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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핸내 Jul 05. 2023

시골 이웃들과 생일 보내기

핸내 하고 싶은 거 다 해~

2023년 6월 4일 일요일 곡성에서 핸내가

친구들에게 보내는 12번째 메일 '나로 살기로 핸내(나살핸)'


시작하며

안녕하세요! 일주일만에 다시 인사드리네요. 이번 주말은 잘 보내셨나요?? 저는 친구들과 여수 여행을 다녀왔는데요. 해가 쨍쨍 비치니 여름이 찾아온 게 실감이 났어요. 이제 봄은 다 지나갔네요. 이번 봄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저는 태어난 이래로 가장 많은 곤충과 식물을 관찰했던 봄이었어요. 밭일을 하다보면 이름 모를 곤충들이 많이 보였어요. 애벌레, 개미, 나방, 지렁이, 개구리, 진드기, 거미, 달팽이 등등. 너무 더워져서 농사 일정 시간은 7시로 앞당겨졌고, 저는 아직 그 시간에 적응 중이에요. 더군다나 이번 주는 3일 이상 비가 내리기도 했고, 제 생일이 끼어있어 늦게 잠드는 게 익숙해져버렸네요. 직장인일 때뿐만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도 바빠지니, 월요일이 걱정되는 것은 마찬가지네요. 아참, 직장인 분들은 돌아오는 주에 월요일만 일하면 하루 쉴 수 있군요! 그나마 위안이 되는 소식이네요.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해볼게요. 오늘은 제 생일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록해보려고 해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던 생일

싱그러운 편지, 어딜 가든 이곳에서의 경험이 큰 자산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편지

이번 생일은 그 어느 때보다 주체적이고 알차게 보냈어요. 그 간의 생일을 돌아보면 제가 원하는 대로 시간을 보내기보다, 주위 사람들이 챙겨주는 대로 수동적으로 보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생일이 더 특별하게 기억될 것 같아요. 바야흐로 2~3개월 전, 이 마을에서는 생일자의 소원을 들어주는 문화가 있다고 들었어요. 이를테면 ‘생일자 초상화 그려주기, 생일자 보면 떠오르는 동물 말해주기, 헹가래 해주기, 생일자에게 꾸벅 머리 숙이며 다 같이 사진찍기’ 등이 있었다고 해요. 그 얘기를 들은 날부터 저는 계속 생각해왔죠. 생일날 뭐 하지.


후보군을 몇 개 정해보았어요. 첫 번째, 다 같이 러닝하기. 두 번째, 다 같이 춤추며 릴스 찍기. 세 번째, 이미지 사진 찍기. 네 번째, 핸내가 좋은 이유 세 가지씩 말하며 입장하기. 네 가지 후보 중 네 번째가 당첨되었어요!


그리고 생일 전날, 누군가와 함께 생일을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웃을 집으로 초대했어요. 원래는 파자마파티를 열어 많은 이들을 초대하려고 했지만, 생일 당일에 함께할 예정이므로 자제했죠. 그래서 함께 있으면 즐겁고, 당일에 함께 하지 못하는 DJ를 초대했어요. 이 마을에서 어쩌면 유일하게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저도). 저처럼 생일 축하 어떻게 받을지 미리부터 준비하는 사람.


저희는 미래의 생일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마음껏 상상해보았어요. 더불어 장례식과 결혼식도요. 미래의 생일은 어떻게 보내고 싶냐는 질문에 "바다에서 보내고 싶어요."라고 답했어요. 생각나는 건 그거 하나밖에 없었어요. 생일 시작! 00시가 되어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새벽까지 얘기하다가 잠들었죠. 


생일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바다에 가야겠다!' 다짐했어요. 전혀 계획되지 않은 일정이었어요. 생각해보니 원한다면 당장 바다로 떠날 수 있는 상황임을 갑자기 깨달았고, 바로 기차를 끊었어요. 감사히 비가 와서 농사 일정도 없었어요. 아, 물론 왕복 이동시간 4시간에 바다를 볼 수 있는 시간은 꼴랑 2시간 남짓인 것을 감안해야 했죠. 그럼에도! 바다가 보고 싶으면 가야지.


혼자 떠나는 기념으로 요즘 유행하는 거울셀카 한 번 찍어보았어요 ^.^


아이패드와 키보드, 시집, 돗자리를 챙겨 곡성역으로 향했어요.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 20분 걷고, 버스를 타서 20분 이동하고, 또 곡성역까지 15분 정도 걸으면 여수행 기차를 탈 수 있어요. 여름 느낌 나는 시집을 읽으며 기분 좋게 여수로 향했어요. 김밥과 떡볶이를 사 먹고 만성리검은모래해변에 갔어요. 돗자리를 깔고 분위기 좀 내보려 했더니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철수했어요. 카페에 들어가 오랜만에 아이스바닐라라떼를 시켰어요. 아바라로 왠지 도시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카페에서 일기도 쓰고 시집도 읽다가 나왔어요. 비가 어느 정도 잦아들어 다시 바다로 향했어요. 바닷가에 앉아 파도 소리를 들었어요. 자갈이 파도에 세차게 부딪히고 나면, 데굴데굴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어요. 기분 좋고 평화로운 소리였어요. 

만성리해수욕장

잠시 바다를 즐기다가 다시 곡성으로 향했죠. 19시부터 자자공 사람들(저 포함 8명)과 함께 식사하기로 했어요. 지난주 주간회의에서 생일날 JS가 끓여준 두부미역국을 먹고 싶다고 했어요. 정말 맛있거든요.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어 아주 맛있게 먹었어요. 밥을 먹고서는 GH가 선물해 준 전주 수제 초코파이에 젓가락을 꽂아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답니다. P가 손수 만들어 준 산딸기, 뱀딸기, 오디로 장식한 보라색 타르트와 NB가 따와준 산딸기도 아주 감동이었어요.


생일 전날 찾아온 P를 보며 감동 왕창 받는 중


그리고 다음 순서, 수수게임하기! 각자 익명으로 종이에 질문을 적어 섞은 후, 뽑아 질문에 대답  하는 게임이에요. 모두에게 발언권이 돌아가고, 생각지 못했던 상대의 정체(?)와 생각을 알 수 있어 재밌는 게임이랍니다. 그다음엔 이웃사진 찍기! 다 같이 모여앉아 삼각대로 사진을 찍었어요. 그다음 산책만 했다면 제가 계획했던 생일파티 완료였는데, 비가 와서 못 했답니다. 


잘 놀다가 갑자기 자자공 회의를 하기도 했어요. 빠르게 마무리하고 가장 재밌었던 순서를 진행했어요!!! 바로 '핸내가 좋은 이유 3가지' 누가 썼는지 알아맞히기 시간. 익명성 보장을 위해 구글폼으로 답변을 받았어요. 말투와 길이, 사용한 단어를 활용해서 알아맞혔죠. 제가 답변을 읽고 다같이 누가 썼는지 추측해보았어요. 정말 재밌어서 깔깔대며 웃었답니다. 그 사람만의 언어적, 비언어적 특성을 떠올리며 추측하는 게 마치 마피아 게임을 하는 것 같았어요. 확실한 정답은 미궁 속에...



생일이 끝나기 15분 전, 제가 관심받기를 좋아하는 걸 아는 DJ가 저에게 기타 연주와 노래를 시켰어요. 다른 때라면 거절했겠지만, 이날은 생일이니 뽐내겠다는 생각으로 바로 기타를 가져왔어요. 뽐내기엔 아주 부족한 실력이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노래를 한 번 불러보았답니다. 그리고 싱어송라이터 자자공 동기에게도 기타 연주와 노래를 요청했어요. 그렇게 저와 다른 이 2명이 노래 부르고 나니 1분 남짓 남은 생일!! 카운트다운을 하고 향초를 불며 생일을 끝마쳤답니다. 아, 새벽에 BN과 둘이 농막에서 새벽까지 대화 나누다가 또 늦게 잤네요. 


아무튼 이 글을 읽고 있는, 축하해준 친구들 모두 고마웠어요~!! 






마무리하며

핸내, 안녕하세요! 이번 글은 마치 저의 23년도 생일을 잊지 않기 위해 하나하나 기록해 둔 일기 같군요. 일 년에 딱 한 번뿐이니 조금은 구구절절하게 기록해봅니다. 사실 이번 주는 5월을 돌아보는 글을 쓰려고 했어요. 하지만 생일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서 다음 주로 넘기겠어요. 돌아오는 주에 개인 사정으로 제주도에 다녀와요.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공항에 갈 생각하면 벌써부터 아찔하지만, 잘 누리다 와볼게요. 모두들 돌아오는 주도 무탈히 보내시기를 바라요. 공휴일에 푹 잘 쉬시고요!


모하지에 놀러오세요~~

제가 살아가는 곡성으로 여러분을 초대해요!

이 주의 사진

< 여수여행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

잠옷 입고 다 같이 아침 달리기 / 넷플릭스 '사이렌 불의섬' 다섯 편 정주행, 매력 터져,,,
아름다운 청록색 바다와 알록달록 보랏빛 자갈

< 친구들이 적어준 '핸내가 좋은 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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