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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핸내 Jun 05. 2023

3. 우리 마을을 소개합니다.

시골살이 적응기 '나로 살기로 핸내' 2023년 3월 26일

시작하며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핸내입니다. 오늘은 저, 핸내와 저희 마을에 대해 소개해보도록 할게요. 우선 저의 별칭인 '핸내'는 어떻게 짓게 되었는지 알려드릴게요. 바야흐로 5~6년 전, 대학교에서 기독교 동아리를 했었는데요. 그 당시 동아리 언니들이 '한나'인 저의 이름을 변형하여 '핸내'라고 불러주었습니다. 정말 단순하죠?? 동아리를 하며 무조건적인 사랑과 공동체의 따뜻함을 경험할 수 있었기에, 그 때를 기억하고자 '핸내'라는 별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사실 별다른 별칭이 떠오르지 않아 사용한 것인데, 나름의 의미를 덧붙여보았습니다.)


우리 마을을 소개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마을은 곡성군 겸면에 위치한 덕산마을입니다. 도보 20분 내에 여러 마을이 위치하고 있는데요. 이곳에는 곡성 토박이 어르신들과 귀농한 청년, 장년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핸내는 왜 곡성에 갔나요?

곡성을 아시나요? 많이들 영화로 기억해주시는데요. 2021년 여름 졸업 후, 우연한 계기로 곡성 한달살기 '청춘작당'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지역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죽곡면에서 살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렌터카 지원이 되어 곡성 여기저기에 놀러 다니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바빴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지금 속해있는 '자자공(*청년 귀농을 돕는 프로그램 이름)' 사람들과 함께 벼를 추수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그 당시 꽤나 충격이었습니다. "젊은 청년들이 여기서 농사짓고 산다고? 왜?"라는 의문과 함께 호기심이 생겨 이런저런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거대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하게 소비하고 환경을 훼손하는 생활방식에서 벗어나, 농사를 통해 사람과 자연과 연결되는 삶을 지향하였습니다. 또한 자급자족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관행적인 농사에서는 화학비료를 사용하고 비닐로 멀칭(*수분 유지, 토양 유실 방지를 위해 밭을 무언가로 덮어주는 것)을 하고, 곤충과 풀을 없애기에 급급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자연을 최대한 해치지 않고, 공존하는 농사 방식인 퍼머컬쳐를 지향합니다. 낙엽과 쌀겨로 멀칭을 하고, 대변을 퇴비로 사용합니다. '아하!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고 저는 서울로 돌아갔습니다. 


시골에 살기 이전에, 도시에서의 취업 경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22년도에 지역사회복지관에 취업을 하게 됩니다. 사회초년생...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더군요. 입사 초반, 한창 힘들었던 주에는 출퇴근 길 내내 울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점차 적응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만나는 동료들과 주민들과 함께 웃는 일도 많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늘 생각했습니다. '나에게 대안적인 삶은 없을까? 조직이 원하는 일 말고, 내가 주체적으로 내 시간을 쓰고, 또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이 들었습니다. 계속되는 고민과 함께 10월쯤, 자자공이 떠올랐습니다. 자자공 2기로 10개월 생활을 마친 후, 곡성에 정착한 BN에게 연락했습니다. 통화할 당시만 해도 곡성에 정말 오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저 BN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안부가 궁금했습니다. BN은 저에게 자자공 5기에 지원하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집 계약과 부어야 할 적금이 남아있어.. 돈도 별로 없고. 사회복지사 1년 차에 그만두기는 너무 아쉽지 않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통화를 하면 할수록 저의 완강했던 마음은 부드러워졌고 점점 홀리기 시작했습니다. 


IPCC(*정부 간 기후변화에 관한 협의체)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위기 티핑포인트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자자공도 이번이 5개년 사업 마지막 연도이기 때문에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라는 말을 저에게 남겼죠. 통화를 끊고, 약간은 신이 난 상태로 저보다 인생을 10년 정도 더 산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 친구와의 통화도 한몫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면 좋겠어. 어쩌면 그곳에서 네가 하고 싶은, 새로운 기회가 찾아올 수도 있잖아!"라고 말했습니다. 아, 내가 듣고 싶었던 답이다. 이 친구를 떠올리길 너무 잘했다, 라는 생각과 함께 더 들뜨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1년 1개월 동안 일하고 퇴사했습니다. 많은 이들의 축복과 응원을 받으며 말이죠. 그리고 지금 곡성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 왜 곡성이었냐고요? 잠깐이지만 대화를 나눠본 이곳 사람들이 좋았고, 행복해 보였어요. 


그래서 자자공이 뭐예요? 뭐하면서 살아요?

자자공은 자연, 자립, 공유의 줄임말이에요. '자연에서 자립하는 힘을 기르고 공유함으로써 풍요로워짐'을 뜻한대요. 이곳에는 항꾸네 협동조합이라는 공동체가 있어요. 사회적 농업 예산을 지원받아 협동조합에서 '자자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먼저 귀농하신 분들이 협동조합을 설립하였고, 귀농에 관심 있는 청년들이 농촌에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자자공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퍼머컬쳐 방식에 따라 농약, 화학비료, 제초제, 비닐, 경운 없는 농사를 지향하고, 자급자족할 수 있는 농사를 짓습니다. 시골음식 만들기 월 1회, 생활자립기술(목공, 바느질 등) 배우기 월 1회, 농가탐방 연 4회, 지역탐방 연 3회, 농서토론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폴리카보네이트 온실도 만들었고요.
메주 담그기도 했어요.
'다양성을 엮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총 10개월간 저 포함 5명이 '꿈엔들'이라는 곳에서 생활합니다. 꿈엔들은 초기에 이곳에 귀농하신 분들이 청년 귀농을 돕기 위해 직접 지은 집입니다. 저희는 주 1회, 매주 금요일 주간회의를 통해 다음 주 일정을 정합니다. 본인이 심고 싶은 작물을 직접 선택하여 씨앗을 구입하거나 이웃들에게 나눔 받아 각자 주어진 밭에 심습니다. 저는 농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왔지만, 같은 기수분들은 도시농업을 통해 기본적인 농사 지식은 갖고 계시더라고요. 3월에는 고추와 토마토, 가지 씨앗을 모판에 심어 키우고 있습니다(모종). 어제는 씨감자를 직접 밭에 심었어요(파종).


하루 종일 농사만 짓나요?? 아니요. 3월은 농번기가 아니어서 한가합니다. 오전에 공통일정(ex. 온실 만들기, 낙엽긁기, 모종 등)을 마치면 개인 시간을 보냅니다. 개인적으로 책도 읽고, 러닝도 하고, 기타도 치고, 장도 보러 가고, 밥을 준비하고,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폐기물 처리장 반대 시위에 참여하기도 하고, 내일은 장구를 배우러 사물놀이 단장님 댁에 찾아뵙기로 했답니다.


이웃들이 있어요.

"깜깜한 곳에서 잠들고 싶어!"라는 소망을 가지고 내려왔어요. 도시소음과 도시불빛에 질려버린 상태였고요. 한밤중, 창밖에는 상가 조명이 빛났고, 맞은편 건물 복도 비상등은 초록 조명이다, 생각하고 잠들었어요. 안대를 쓰고 자는 것에 익숙했고요. 제주도에 살 때는 '밤은 어둡다'라는 진리가 통했지만 제가 거주했던 서울 오피스텔에선 통하지 않았어요. 곡성에 내려온 후, 드디어! '밤은 어둡다'라는 진리가 다시 통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무섭다. 밤에 달리기에 마땅치 않았고, 마을카페에서 돌아오는 것은 너무 무서웠어요. 다시는 밤에 마을카페에 혼자 가지 않기로 다짐했어요. 세상을 살아갈수록 더 겁쟁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어두운 곳은 무서운 곳이라는 인식이 더 강해졌고, 어두운 밤길은 위험해서 다니면 안 될 곳처럼 여겨지곤 하네요.

하지만 이곳에서 밤 산책을 계속하고 싶다면 대담하게 걸어다닐 수 있어야 해요. "밤길 안 무서워요?"라고 이곳 사람들에게 물었어요. "사람만 안 나타나면 괜찮아요.", "사람이 없어서 괜찮아요." "제가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달려와 줄 사람들이 있어서 안심이 돼요."라는 답변을 들었어요. 역시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 그다음은 멧돼지.


하루는 밤에 러닝을 하기 위해 나갔어요. 우연히 만난 이웃분께서 "양봉하는 집까지는 가지 말아요. 돼지 나와요."라고 말씀해주셨어요. 헉... 네... 아랫동네에서 가로등 있는 곳만 찾아 달렸어요. 한정된 지역에서 왔다 갔다 하며 나름대로 야무지게 말이죠. BN네와 P네 집 앞에서도 달렸어요. 그 길에서는 왜인지 안심이 되었어요. 안전한 이웃이 존재한다는 것이 심리 정서적으로 이렇게나 큰 도움이 된다니. 문득 이웃이라는 존재가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이웃이란 뭘까? 나에게 이웃이 존재하긴 했을까? 어쩌면 내가 가장 바라왔던 관계인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이웃과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할지 고민이 들었습니다. 


주민이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지역사회. 지역사회복지관에서 일하며 줄곧 바라왔던 것. 이곳에서 2~3년 이상 거주한 사람들과 이웃관계, 공동체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어요. 각자가 생각하는 공동체의 의미와 범위는 천차만별이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공동체는 '나의 이익을 따지기보다 서로가 좋아서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돌보는 관계'예요. (돌봄의 정의 또한 다양하겠지만 말이죠.) 그래서 저는 책모임 하는 친구들도, 교회 사람들도, 드물게 만나지만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때때로 위로가 되어주는 사회복지스터디도 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저는 이상적인 관계를 지향하는 사람인 것 같네요.

현실적으로 마을에서 이웃과 가까이 지내더라도 고립감을 느낄 수 있고, 너무 가깝고 밀접하게 연결되어 거리 두고 싶어도 그렇지 못하게 될 수도 있고. 특히나 이웃인데 또 다른 이해관계로 엮였을 땐? 와오. 조그마한 마을 안에서 갈등이 생긴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문득 궁금해지네요. 일 년 뒤의 저는 이곳에서 이웃들과 어떤 관계를, 어느 깊이만큼 맺고 있을지 기대하며(혹은 걱정하며)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마무리하며

오늘의 글은 마치 자자공 지원서 같네요. 그래도 언젠가 한 번은 제가 곡성이라는 곳에 오게 된 계기를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저의 글을 통해 곡성이라는 곳을 떠올렸을 때, 영화 곡성의 으스스한 분위기 말고 새로운 분위기를 느끼실 수 있으면 좋겠네요. 여러분은 이웃관계를 맺고 있나요? 이웃은 여러분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궁금하네요. 이번 주도 고생 많으셨고, 돌아올 한 주, 만개한 꽃을 충분히 누릴 수 있길 바랍니다. 


+ 시농제 이야기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시농제
어떤 행사든지 풍물과 함께 하는 농촌
축문

< 마음이 먹먹해지는 축문 > 

유세차 이천이십삼년 삼월하고도 이십오일.

이곳 남도 곡성에서 항꾸네 식구들이 모여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시농제를 올립니다.

만물이 그물처럼 엮여있다는 단순하면서 명확한 이치 안에서, 자연에 기대어 선하게 살고자 하오니 올해도 무탈히 보낼 수 있도록 굽어 살펴 주옵소서.

이 자리에 생태적인 삶을 바라며 첫걸음을 뗀 청년들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항꾸네와 더불어 연꽃과 같은 순수함, 바람과 같은 자유의지, 사자와 같은 의연함으로 무소의 뿔처럼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옵소서.

신선한 공기, 맑은 물, 밝은 햇볕, 넉넉한 대지, 미생물을 비롯해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존재에게 감사드리며, 저희도 자연을 닮아 서로 돕고 보살피며 조화롭게 살아가겠습니다.

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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