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에서 자급자족 배우는 중 '나로 살기로 핸내' 2023년 5월 28일
잘 지냈나요?? 오랜만에 소식을 전하네요. 저는 일주일간 모든 글쓰기를 멈추었더니 머리와 마음이 아주 얼기설기 복잡하네요. 의도적으로 멈춘 건 아니었고, 농사짓고 개인 일정 갖다 보니 차분하게 글을 쓸 여유가 없었어요. 사실... 어느 정도 회피한 것도 있어요. 저는 어릴 적부터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일 벌이기 좋아하는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늘 마무리 하는 것을 어려워했죠. 그래서 함께하는 사람이 있을 때 더 잘 해낼 수 있었어요.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로 끝마치지 못한 채 '저장글'로 남겨둔 경우가 많아요. 그 덕에 최근에 블로그 저장글 99+를 달성했어요.^^
더군다나 책과 영화를 보고 나면 기록해야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르지만, 막상 쓰려고 하면 너무너무 어려워요. 그렇게 계속 미루다가 생각이 휘발되어 버리는 경우가 대다수였어요. 몇 개의 책과 영화가 과제처럼 제 마음속에 쌓여있네요. 누군가 저에게 조언해주었어요. '내 삶과 연결 지어 일기를 쓴다고 생각해보세요.', '한 번에 다 하려고 하지 말고 하루에 딱 15분만 타이머 맞춰놓고 써보세요.'라고요. 생각해보니 저는 몰아서 하는 습관이 있어요. 농사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하루 종일 해버리고요. 대청소도 저녁 먹고 시작해서 다음 날이 될 때까지 했던 기억이 있어요. 영어숙제도 몰아서 할 때가 많고요.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이런 습관이 일을 할 때에 비효율적으로 작용했던 것 같아요. 아주 가끔은 엄청난 효율을 끌어올렸던 것 같기도 하고요.
매일매일의 작은 노력이 쌓여 더 멋진 사람이 되길 바라며, 오늘의 나살핸 시작 해보겠습니다. 오늘은 제가 2주간 했던 생각과 고민들을 기록해보려고 해요.
여러분은 어디서 살고 계신가요? 어디서 살고 싶으신가요? 이번 달은 유독 어디서 살아가야 할 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전주국제영화제에 갔을 땐 전주에서 살아보고 싶었고, 그다음 주엔 바다가 있는 제주도에서, 서울 갔을 땐 페스티벌과 공연 접근성이 좋은 서울에서, 곡성에 돌아오니 농사지을 수 있는 곡성에서 살아가고 싶었어요. 심히 변덕스럽죠? 여기저기 만족스러운 곳이 많은 것이니 즐거운 고민이라고 생각해보겠어요.
저는 제주도에서 태어나 19살까지 그곳에서 살았어요. 20살 대학생이 된 후 5년간 서울생활을 했어요. 그리고 지금은 곡성에 내려와 1년살이 과정에 참여하고 있어요. 제주, 서울, 곡성에서의 생활을 돌아보면, 지역에 따라 제 삶의 형태가 정말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뿐만 아니라 가치관, 배움, 관계, 외모, 하루를 보내는 방식, 취미, 문화생활 등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 없네요.
공간의 전환을 통해 저는 새로운 삶을 맞아들였어요. 제주도에 살 땐, 마냥 행복했어요. 하늘을 보는 것을 좋아했고, 바다는 언제든 갈 수 있었죠. 영원할 것 같은 친구들과 가족들도 있었고요. 서울에 올라와서 엄청나게 높은 건물과 귀가 찢어질 것 같은 겨울 추위를 경험하고 아주 깜짝 놀랐어요. 연합동아리에 들어가 MT도 가고 공연도 해보고, 학교 친구들과 대학축제도 즐겨보고, 대학 동아리 언니들에게 사랑도 받아봤어요. 시험공부 하느라 친구들과 도서관에서 밤도 새워보고, 미팅도 해보고, 해외여행도 가봤네요. 때로는 남는 게 없다는 생각에 절망하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남아있는 게 많네요.
대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게 남은 것은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마냥 행복했던 중고등학생 시절을 지나, 대학생 때 처음으로 사회문제들이 저의 것으로 다가왔어요. 제주도에 살 때는 뉴스에 나오는 일들이 마냥 육지의 일 같았고, 멀게만 느껴졌어요. 내 일상과 내 친구들의 문제에 국한된 시선을 갖고 살았어요. 사회이슈에 대해 계속해서 배우고 대화 나눌 기회도 딱히 없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대학교는 달랐죠. 끊임없이 불합리한 것들에 대해 목소리 내는 학우들이 있었어요. 교양수업을 들으며 불평등한 구조가 어떤 과정을 통해 공고화되었는지 배울 수 있었고, 인간을 인간답게 대우하지 않는 사회에 저도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어요. 동아리에서는 페미니즘과 환경문제에 관심 있는 이들이 많아 옆에서 보고 들으며 인식할 수 있었어요.
졸업하고는 사회복지사로 1년간 우당탕탕 사회생활을 경험했어요. 돈을 벌어들인 덕분에 좋아하는 가수들의 공연을 보러 갈 수 있었답니다. 하지만 서울에 살면 살수록 뭔가 이상했고, 적응이 안 됐어요. 과도하게 밀집된 사람과 차량. 자연과는 거리가 있는 도시. 관계의 안정감도 딱히 찾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계속해서 제주도에서 살고 싶은 갈망이 있었어요.
어쩌다보니 곡성으로 왔네요. 저를 홀릴 만한 무언가가 있었나봐요. 이전까지 농사는 제 삶의 선택지에 존재하지도 않았어요.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농사가 왜 중요한지 인식하게 되었어요. 때에 따라 자연에서 나는 것들로 밥을 차려 먹고, 내가 먹을 것을 직접 심고 거두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장 가르기를 하여 된장과 간장을 얻고, 손바느질로 직접 옷을 수선해보기도 해요. 이곳에서 살며 '할 줄 아는 게 많이 없었구나.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서울에서는 특정 영역을 주로 파고들지만, 이곳에서는 생활하는 데에 필요한 여러 기술을 습득할 수 있어서 좋아요. 곡성에 친구는 별로 없어요. 대신 이웃들은 많아요. 가까이 살며 자주 관계 맺고, 서로 나누며 살고 있어요.
그래서! 일 년 뒤에 어디서 살고 있을 것이냐!? 아무도 모르죠.
공간의 전환이 저에겐 엄청난 삶의 전환으로 연결됐는데요. 여러분의 삶의 전환은 주로 무엇을 통해 이뤄지는지 궁금하네요.
'만약 내가 곡성에 정착한다면 어떻게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답을 내릴 수 없었어요. 이웃들은 회사에 속하지 않은 채 다양한 방식으로 소득을 벌어들이고 있어요. 글을 쓰거나 학교텃밭 선생님을 하거나 농산물꾸러미를 팔거나 어린이 등하교 돕는 일을 하거나 산불감시원을 하거나 자자공 스태프 등을 하며 돈을 벌어요. 그리고 다음 연도에는 협동조합에서 마을기업을 만들어 일자리를 창출하고자 한다는 얘기도 있어요.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당장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일은 사회복지 분야인데, 주로 9-6로 일을 하기 때문에 농사와 병행하기 어렵고 시골살이의 의미가 줄어들 것 같아요.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어 '어째서 돈 버는 행위가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던져졌어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먹는 것, 입는 것, 공간을 차지하는 것, 문화생활을 영위하는 것 등을 대부분 돈으로 사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겠죠. 이런 구조로부터 자립하기 위해 이곳에서 농사와 생활기술을 배우고 있네요. 그럼에도 여전히 자립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이 보여요. 그럼에도 이곳에는 농사 지으며 잘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이 많이 있답니다.
'일은 무슨 의미일까?'라는 질문은 작년에 많이 해봤어요. 자아실현의 수단이자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한 반면, 그저 돈을 벌기 위한 행위가 될 수도 있겠네요. 만약 일을 한다면 제가 관심 있었던 대상층을 만날 수 있는 사회복지기관으로 가고싶어요. 양질의 일자리에서 일을 하고 싶고요. 지금처럼 여러 영역을 골고루 경험하며 살고 싶은데 9-6로 일을 하게 된다면... 여러 가지 생각이 충돌해 머리가 더 복잡해지네요. 고민, 멈춰!
도시에서 회사 다니며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농촌에서 농사 지으며 바쁘게 살아가는 이들, 돌봄을 담당하는 사람들, 취업 준비하는 사람들 모두를 응원하고 존경합니다.
저의 고민을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다다음 주부터는 저희 마을사람들 한 명씩 소개해볼까 해요. 허락 맡고 올게요! 이웃들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과 더불어 삶의 레퍼런스를 찾는 시간으로 꾸려봐야겠어요. 나살핸 오랜만에 발송하니 좋네요. 메일을 보내는 것이 제 마음과 생각을 돌아볼 수 있는 꽤나 중요한 행위인 것 같아요. 다시 한번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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