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일들

아만자의 일기, 아만자의 신앙일기

by 한나

다들 잊지 못할 일들이 있는가?

나는 있다. 아프고 난 후 나에게는 절대 잊지 못할 일들이 몇 가지 있다.

가장 먼저 기억이 나는 것은 역시 처음 머리를 밀었을 때이다.

여자로서 머리를 밀어본 적의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첫 하아암을 한 후로 맹리 머리가 수두룩 하게 빠지고, 빠지면서 두피가 아파서 결국 머리를 밀 수 밖에 없었다.

동생과 함께 가발을 맞추고, 머리를 밀면서 울었는데, 집에 돌아오니 아빠가 글쎄 머리를 빡빡 밀고 있는 게 아닌가!

속상한 마음인지, 고마운 마음인지, 아니면 미안한 마음인지 온갖 마음이 섞여 머리를 밀었을 때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렸다.

내가 처은 머리를 밀었을 때의 충격보다 아빠가 머리를 밀고 왔을 때의 그 아빠의 마음이 아직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또 한 순간은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정도의 친구를 만났을 때의 이야기인데, 그 때의 나는 현실적인 친구들 사이에서 상처를 받고 있을 때였다.

물론 지금은 당시의 우리는 모두 20대 중반이라는 어린 나이었기에, 또 지금처럼 암이라는 게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첫 발병 후 어렵사리 치료가 다 끝나고, 간만에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떠는 자리였다.

소개팅 얘기가 나와서 '나도 소개팅 시켜줘!'라고 말했더니 한 친구가 너는 소개팅하려면 가발도, 아픈 것도 다 얘기를 하고 만나야 된디며 그것이 주선자와 소개팅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 했다.

그럼 나에 대한 예의와 배려는?

게다가 다들 동조하는 분위기여서 더 말은 못하고 나중에 친구에게 따로 카톡을 보냈다.

카톡으로 한 대화를 요약하자면 어차피 너는 얘기하면 거절 당할텐데, 미리 얘기하고 만나는 것이 좋고, 내가 솔직하게 얘기하면 상처를 받을까봐 그렇게 얘기를 했다는 것이었다.

내 상처보다 내 매력이 더 커서 거절당하지 않을 수도 있는 건데 자연스럽게 나를 세상의 경쟁선에서 탈락시키고, 나의 의사를 물어보기보다 강제한 친구들이 그 때 당시에는 미웠다.

항상 그런 식이었다.

무의식 중에 나를 낙오자로 보는 친구들의 시선이 마음 아팠다.

물론 나도 그래서 친구들에게 상처를 많이 주었을 것이다.

어떤 말을 들어도 상처였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 친구들은 내가 바라는 게 많다고 했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친구들에게 무엇을 바랐는지 모르겠다.

아마 그 친구들의 무의식과 싸우는 중이라 바라는 게 많다고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서로가 서로의 입장을 경험해보지 못했디 때문에..


여튼 이 사건은 나에게 아직도 큰 상처로 남아 있는데, 이 이야기를 오랜만에 만난 다른 친구에게 해주었다.

그랬더니 친구가 하는 말이 '너는 머리도 없고, 가슴도 없고, 애도 못 낳지만 남자친구가 있지 않았느냐. 우리보다 낫다. 우리는 다 가졌는데도 남자친구가 없다.' 였다.

머리를 얻어 맞은 것 같았다.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그 친구의 이야기는 사실이었기에.

물론 그 친구는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거나 바라지도 않았기에 친구의 말을 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 날은 남자친구의 유무보다, 나의 상처보다, 하나의 사실을 이렇게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고, 신기하고, 광명을 찾은 것 같았다.

그 친구는 지금도 나에게 좋은 인사이트가 되어주는 친구이자 동업자이자 나의 사장님이자 가장 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다.


이 두 가지 사건은 내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일이다.

두 가지 사건 모두 너무 고맙고 고마워서 잊을 수 없다라는 사실이 참으로 감사하다.

나와 함께 해줌에, 새로운 시각을 알려줌에 너무 고마워서 평생가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토요일 연재
이전 07화내려놓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