 흙색 반팔, 팔찌, 자그마한 문신, 목에 두른 스카프, 모자에, 맨발로 땅을 밟고 있었다. 노래를 틀고 혼자 밭을 갈고 있었다. ‘농사가 이리도 멋있을 수 있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잽싸게 들었다. 이곳에 귀농한 사람들 대부분은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으며, 최대한 자연의 것을 활용하는 자연농을 하고 있다. 자기만의 밭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농사를 짓는다. 내가 생각했던 농사는 무조건 함께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혼자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마도 대량으로, 정해진 방식대로 하는 상업농사가 아니기 때문에 그러하겠지. ‘어,, 근데 나는.. 혼자 일하는 거? 잘 못할 것 같은데? 같이 일하는 게 더 좋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농사가 나에게 잘 맞을 것인가? 이번 년도가 지나면 알 수 있겠지. 한 해 동안 멋쟁이 초보 농부로 잘 배워가보자.

많은 이들의 롤모델 멋진 농부 JY
토마토 모종내기
비닐 대신 멀칭, 비료 역할 해줄 탄소 가득한 낙엽 긁어오기

생각해볼 거리

여성의 날을 맞이해 광주 비건빵집 빵과장미에서 <저항과 돌봄; 여성의 언어로 다시쓰는 자본주의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이라는 주제로 채효정 선생님을 초대해 강연을 했다. 거대한 자본주의의 문제를 우리는 저항과 돌봄으로 대응해보자고 한다. 우리는 각자 ‘돌봄’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고 있는가? 우리 모두는 돌봄이 필요한 존재이며, 서로 돌보며 살아가야하는 세상이라는 것을 인정하는가? 계속해서 돌봄이 상품화 되고 파편화 되는 돌봄시장에서의 문제는 없을까? 단순히 누군가 먹이고 재우는 돌봄을 넘어서 양방향적으로 이루어지는 돌봄, 돌봄…,돌봄… 어렵군요. 강의를 들었지만 여전히 나는 기후위기, 핵위기, 금융위기 등의 문제에서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겠는 실정이며 그저 내가 있는 자리에서 부단히 말하는 사람이 되어보고자 합니다.


마무리하며

이번 뉴스레터는 그림을 그리듯 저의 기억을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었어요. 저의 깊은 감정보다는 제가 사는 곳의 풍경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잘 그려지고 느껴졌길 바라며, 모두들 돌아오는 한 주도 생명력 가득하길 바라요. 아참, 저는 여러분의 이야기도 너무 궁금한데요. 여러분은 지금 어떤 시작 앞에 서있나요? 피드백을 눌러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혹은 제 글에 대한 느낌이나 궁금한 점들 뭐든 좋아요. 길고 긴 글이었지만 여러분에게 짧게 읽혔길 바라며, 이만 물러나보겠습니다. 모두들 생명력 가득한 한 주 보내길 바라요!

러닝하면서 보는 평화로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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