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무샹을 덮으며 (김모아 배우, 허남훈 감독 부부)

책장을 덮으며

by 해나책장

2년에 한 번씩 뉴욕에 갔지만 한 번도 그 도시에서 살고 싶었던 적은 없었던 내가 (뉴욕에 그리운 건 언제나 사람이었고)
단 번에 반해버리고 내내 마음에 품었던 나라는 캐나다였다.
제스퍼와 밴프의 호수들과 만년설이 쌓여있는 록키산맥.
호숫가의 조용한 시골 마을을 보며 '이 곳에서 살고 싶다'라고 여러 번 말하고 있었다.

프랑스 시골 마을 무샹에서 보낸 45일의 기록을 그린 커플의 소리의 [아무샹] 속에는 내가 동경하는 풍경과 공감하는 정서가 가득했다.
아침마다 지저귀는 새소리에 눈을 뜨고,
음악을 사랑하는 친구 가족들과 함께 마음과 음악과 대화와 음식을 나누며
도시의 리듬과 속도를 잊고 살아갈 수 있는 곳.
넓게 펼쳐진 초록 밭과 강변의 숲길, 오래된 건물들이 만드는 좁은 골목길이 있는 마을.

그곳에서 부부는 읽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사진에 담고 글로 써 내려갔다.
이런 곳에서 쓰는 글이 초조하거나 날이 서긴 힘들 것이다.
이 책을 구석구석 천천히 걸어가듯 읽게 되는 이유이다.
사진도 글도 여백이 많은데 그 속에 읽히는 것들이 많다.
이 부부는 무슨 사연을 등 뒤에 두고 이 곳으로 날아왔을까.
돌아갈 날이 다가올수록 기다리는 저편의 현실을 어떤 각오로 마주하고자 했을까.

밑줄 그은 문장들이 제법 많지만 내가 가장 좋아했던 문장은 '무샹에서 가장 중요한 일과는 점심 식사다'p.43 였다. ㅋ

부부와 함께한 무샹 가족들은 저마다의 아침 시간을 보내다가 낮 12시 언저리쯤 모여
와인과 함께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눈다.
전형적인 내향형인 나는 혼자 있어야 안정된 위로를 받고 에너지가 충전되는 사람이다.
그걸 알기에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식사와 대화, 함께하는 시간은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
그 어떤 사람도 홀로 단단할 수 없다. 마주 보는 눈빛과 나누는 대화,
서로를 통해 주고받는 상호작용을 통해 균형과 좋은 에너지가 생기고 건강한 정서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 일상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풍경과 낭만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이들이 이웃이라는 건 행운이다.
읽는 내내 부부는 각자의 시간도, 두 사람의 시간도, 이웃(무샹 가족들)과의 시간도 양껏 음미하며 45일을 기록한다.

읽으면서 나는 뉴욕 식구들이 많이 생각났다.
"곧 다시 만나." 쿨하게 손 흔들고 헤어진 후 코로나라는 장벽을 마주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부부 역시 무샹 가족들과 작별 인사는 짧게 한다.
눈물 한 방울 없이 정말 내일 볼 것처럼 헤어진다.
하늘 저 편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고도 가족과 다름없는 이들을 두고 살아가는 마음을 나는 안다.
그 역시 행운이다. 마음의 고향처럼 '지금'을 견디기가 고단할 때 모든 걸 잠시 멈추고 다녀 올 '그곳'을 가진 거니까.

여행과 일상은 그렇게 닿아있다.
일상을 잘 살아내면 여행도 잘 시작할 수 있다.
모아 작가님은 말한다. "정중하게 대하면 사소한 것 하나 없다."

여행과 일상, 각자의 시간을 잘 살고 함께 모여 밥을 먹는 식사를 서로의 중요한 일과로 여기는 그 마음을 간직하고 살아야지.
흘러가는 풍경들과 찰나의 발견들을 자주 성실하게 기록해야지.
정중하게 일상을 대하며 잘 살아가다가
어느 날 문득 다시 만나 포옹할 수 있기를.

이 책을 천천히 읽은 지난 한 주는 코로나 기간 중 누린 가장 낭만적인 호사가 아니었을까.

"우리 생애 그 45일은 잊지 못할 단 한 번의 봄,
끝내 봄의 연둣빛 새잎과도 같은 푸르른 희망이 되었고
되어줄 것이다.
나와 그는 멈추지 않고 '무엇'으로, '다음'으로 향하는 중이다." p.299

#아무샹 #커플의소리

keyword
해나책장 도서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기획자 프로필
구독자 261
작가의 이전글아니 에르노의 진정한 장소를 덮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