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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핸내 Jun 05. 2023

2. 봄 내음 가득한 한 주

시골살이 적응기 '나로 살기로 핸내' 2023년 3월 19일

시작하며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핸내입니다. 한 주간 잘 보내셨나요? 저는 몰아치는 감정의 파동을 마주하며 한 주를 보냈습니다. 모든 것이 새롭고 재밌었던 첫 주를 보내고, 두 번째 주에는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매일 매일의 감정과 생각이 달라서 한 주를 돌아보면 굉장히 아득한 과거 같네요. 여러분은 이번 한 주 어떤 감정을 주로 느꼈나요?


감각하는 것이 확장되는

지난주 토요일 밤, 광주에서 돌아온 우리는 버스가 끊겨 무작정 걸었다. 이 근방에 집으로 향하는 농로가 있다고 하니 한번 걸어나 보자(*농로: 밭과 밭 사이에 있는, 농사에 이용되는 길). 집까지 2시간이나 걸리는 농로를 진짜 걷게 될 줄이야. 차도에서 농로로 내려가는 길을 하염없이 찾았다. 차도만 계속해서 보였을 때, 나는 생각했다. '택시... 택시 타게 될까? 타도 좋겠다.' 하지만 불굴의 NB. 결국 농로를 발견했고 나는 그를 믿고 따라갔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농로를 걸으며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여기서 멧돼지가 나타나면 어떻게 피하지?', 'NB와 갈등관계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그가 나를 밀어버린다면...', '이 깜깜한 밤에 밭으로 굴러떨어진다면 얼마나 무서울까? 신고는 할 수 있을까?' 잡다한 생각에 사로잡힐 즈음, NB가 말을 걸어왔다. 웬걸, 대화를 나누니 무서움이 싹 가셨다. 그 뒤로는 농로 주변에 있는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깜깜한 농로 주변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었다. 논밭과 물이 고인 곳, 축사가 있었다. 축사 근처를 지날 때면 개가 꼭 짖었다. 축사를 지키는 개인가보다. 왜 개가 축사를 지키고 있지? 축사 안은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 안에는 소이든 돼지든 닭이든 누군가 살겠지. 좀 더 걷다 보니 <장어 양식장>이라고 써진 곳이 보였다. '장어 양식장? 장어 양식장이 왜 여기 있지?'라는 생각이 들 무렵, 장어 양식장 건물을 보게 되었다. 마치 우리 숙소 앞 커다란 창고 같았다. 얘네가 대체 왜 여기 있는가. 농로를 걷는 내내 이상한 냄새들과 더불어 이상한 감각들이 올라왔다. 


모두가 농촌을 경험하면 좋겠다. 감각하면 좋겠다. 도시에서는 많은 것들이 단절되어 있다. 인간관계 뿐만 아니라 자연과의 관계, 동물과의 관계 또한 그러할 때가 많다. 축사에서 길러진 것들이 아름답게 포장되어 팔린다. 우리는 그저 마트에서 부분 부분 조각난 것들만 보게 된다. 쌀이 어떻게 길러지는지 모르며, 특히나 자취할 때는 값이 싼 것만 찾아 먹었다. 무엇인지 모를 불편감이 글을 쓰는 지금도 올라온다. 


억울하다 억울해 폐기물 처리장

이곳에 온 지 6일차 즈음, 이 지역의 '폐기물 처리장' 이슈를 접했다. 그리고 이번 주 월요일엔 환경청 앞에서 하는 시위에 참여했다. 1995년 지역에 들어선 폐기물처리업체로 인해 주민들은 악취와 오염물질로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몇 년 전에 폐기물 업체는 불법 소각, 폐수 방류의 위법행위를 행해 운영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그런 업체가 이젠 건물을 증축하고 폐플라스틱, 폐타이어, 하수종말처리 과정에서 나오는 하수 찌꺼기를 가져다가 태우려고 한다. 소각한 폐기물을 고형연료제품(SRF)으로 만들어 팔고자 하는 낌새가 보인다. 발암물질, 유해물질을 발생시키는 곳을 어째서 이렇게 마을 가까이에 두는가. 1km도 안 되는 곳에 친구의 집이 있고, 친구의 밭이 있다. 

시골에 내려와서는 도시에서 배출했던 생활 쓰레기양의 절반도 배출하지 않는다. 혹여나 플라스틱과 스티로폼이 나오는 경우, 고추와 토마토 모종 키울 때 활용하고 라면봉지는 깨끗이 씻어 말려 비지를 냉동 보관할 때 사용한다. 포장되지 않은, 흙에서 나는 채소를 섭취하며, 내 몸에서 배출한 소변과 대변은 퇴비로 활용한다.


도시에서는 폐기물 처리장 이슈가 나의 문제가 아니었고, 크게 와닿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나는 너무나도 억울하다. 지방소멸 지방소멸, 문제라고 하면서도 이곳에서 더 살기 어렵게 만든다. 귀농의 가능성은 점차 커지고 있었는데.. 폐기물 처리장 소식을 접하니 속상하기 그지없다. 그렇다면 폐기물 처리장을 어디에 지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건 나도 모른다. 다만, 누군가의 삶과 건강, 터전을 해치지만은 않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주민들은 지금도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쓰레기 활용해서 연료 만들면 좋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때가 떠오른다. 쓰레기를 활용해 에너지를 만드는 일은 순수하게 환경을 위해 국가에서 주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 적나라하게 느꼈다. 쓰레기를 처리해주는 것도, 그걸 연료로 팔아넘기는 것도 순순히 민간기업에 돈이 되는 일임을.


봄 내음 가득한 한 주

속상함과 억울함,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솟아나던 한 주였다. 그러면서도 기쁘고 즐거운 일이 함께 존재했기에 다채로운 한 주였다. 날이 많이 따뜻해졌다. 활짝 핀 매화꽃 주변에는 벌들이 날아다니고 마을 사람들은 나물을 채집하러 산과 밭으로 떠난다. 냉이, 달래, 쑥, 원추리, 광대나물, 지칭개 등 다양한 나물을 접하게 된다. 이번 주에는 냉이와 달래, 쑥을 많이 먹었다. 쑥국, 쑥부침개, 냉이장아찌, 냉이무침, 달래무침, 달래 페스토. 이번 주 최고의 음식은 단연 달래 페스토이다. 금요일 주간회의를 마치고 마을의 책모임에 참여했다. 갖가지 간식 중 눈에 띈 베이글과 연두색 페스토. 조용히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내 안에서는 파티가 열렸다. 쌉싸름하면서도 개운하게 씹히는 달래와 부드럽게 빵과 조화를 이루는 달래 페스토. 충격적이었다. 이번 책모임은 달래 페스토가 다했다. 책모임이 끝나고 빵과 페스토를 만들어온 P의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핸내: 저는 밭에 내려주시면 돼요. 쑥을 뜯어가려고요.", "P: 아참, 달래 페스토 좀 줄까요?" 두근... "핸내: 헉.. 감사해요!! 그럼 제가 쑥을 다 뜯으면 P네 집에 찾아갈게요." 그렇게 오토바이에서 내려 나는 50분가량 쑥을 뜯었다.

한창 쑥을 뜯고 있을 때, P가 빵과 달래 페스토를 들고 밭으로 왔다. 나는 감사한 마음에 그때까지 뜯은 쑥을 두 움큼 쥐여줬다. 아낌없이 주는 P. 그간 나는 P에게 줄 것이 없어 아쉬운 마음이 있었는데, 직접 뜯은 쑥을 줄 수 있다니. 기쁘다! 집에 돌아와 P가 만든 호밀빵에 달래 페스토를 발라 먹었다. 입 안에 봄 내음이 가득했다. 당장 유튜브를 켜서 봄노래를 검색해 들었다. 아이유의 봄 사랑 벚꽃 말고가 흘러나왔다. 내가 먹고 있는 이 달래는 그냥 달래가 아니다. P가 직접 캐서 만든 달래 페스토다. 왜인지 느낌이 굉장히 색달랐다. '카페에서 사 먹는 달레 페스토와 빵이었다면 이 정도로 감탄이 나왔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감사한 마음이 크게 들었다. 


미국 남부 뜨거운 사막 선인장 사이 그늘 아래서

이번 주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매일 아침 9시에 폴리카보네이트 온실을 만들었다. 삽질하고 톱질하고, 온실을 조립한다. 흙 위에 짓기 때문에 몸에 흙먼지를 묻히는 게 당연하다. 하루는 온실 만들기 후에 외식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씻고 방에 들어가 쉬면 되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벤치에 앉아 햇살을 맞으며 잠시 꾸벅대다가 돗자리를 들고나왔다. 집 앞 데크에 돗자리를 깔고 누웠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어 마치 찜질방에 온 듯했다. 오른쪽에는 반려견 앵두가, 왼쪽에는 도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평화로운 오후였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점심을 먹고 마을의 보호수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서 친구와 책을 읽었다. 살랑이는 바람과 평화로운 마을 풍경. 대나무 찰랑이는 소리. 평화로움을 즐기기만 해도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는데, 도시에서는 대체 그 많은 일들을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해냈던 것일까.

마무리하며

요즘 제 기쁨의 원천은 '나살핸'을 발행해내는 것과 여러분과 소통하는 것입니다. 제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의 한 주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한 주간 있었던 일과 생각을 어떻게 정리하고 기록하시나요? 저는 이번 주도 여러분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한 주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돌아오는 주도 파이팅 하시길 바랍니다!

회화마을 보호수 아래 볕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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