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적응기 '나로 살기로 핸내' 2023년 5월 7일
안녕하세요. 연휴는 잘 보냈나요?? 저는 연휴 동안 전주국제영화제에 다녀왔어요. 영화로 가득 채워진 2박 3일을 보내고 왔답니다. 아늑하고 아름다웠던 전주에서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불을 끈 채 방에 누워 전주에서 듣던 노래를 반복재생 해놓았어요. 아홉 번째 나살핸에서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했는데요. 우선 제가 이번 연도에 농사짓기로 다짐한 작물을 공개할게요! 더불어 이번 주에 있던 군민의날 행사와 전주국제영화제 후기를 적어보려고요.
농사를 배운 지 어언 2개월, 농사는 타이밍이 중요한데 게으른 핸내는 과연 이번 연도 계획한 작물을 수확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요?? P는 지지난 주에 밭에 땅콩을 바로 심었대요. 그런데 누군가 쥐도 새도 모르게 다 먹어버렸다고 해요. 그래서 저는 모종을 내서 심기로 했어요. BN에게 받은 우도땅콩을 그릇에 담아 물에 불려줬어요.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 땅콩에서 뿌리가 나오고 심지어 반으로 갈라지기까지 했어요. 얼른 흙에 심어줘야 했는데 미뤄두었죠. 물에서 불어나는 땅콩 옆을 지나갈 때면 흐린 눈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미안...) "혹시 땅콩 수경재배 하는 거예요?"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질문을 듣고, 이젠 진짜 심어야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전주 가는 날 아침, 급하게 호다닥 심어주었답니다.
3월 말쯤, 이번 연도 농사할 작물을 계획해 오는 숙제가 있었어요. 공동으로 씨앗을 구매하거나 이웃들에게 구해야 하기 때문이었어요. 제가 적은 작물 종류를 세어보니 자그마치 40개... 말도 안 돼. 요리할 때 자주 사용하는 재료, 그리고 먹고 싶은 음식을 생각하며 적다 보니 많아졌어요. 어떡하죠?? 뭐, 일단 때에 따라 심어보기로 했어요.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듯한 느낌이 있지만... 그래도 자자공 동기들 따라서 여러 종류의 모종을 내고 있답니다. 동기들은 대부분 저보다 농사 경험이 더 많아요. 그리고 저는 농사 경험이 없어요. 아, 조부모님 귤밭에서 귤 따는 건 많이 해봤어요. 하지만 작물을 직접 심고 기르고, 수확하는 전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처음이에요. 일 년 동안 이렇게 많은 작물을 심을 수 있는지도 처음 알았네요. 일단은 심고 싶은 작물 모종을 여러 개 내긴 했다만,, 언제 다 옮겨 심나요??ㅎㅎ
4월 셋째 주에는 면민의날 행사가, 5월 첫째 주에는 군민의날 행사가 있었어요. 군민의 단합을 위한 축제인가봐요. 면민의날 아침, 이장님이 본인 차를 가지고 마을 어르신들을 모셔 행사 장소로 이동했어요. 일찍부터 가서 구경하시는 어르신들, 그리고 점심 즈음 도착한 청년들. 주최 측에서 준비한 음식을 먹어요. 면민의날 행사에서는 불고기덮밥으로 메뉴가 한정되어 있어서 저희 마을 사람들은 도시락을 싸갔어요. 풀밭에 앉아 소풍하는 느낌으로 점심을 즐겼답니다.
면민의날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경품 선물이었어요. 다른 지역에 살 때는 경품 선물로 자전거나 청소기, 쌀 한 포대 같은 물건을 줬어요. 하지만 면민의날에서는 제가 예상치 못한 상품이 나왔어요. 흥겹게 춤을 추는 사람들에게는 삽 한 자루씩 선물로 주고요. 제 룸메는 노래자랑 1등 해서 전기톱을 받았답니다. 선풍기, 전자레인지, 에어콤프레셔, 예초기, 전기톱 등등 그중 저희가 가장 탐냈던 건 예초기였어요. 역시 농촌마을이라 그런지 농사에 사용하는 도구를 내놓네요.
군민의날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분위기 띄우기 위한 공연이었어요. 면별로 밥을 먹고, 체육대회를 진행한 후에 면별 장기자랑 시간이 있었어요. 마을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라인댄스, 트로트 등을 뽐냈어요. 장기자랑 시작 전, 댄스팀(기존에 봐왔던 댄스팀과는 달라 낯설었다.)이 나와 분위기를 북돋았어요. 핑크색 원피스에 긴머리를 한 댄서들이 테크노 노래에 맞춰 춤을 췄어요. 춤을 추다가 관객석 중간중간에 자리 잡아 어르신들과 함께 몸을 흔들었어요. 신난 어르신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앞으로 나와 춤을 췄답니다. 아주 흥겨운 분위기였어요. 두 팀이 장기자랑을 끝내고, 군수님이 나와서 춤을 췄는데요. 앞에 나왔던 댄스팀이 옷을 갈아입고 나와 백댄서 역할을 했어요. 낯선 광경이 그리 유쾌하진 않았어요.
전주국제영화제에 다녀왔어요. 2달 전쯤 친구 인스타 스토리에서 영화 '폭설' 예고편을 보게 됐어요. 보고 싶어서 검색해봤더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개봉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폭설이 쏘아 올린 공. 그렇게 전주국제영화제에 가게 됩니다. 물론 414기후정의파업 참여하는 도중에 핸드폰으로 티켓팅 한 덕에 보고 싶었던 '폭설', '우.천.사' 다 실패했지 뭐예요. 그래도 가보기로 했어요. 전주에 가자마자 한국단편경쟁1을 봤어요. 감동의 도가니...
단편영화를 여러 편 연속으로 보았어요. 그동안 제가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 소리가 너무 커서 시끄러웠고, 깜짝깜짝 놀라는 게 싫었어요. 그리고 한 시간 넘게 집중하다가 갑자기 현실로 돌아올 때의 그 여운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이번에 깨달았죠. 제가 영화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영화를 접하지 못했었다는 것을요. 저는 단편영화가 좋아요. 그리고 애니메이션도 좋아하게 됐어요. 히어로물보다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좋아해요. 슬프고 암울하게 전개되는 것보다 슬픈 것을 유쾌하게 풀어낸 것을 좋아하고, 주인공이 사랑스러운 영화면 더 좋아요. 사운드가 잔잔한 것을 좋아해요.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발이 젖어도 좋았어요. 숙소와 영화관의 거리는 20분 넘게 걸어야 하는 정도였어요. 영화를 보고 난 후, 혼자 걷는 길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어요. 여운에 가득 차 몽글몽글한 상태로 걸었어요. 그 누구의 해석도 없이 혼자만의 감상으로 영화를 곱씹어보았어요.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그런 분위기와 감성, 마음을 즐기지 못했을 거예요. 더불어 친구들에게 추천받은 식당과 칵테일바, 카페 모든 곳이 저를 더 살아있게 했어요. 게스트하우스에서 처음 만난 분과 새벽에 나눈 대화도 참 따뜻했고요. (식당 : 풀 / 카페 : 카프카 / 칵테일바 : 바, 차가운 새벽 / 숙소: 옥탑게스트하우스)
마지막 영화가 끝이 나고, 검은 배경에 "전주에서 보낸 봄날이 따뜻하셨기를 바랍니다. 저희는 내년에도 여러분을 기다리겠습니다."라는 문구가 떴어요. 가슴이 저릿, 다음에 또 오겠다고 다짐했어요. 일 년 뒤가 벌써 기대되네요.
곡성에 돌아와서는 향수를 느끼고 있어요. 처음 가보는 전주가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마치 내가 원래 살던 곳인 것처럼 그리움이 돋아나네요. 이 글을 쓰며... 곡성에 다시 적응 중입니다.
이번 나살핸은 너무 늦었네요. 전주의 여운을 소화해 내느라 나살핸을 잠시 덮어두고 있었어요. 다음 주부터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써보아야겠어요. 요즘 시간이 너무 빨리가요. 여러분의 시간은 어떻게 가고 있나요?? 연휴를 즐기다가 일터로 돌아가는 게 쉽지 않을 텐데 모두들 고생 많으셨어요. 연휴 때의 즐거운 기억을 에너지 삼아 생기있는 일주일 되시길 바랍니다.
p.s. 다음 편은 공식적으로 나살핸의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