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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핸내 Jan 02. 2024

곡성에서 1년 더 살아보기로 했다.

시골집 계약한 썰 푼다,, 농사짓고 살텐데, 누구든 놀러와요! 

2023년 12월 22일 금요일, 곡성에서 핸내가
친구들에게 보내는 25번째 메일 '나로 살기로 핸내(나살핸)'


시작하며

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추운 겨울, 어찌 지내고 있나요? 급격히 떨어진 온도에 감기 걸리진 않았나요?? 저는 따뜻한 서귀포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며칠 전에 올라왔답니다! 자자공 과정을 마무리하며, 4일간 곡성 사람들과 제주도에서 시간을 보냈어요. 워크숍 명목으로요. 자그마치 14명(자자공 전기수 사람들 몇몇과 스태프)이서 제주시, 서귀포시를 넘나들었네요. 밤에는 둘러 모여 공기나 카드놀이, 대화 시간을 가졌어요. 23년도는 어땠는지, 24년도엔 어떻게 살고 싶은지 돌아가며 이야기를 나눴어요. 곡성에 남기로 한 이유와 그 삶을 지속하는 이유, 마을살이의 어려운 점과 본인의 대처 방법에 대해서도 나누었고요. 먼저 정착하는 이들의 따뜻하고도 실질적인 조언에 위로받기도 했네요. 더불어 곡성에 계속 살아가고 싶은 이유를 입으로 내뱉으며 제 마음을 다시금 깨닫기도 했어요.






시골에서 집 구한 썰 푼다;;

이사갈 집이에요.

맞아요. 저 집 구했어요. 월세 25만 원, 보증금 0원. 마을사람들은 다들 비싸다 하지만, 곡성만 벗어나면 다들 싸다 하네요. 이사 갈 집('회화집'이라고 칭할게요!) 앞집에 사시는 할머니 ㅊㅈ삼춘은 혼자서 25만 원을 어떻게 내냐며, 만날 때마다 걱정해 주신답니다. 시골에서 집 구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요. (물론 저는 한 번에 구했지만..) 빈집은 여럿 있다만, 집주인이 다른 지역에 살며 굳이 집을 내주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제가 구한 집도 작년까지만 해도 내놓지 않던 집이었어요. 곡성에 더 살아보기로 마음먹은 10월쯤부터 그 집을 탐내고 있었어요. 하루는 회화마을에 놀러 갔다가 그 집 문이 열려있는 걸 봤어요!! 바로 볕뉘에게 연락해 그 집에 함께 찾아갔어요. 집주인 아주머니가 텃밭에서 나무 가지치기를 하고 있었어요. 저희는 담벼락에 착 달라붙어, 얼굴을 빼꼼 내민 상태로 아주머니와 대화를 시도했어요. 


10월 11일, 바로 집주인을 처음 마주한 날이었어요. 집주인 가족은 일 년에 두세 번 정도 제사 지내기 위해 곡성에 온다고 해요. 제가 사는 동네의 양지바른 곳엔 대부분 무덤이 있어요. 처음 이 마을에 왔을 때, 여기저기 무덤이 많아서 으스스한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이젠 익숙하지만요.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들어진 제각 건물도 근처에 세 개나 있어요. 여전히 제사 문화가 잘 남아있네요. 어쨌거나 제가 살게 될 집은 제사 때 머물기 위해 만들어진 집인 것 같아요.


"(핸내)아주머니, 안녕하세요. 저는 저기 덕산마을에 살고 있는 청년인데요. 제가 이곳에서 계속 살고 싶어서 집을 알아보고 있어요. 혹시 집 내놓으실 생각이 있으실까요?"


"(아주머니)아저씨가 알지, 난 몰라요."


"(핸내)아저씨에게 물어보고 알려주세요."


아주머니는 저희를 번거롭게 여기는 듯했어요. 그로부터 몇 시간 뒤, 회화집 옆집 사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어요. "아까 본 집 왠지 내놓을 것 같아!"라고요. 옆집에서 하는 얘기가 들렸나 봐요. 며칠 뒤, 이장님을 통해 집주인이 집을 내놓기로 했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저는 집주인에게 전화해 집 계약 의사를 확실히 말해두었고, 집주인이 김장하러 곡성에 올 때 만나기로 했답니다. 그날 계약을 할 수 있는지 물어봤지만... 가봐야 알 수 있다며, 분명한 답은 들을 수 없었어요. '드디어 집을 구했다!' 하는 후련한 마음과 더불어, 혹시나 '집주인 마음이 변하지 않을까?'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어요. 계약 당일... 돌아갈 길이 멀어서 그런지, 아주머니는 분주해 보였어요. 아주머니와 아들이 집을 치우고 있는 동안 저는 계약서를 인쇄해 왔어요. 보통 청년들이 계약할 때, 이장님이 함께 있어 준다고 해요. 하지만 이날은 이장님이 독감에 걸려서 그만, 친구와 둘이 대응해야 했어요. 그간 내 집 마련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었는데요. 집 계약 과정을 통해 집 없는 설움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어요. 

텃밭의 처음 상태...^^

일 년에 한두 번 제사 지내러 올 땐, 집을 내어드리기로 했어요. 방문 할 때 사용할 이불이 방에 그대로 남아있고, 티비다이에도 짐이 그대로 있어서 빼달라고 요청했어요. 그랬더니 그대로 놔두라며 "그렇게 까탈스럽게 굴면 얼마 못 살아!"라고 버럭하시던 아주머니... 텃밭 관리 때문에 집을 내놓은 게 크다며 관리 잘하라고 신신당부의 말과... 아들분과 계약서를 쓰는데도 옆에서 핀잔주어 힘들었네요. 계약 마치고 나오는데 긴장이 확 풀려 피곤하더라고요. 그래도 집주인이 멀리서 사니, 이제 간섭받을 일은 거의 없겠죠? 이사갈 집 구해서 후련하네요. 하나하나 집을 꾸려나갈 생각에 설레기도 하고요! 텃밭 정리도 벌써 해줬어요. 두둑에 덮인 비닐을 걷어내고, 우두커니 쌓인 나뭇가지들을 톤백에 담고, 보리를 뿌려줬어요~ 해가 잘 안 들어서... 다른 밭을 구해야 하지만, 햇빛이 적게 드는 곳에 심어도 되는 나물류나 딸기를 심으려고 해요!


시골에서 집 구하는 과정은 도시와 많이 달랐던 것 같아요. 부동산을 통하지도 않고, 주로 이장님을 통해 집을 알아봤어요. 인근 마을 시골집 1인 가구 월세는 5만 원~10만 원이 기본이고, 바로 들어가서 살 수 있는 시골집은 드물어, 대부분 보수를 해서 살아야 한대요. 도시의 원룸에서 살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저렴한 가격과 넓은 집. (물론 제가 구한 집은 비싼 편이지만요.) 조그마한 텃밭과 수돗가, 창고도 있어요. 정착을 위한 첫 단계, 집 구하기 완수했고요. 그러니 여러분, 놀러 오셔요. 3월 1일에 입주합니다~ 지금 마음으로는 일 년, 이 년, 평생 살고 싶어요~ 아직까진요!


미틈달은 무와 배추 거두는 달

1. 이달의 노래: 낡은 괴담(정우) "내 마음은 구름 같지 한눈팔면 달라져 있는 거야 / 인정할게 나는 사랑이 중요해 / 방해 받지 않을 시간이 필요해"

2. 이달의 책: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양귀자) "한 달 내내 아침 루틴으로 읽은 책. 92년도에 쓰였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 상황과 주인공의 언어"

3. 이달의 영화: 그여름(원작: 최은영 작가 '내게 무해한 사람') "하... 정우의 '그 여름' 노래 듣다가 빠져서 원작 소설 읽고, 영화까지 봄. 사랑하며 겪는 관계의 역동들이 공감되어 심장이 저릿했음."

4. 이달의 음식: 김장 김치에 구운 두부와 버섯 "김장 끝낸 날, 김치 손 대기 싫어서 안 먹으려 했으나, 한입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감동함. 절인 배추에 김장 속 얹고, 들기름에 구운 두부와 버섯 싸 먹었음. 결국 다음날 따로 해먹음."

5. 가장 많이 먹은 음식: 무배추전골 "뜨끈하고 시원한 국물. 채식만두까지 넣어 먹으면 완벽. 밭에서 갓 거둔 무와 배추로 팔팔 끓이면 얼마나 맛있는지. 나는 계속 농사지을래..."

6. 가장 신났던 순간: 한밤중 무 부직포 덮어주다 맞이한 첫눈 "행복해서 날아갈 것 같았어."

7. 가장 아쉬웠던 순간: 무말랭이 햇살 잔뜩 보게 해서 바짝 말렸어야 했는데 "온실에 펼쳐놓았는데 봄과 다르게 해가 안 들어서 안 마름. 우선 냉동실행. 밖에서 말린 애들이 진작에 말랐는데."

8. 가장 새로웠던 순간: 1박2일 김장캠프^^ "배추를 심고 기르고 거두는 것부터 절이고 속 만드는 것까지 모든 과정에 다 참여해 보는 건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힘들었음. 다음 해에는 2~3명이 소수로 해봐야지."

9. 가장 슬펐던 순간: 더 가까워지고 싶었던 친구가 개인적인 이유로 날 밀어냈을 때 "상처받은 것은 분명했으나, 그날 관계에 관해 얘기 나눈 덕분에 복잡했던 것이 조금은 단순해지고, 편해짐."

10. 가장 낭만적이었던 순간: 광주에서 윤숭님과 조한나 감독님 만난 날 "거의 문화예술의 1박2일이었음. 나의 가을을 책임진 가수와 세 번이나 본 영화 '퀸의 뜨개질' 감독님 만나서 곡성 초대함."

11. 가장 따뜻했던 순간: 기차 타러 읍내 가는 친구 따라가서, 같이 카페에서 뜨거운 유자차와 붕어빵 맞이했을 때 "창가 자리 햇살이 너무 따수웠다."

12. 이달의 뿌듯함: 친구 생일 기념 새벽이생추어리 후원 포스터 만들고 기부하기 "돈으로 주는 선물이 아닌, 시간과 손재주와 마음을 내어줄 수 있어 좋았다. 덕분에 생추어리에 기부도 하고."

13. 이달의 반성: 먼저 세워둔 우선순위와 약속, 일정이 있다면 그것을 지키렴 "새롭고 재밌는, 그리고 그때에만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때 놓치는 것을 너무 아쉬워한다. 그럴 필요 없는데."

14. 이달의 깨달음: 익숙하고 안정된 것의 소중함을 늘 기억하렴 "위와 같은 기회를 놓치는 것을 다른 이들보다 더 아쉬워하는 편인 것 같다. 이젠 좀 덜 그러기로 마음먹음."

15. 이달의 농사: 밭_ 심기(양파), 거두기(배추, 무, 갓, 쪽파, 생강), 들깨 털기, 김장 / 논_ 논에 볏짚 흩트리기, 도정

16. 주차 별 생각의 흐름

- 1주차) 서울 가서 곡성 한달살기 했던 친구들이랑 IVF 동아리 사람들 만났다. 반가워~

- 2주차) 윤숭님에게 홀릴 뻔했다. 퀸의 뜨개질도 보고~ 광주에서 거닐던 거리도 좋았다.

- 3주차) 햇살이 따뜻했고, 첫눈이 와서 신나버렸다.

- 4주차) 하루종일 무와 함께했던 날, 친구와 싸운 날,,

- 5주차) 1박2일 김장캠프 때 말고는, 뜨끈한 배추전골과 함께 잘 쉬었다!

17. 한 문장으로 정리한 이번 달: 뜨끈하게 잘 먹고 잘 놀았다~






마무리하며

23년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새로운 것 가득했던 한해. 어떻게 돌아보고 정리해야 할지 고민이네요. 또 다음 해는 어떻게 살아갈지, 기대감와 걱정이 동시에 들고요. 아마 이곳에서 취업을 준비할 것 같은데요. 일을 하게 됐을 때, 지금 삶에서 걷어내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을 분류하는 중이에요. 또한 시골, 농촌살이를 기록하는 '나살핸'을 어떤 방법으로 지속할지도 고민 중이고요. 어쨌거나 이번 한주도 고생 많았어요. 아무쪼록 편안한 주말 보내길 바라요:)



사진으로 남기는 일상

1) 눈 덮인 한 주  

표고버섯시래기밥

2) 제주도는 아직도 밭에 초록색이 가득해


3) 11월 말, 김장날


4) 광주 나들이에서 만난 멋진 사람들

윤숭님과 '퀸의 뜨개질' 조한나 감독님�


< 나살핸 안내 >

나살핸은 격주1회 발송됩니다. 다만, 하고 싶은 말이 많을 때는 주 1회로도 찾아올게요. 편하신 때에 읽어주세요. 한 주는 곡성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 한 주는 이웃의 이야기를 담은 인터뷰를 보냅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청년, 마을 이웃들이 궁금하다면? 구독해주세요!



https://docs.google.com/forms/d/18cQATNxYRR0vvfsJHLzfh8OSrNM8BWcU-WSBPkYgFU8/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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