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적응기 '나로 살기로 핸내' 2023년 4월 2일
어느덧 2023년의 1분기가 지나갔네요, 라는 뻔한 인사말로 시작해봅니다. 새로운 곳에서의 한 달을 어떻게 보냈는지 돌아보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저와 함께 질문에 답하며 한 달을 돌아보면 어떨까요?? 물오름달은 3월을 지칭하는 말로 '산과 들에 물이 오르는 달'이라고 합니다.
①서울에서 4일간의 지출(3/1~3/4)과 ②곡성에서 27일간의 지출(3/5~3/31)을 정리해보았습니다. 3월 지출총액 820,183원 중 ①지출액은 417,970원(50.96%), ②지출액은 402,213원(49.04%)입니다. 고작 4일밖에 안 되는 서울생활 동안 3월 전체 지출액의 절반 이상을 써버리다니. 대체 어찌 된 일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역시나 시골에 내려오니 소비패턴이 완전히 바뀌었는데요. 서울에서 1순위였던 주거비가 곡성에 와서는 5순위로 밀려났고, 서울에서 6순위였던 교통비는 곡성에서 1순위로 올라갔습니다. 서울에 한 번 다녀오면 5만 원은 족히 깨지네요. 곡성에 와서 저는 웬만하면 읍내에 나가지 않습니다. 버스 시간을 잘 맞춰야 하고, 개인 차를 이용하는 것에 비해 3~4배의 시간이 들기 때문에 시간이 약간 아깝더라고요. 더군다나 저녁 8시 반 이후면 집으로 오는 버스가 끊겨 일찍 돌아와야 합니다. 아, 물론 시골에서도 버스가 주는 매력이 있긴 하더라고요.
곡성에서 사용한 카페 비용은 0원. 도보 20분 거리에 있는 마을도서관 겸 카페 이외에 걸어서 갈 만한 카페는 없어요. 그래서 카페 비용을 지출할 일이 없네요. 원래 카페를 좋아하는 편이 아닌 줄 알았는데, 여기서 생활하다 보니 생각보다 카페가 제 삶에 중요한 공간인 것 같아요. 전환이 필요할 때 가까운 카페에 가면 새로운 것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여기서는 아직 그런 공간을 찾지 못해 아쉽네요.
아무래도 이동의 제약이 있다 보니 답답함을 느껴요. 그래서 어떤 목적으로든지 누군가의 차를 얻어타고 읍내나 광주로 다녀오는 일이 여전히 신나네요.
수입은 없어요. 자자공에서 식재료비(1주일 기준 1인당 9천원)와 농사에 필요한 도구와 씨앗 구매 비용을 지원해주고 있어요. 프로그램 준비물이나 진행비용도 지원 되어서 별도의 추가 비용은 없습니다. 이전 기수에서 만들어놓은, 혹은 이웃들로부터 받은 다양한 종류의 김치를 먹고 있고요. 산나물을 뜯어다가 요리해 먹기도 합니다. 마을에 살다 보니 이웃들의 나눔이 여기저기서 쏟아지네요.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귀촌해서 자급자족으로 농사짓고 살더라도 일정 수준의 수입이 필요하다!'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어요.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활용해 꾸러미 사업을 하기도 하고, 면사무소에 소속되어 산불감시원으로 일하기도, 주 5회 사회복지사로 혹은 짧은 시간 생활지원사로, 또는 작가로, 학교텃밭 선생님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저는 무엇으로 돈을 벌 수 있을까요? 재밌는 일을 하고 싶네요.
- 이달의 노래: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원곡자_이소라 / 커버_미노이, 곽진언)
- 이달의 책: 모순(양귀자)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p.158)."
- 이달의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에블린의 다정한 방식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돌보고, 세상에 저항할래"
- 이달의 음식: P가 만든 달래페스토
- 가장 많이 먹은 음식: 양배추 쌈 "양배추 삶은 게 진짜 달았다."
- 가장 신났던 순간: 자자공 사람들과 섬진강 변에 쫙 깔린 벚꽃 보았을 때
- 가장 최악의 순간: 샤워하고 갈아입을 옷을 수건걸이에서 빼다가 수건걸이도 같이 빠져서 옷이 바닥에 떨어졌는데, 옷에 흙먼지와 거미줄이 묻었을 때
- 가장 새로웠던 순간: 집 앞에 돗자리 깔고 앉아 햇살 맞으며 직접 만든 수제담배를 BN과 나눠 폈을 때
- 가장 슬펐던 순간: 혼자서 내 삶을 잘 꾸려나가기에 어려운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 가장 낭만적이었던 순간: 장구 배우고 집에 돌아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
- 이달의 뿌듯함: 한 달간 나살핸을 무사히 발행해내었다.
- 이달의 움직임: 폐기물 처리장 절대 안 돼. 절대 막아.
- 이달의 반성: 혼자서도 시간을 알차게 잘 꾸려나가 보자! 잠자기 전 루틴을 만들어볼까..
- 이달의 깨달음: 지구상에 내가 알지 못했던 미생물의 세계가 어마무시하구나. 세상의 어떤 것이든 함부로 속단해서는 안 되겠어.
- 이달의 농사: 온실 만들기, 모종내기(고추, 토마토, 가지, 강낭콩, 바질, 양귀비, 로메인), 감자와 완두콩 심기, 삽질로 물길 만들기, 장화 구매, 논밭에 토착미생물 뿌리기
- 주차별 생각의 흐름: (1주차)짐 싸야 되는데 / (2주차)우와!! 너무 재밌다!!! / (3주차)시골이 더 힙해. 정착해보고 싶다. / (4주차)휘몰아치는 감정 / (5주차)삶이란... 무엇인가
- 한마디로 정리한 이번 달: 사랑해요, 여러분^^
요즘 군것질을 정말 많이 하네요. 누군가 말하길, 군것질거리를 찾는 것이 마음의 상태가 반영된 것일 수 있다고 했어요. 호르몬의 작용인지 아니면 진짜 마음이 헛헛해서 그런 건지 계속 뒹굴고, 회피하고 휴대폰만 하고 싶었지만, 나살핸 덕분에 다시 머리를 굴려보게 되네요. 마음을 잘 돌아보고 돌보는 한 주가 되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