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어제와 오늘

소설 보다 더 소설 같은

by HJK

“소 미고 온나”

서늘한 아침공기에 이불을 끌어올린다. 터덜터덜 고무신을 끌고 마당에 나와 소의 이까리를 풀면 소는 좋아서 껑충껑충 뛴다. 삽작문을 나선다. 어두컴컴한 골목길을 지나서 희뿌옇게 밝아오는 신작로를 따라 산으로 접어든다. 밤새 맺은 이슬방울이 아랫도리를 젖힌다. 조금 헐렁한 고무신 속에서 개구리 소리가 난다. 소가 좋아하는 풀을 찾아 산을 오르노라면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한두 시간 정도 소를 이리저리 풀이 좋은 곳으로 끌고 다니며 먹인다. 어느덧 여름 해가 따갑게 느껴진다. 꺼졌던 소의 배가 차가면 내 배는 점점 꺼져간다. 해가 따가울수록 허기가 심해진다.


집으로 소를 급하게 몬다. 내려막길을 가노라하면 고무신이 미끄러워 벗겨질라 한다. 허겁지겁 쌀이 있는 둥 마는 둥 한 보리밥과 된장국을 챙겨 먹고 우물가에 수그려 세수 겸 머리를 감는다. 꿉꿉한 수건으로 대충 닦는다. 교복을 입고 남색 잉크로 위장한 흰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선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지각을 했다. 내 사정을 모르는 담임이 꾸중을 한다.

“얘 혼자 밥 해 먹고 다녀요”

평소에 맞는 몇 대는 아프지도 울지도 않았는데. 왜 그 한마디에 눈물이 쏟아졌는지. 고요한 반 앞에서 선생이 멋쩍어하는 게 느껴진다.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꺼내면 보리밥에 김치, 콩자반이 뒤섞여 있다. 쌀밥이 먹고 싶다. 수업종이 몇 번 더 울리면 집에 갈 준비를 한다.

교복을 벗어둔 뒤 고무신을 신고 집을 나선다. 소를 끌고 풀을 찾아 해 질 녘까지 먹인다. 날씨가 더워지니 얼른 집에 가고 싶다. 배가 찬 소가 느리게 움직이면 이까리로 때리며 주인 행세를 한다. 네 배만 배냐.


집에 도착하면 아버지와 형이 올 때까지 저녁을 차려야 한다. 옆집 아지매집을 찾아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반찬을 배워본다. 반찬을 배우러 가는 건지 엄마가 돌아가신 후 비어있는 집을 나가고 싶었던 건지. 어쨌든 반찬을 만드는 게 제일 힘들다. 동네 아줌마들 따라 호박잎을 따서 쪄보기도 하고 가끔 아버지가 사 온 생선을 조려 보기도 했다. 농사일을 마치고 돌아올 아버지와 형의 저녁준비를 해야 하는데, 부엌에 들어가는 걸 최대한 미룬다. 아버지와 형이 올 때가 다될 때쯤 된장국, 풋고추에 된장, 김장김치를 차려본다. 저녁보다 일찍 도착한 두 사람이 장기를 두며 나를 보챈다. 또 보리밥을 먹으며 두런두런 얘기를 나눈다. 또 보리밥. 또리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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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에 눈이 떠진다. 안방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면 상쾌한 공기가 폐 속까지 들어온다. 성경 말씀을 두어 장 읽고 계단을 내려가면 소파에서 쉬고 있는 아내가 보인다. 아내는 오늘도 새벽같이 일어나 딸의 아침을 차려주고 출근길을 배웅했나 보다. 나는 아내가 차려준 아침을 먹으며 뉴스를 튼다. 때론 요구르트와 과일, 때론 따뜻한 쌀밥과 국. 가끔은 양이 많다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두꺼운 양말을 신고 골프화의 끈을 단단히 묶는다. 뒷문을 열고 나가 키가 큰 침엽수와 야생화가 핀 자갈길을 따라 걷는다. 아침 이슬이 깔린 푹신푹신한 잔디를 밟으며 아내와 함께 골프장으로 향한다. 시애틀의 맑은 공기 속에 치는 골프는 나의 일상의 활력소이다. 골프장 사람들이 우리 부부를 알아본다. 같이 칠 사람들과 간단히 인사 후 몸을 가볍게 푼다. 가끔은 아는 사람들과 치기도 하지만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과 치다 보니 매일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18홀을 걷고 치고 클럽 하우스에서 샌드위치와 시원한 맥주를 한잔 한다. 미국은 웬만한 메뉴는 양이 많아 하나만 시켜도 둘이 배부르게 먹는다. 집에 돌아와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노곤노곤해질 때쯤 소파에 누워 티비를 튼다. 단 낮잠을 잔다.


느지막한 오후에 딸이 일에서 돌아올 때쯤 잠에서 깬다. 아내는 딸이 돌아오면 이른 저녁을 준비한다. 인스턴트 음식을 찾는 딸을 뒤로하고 집밥을 차린다. 언제 인스턴트를 찾았냐는 듯이 딸은 주는 대로 잘 먹는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 집정리를 하고 산책을 나간다. 동네를 따라 걷다 보면 조그마한 호수도 보이고 들꽃들도 보이고 이리저리 뛰는 토끼들도 보인다. 한국과 달리 미국 사람들은 동네에서 마주치면 꼭 인사를 하는 편이다.


늦저녁에 집에 돌아와 간단한 간식을 먹고 마루에 다 같이 앉아 텔레비전을 튼다. 값비싼 소파를 등지고 마루 카펫에 앉는 우리는 누가 뭐래도 영 한국인이다. 딸이 튼 예능을 같이 보기도 하고 아내가 보는 드라마를 보기도 한다. 그러다 두 사람이 모두 자러 올라가면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들을 보며 잠을 청한다.


이제는 이까리에 따라오는 소도, 헐렁한 고무신도, 까칠한 보리밥도 없다. 한강의 기적은 저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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