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적응기 '나로 살기로 핸내' 2023년 4월 16일
여러분, 한 주 잘 보냈나요? 저는 바쁜 한 주를 보냈어요. 도시에 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의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네요.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많고, 농사도 지어야 하고, 사회에 투쟁하고 싶고, 현실적인 고민도 해야 하는 삶을 살고 있어요,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오늘의 제목은 '새싹이 돋아나는 슬픈 4월'이에요. 4월엔 가장 많은 종류의 씨앗을 심어요. 초록색 새싹이 조금씩 자라나는 것을 기분 좋게 지켜보고 있어요. 생명력 가득한 4월이 어쩌다 가장 슬픈 4월이 되었는지.
국가폭력에 의해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희생된 4.3사건(1948), 여전히 진상규명과 처벌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의문이 드는 4.16 세월호 참사(2014), 민주주의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던 김주열 열사가 주검으로 발견된 4.11 민주항쟁(1960).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4월이네요. 제 자리에서 무얼 할 수 있냐 싶지만서도, 그럼에도 제가 있는 자리에서 기억하고자 애써봅니다. 잠시 일상을 일시정지하고 묵념하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2014년 4월 16일에 여러분은 어디에 계셨나요? 저는 당시 고1 학생이었어요. 학생들을 태운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소식을 학교에서 접했고, 쉬는시간에 친구들과 다 같이 뉴스를 틀어서 보았어요. 배가 침몰하는 생생한 상황을 보았고, 잠시 뒤, 전원 구조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여 안심했어요. 하지만 그다음 쉬는시간, 오보였다며 아직 구조되지 않은 많은 인원이 있다고 들었어요. 더군다나 단원고 고2 언니, 오빠들이 제가 살던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오던 중 참사를 당했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적으로 다가왔어요. 참사 이후 많은 이들이 절망감과 깊은 슬픔을 느꼈어요. 애도하는 마음으로 절대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죠.
여전한 안전불감증과 국가의 무책임함으로 인해 계속해서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요. 위험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다가 사망한 노동자들, 이태원 참사, 곳곳에서 일어나는 화재 사고. 바뀌지 않는 것 같은 사회에 절망하다가도, 다시 힘을 내어봅니다.
오늘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이 되었는데, 감사히도 함께 기억하고 애도하고자 하는 이웃들이 있어 함께 모여 마음을 나누고 노래를 들으며 추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진정으로 기억하고 추모하는 방법은 기업의 이윤 몰이, 국가와의 부패한 유착, 그것을 뒷받침하는 정부 정책들에 반대하는 투쟁, 즉 사회 전체를 바꾸기 위한 투쟁과 세월호 참사 항의를 연결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이윤보다 생명이 먼저’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7주기, 참사는 왜 일어났고 왜 해결되지 않고 있는가 / 김승주 기자 / 노동자연대 / 2021.04.14)
"공사 대신 농사. 농사가 투쟁이다."
"돈이 아닌 생명을, 파괴 아닌 돌봄을"
이번 주 금요일에는 세종시 정부청사 앞에서 진행된 4.14기후정의파업에 다녀왔어요. 저를 포함한 곡성 친구 5명이 농사를 하루 파업하고 다녀왔어요. 지리산 파업단 분들과 함께. 그곳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오랜만에 만나는 이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어요. 마치 연대와 만남의 장 같았어요. 다양한 문구의 피켓을 들고 온 사람들. 깃발에 적힌 반가운 단체 이름들.
4천 명가량 되는 시민들이 모여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국토교통부 앞에 멈춰 기후정의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었어요. 시민단체, 노조, 종교단체, 학교, 어린이, 청소년, 대학생 등 너나 할 것 없이 모였어요. 기후악당 정부, 생태학살 중단하고 기후정의 실현하라!
첫째, 기후정의를 향한 사회공공성 강화로 정의로운 전환을 추진하라.
둘째, 자본의 이윤축적을 위해 기후위기 가속화하는 생택학살을 멈춰라.
- 414 기후정의파업 대정부 요구 -
개인적인 소감을 나누어보자면, 기후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어 든든했고 더 연대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반면, 좌절감과 공허함도 동시에 느꼈어요. 이미 곳곳에서 생태학살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으며 마음이 심란했어요. 신공항 문제가 제주만의 문제가 아니라 부산 가덕도의 문제이기도 하고, 군산 새만금의 문제이기도 하네요. 지리산 케이블카, 곡성 폐기물처리장과 풍력발전소, 삼척석탄화력발전소, 그린벨트 해제문제. 이곳저곳에서 자본과 이윤 때문에 환경이 파괴되고 있네요. 그리고 그곳에는 늘 투쟁하는 사람이 있고요.
'나는 무엇을 했는가, 무얼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거대한 정부와 기업들 앞에서 연약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한 개인이 여럿 모여 거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희망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기후정의파업에 참여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다이인(Die-in) 퍼포먼스'였어요. 사이렌이 울리는 동안 다 같이 아스팔트 바닥에 죽은 듯이 누워있는 것이에요. 뜨거운 햇살과 비상상황으로 느껴지는 사이렌 소리, 실감 나게 죽어있는 사람들. 기후위기로 죽는다면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온이 높아져 숨을 쉬기 어렵고 먹을 것이 없고. 기후위기는 생명과 우리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것임에도 계속 인지하려고 하지 않으면 무던하게 되더군요.
"기후위기 문제가 너무 복잡해서, 대안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저 지독한 자본에 맞설 우리의 힘이 아직은 미약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부터 1일입니다. 또 모이고 더 외치고 싸워야 합니다. 올 가을 더 크게 모입시다. 삶의 위기 속에서 고통 받는 모든 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모입시다. 자본에 맞장 뜰 거대한 힘으로 더 큰 투쟁을 펼칩시다! 오직 투쟁 속에서만 다른 세상을 향한 길이 열릴 것입니다! 투쟁!"
- 정록 기후정의동맹 집행위원장 마지막 발언 -
"이러한 노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사회에 선을 퍼뜨려 우리가 가늠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결실을 가져옵니다. 그러한 노력은, 때로 눈에 잘 뜨이지 않지만 늘 확산되는 경향이 있는 선을 이 세상에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그러한 행동의 실천으로 우리는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우리 삶의 깊이를 더하고 이 세상이 살 만한 곳이라는 사실을 체험하게 해 줍니다."
- 프란체스코 교황의 '찬미 받으소서'(212항) 강승수요셉 신부(가톨릭기후행동 공동대표) 읽음 -
브라질리언 타악기 그룹 호레이와 어떤 단체의 풍물패가 시위를 더 흥겹게 했어요. 곡성으로 돌아가는 길, 공허한 마음이 한 켠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요. 감사히도 곡성 도착 전, 다같이 친구 본가에 가서 어머님의 따뜻한 밥상을 얻어먹으니 마음이 한결 괜찮아졌고, 행복해졌어요.
제가 다시 도시에 돌아가서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이전과 같은 삶의 형태로 살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무작정 소비하고 생각 없이 살아가진 않겠죠. 아 물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기에 또 이전처럼 살아갈 수도 있겠다만... 아무튼! 저는 곡성에 와서 농사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삶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서로를 돌보며, 연결된 채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 같네요.
여섯 번째 이야기 동안 마냥 즐겁고 재밌는 일을 작성한 날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싱그럽고 기분 좋은 일들을 가득 전하고 싶은데 생각보다 불편한 마음들을 많이 적게 되네요. 뭐, 인생이 그런 거겠죠..? 이번에도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돌아오는 주에는 꼭!! 4월에 심기로 한 작물을 모종낼 것입니다. 다짐합니다!(이젠 진짜 안 내면 안 될 것 같아서..) 모두들 편안한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