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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확과 예술을 통해 넓어지는 세계관을 꿈꾸며

feat. 뉴턴의 아틀리에 (유지원, 김상욱) | 민음사

by 해나책장


낯선 언어는 인식을 확장시킨다


나의 관점이나 표현들이 너무 뻔하다고 생각될 때면 과학을 읽는다.

아름다움을 더 나은 시선으로 확장해서 보고 싶을 때면 예술책을 읽었다.

당연한 얘기보다 모르는 얘기가 더 많아서 나는 과학과 예술 분야를 늘 좋아했다.


디자이너, 타이포그래퍼의 시선으로 사물에 접근하는 유지원 교수님의 인사이트가 너무 좋아서

그리고 교수님의 글이 깊고 단단해서 글을 읽을 때면 '내가 원하던 글이 바로 이거'라면 나는 자주 들뜨곤 했었다.

조건 없이 애정 하게 되는 잘 쓴 글이었다.

아.. 깊게 잘 쓴 게 조건이 된 건가...


물리학자이자 무신론자인 김상욱 교수님은 나와는 갈 길이 다른 사람처럼 보이지만

김상욱 교수님이 길을 잡아 주면 나는 어려운 물리도 쉽게 탐험하며 따라갈 수 있었다.

조곤조곤 논리적이고 예쁘게 말하는 방식이 좋아 김상욱 교수님의 영상을 자주 봤다.


두 분이 공저로 책을 내신다 하여

나는 적잖이 흥분했고 굳이 예약 구매를 해서 읽었다.

책은 매우 선두로 샀을 것이나 리뷰는 늦었다.

읽는 내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이러면 정리가 늦어진다)


https://www.youtube.com/watch?v=3aPF_2Q-ddw




책의 구성


이 책은 타이포 그래퍼인 유지원 교수님과 물리학자인 김상욱 교수님이

경향 신문에 콜라보로 진행한 칼럼을 모아서 보강한 책이다.

과학자는 예술적으로, 예술가는 과학적으로 쓰고자 기획되었다.

나처럼 과학과 예술 분야를 둘 다 좋아하는 독자에겐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다.

이 책은 스물여섯 개의 챕터로 구성된다.


1. 관계 맺고 연결하는 것 (이야기, 소통, 유머, 편지, 시)

2. 현상을 관찰하고 사색하는 마음 (결, 자연스러움, 죽음, 감각, 보다, 가치)

3. 인간과 공동체의 탐색 (두 문명, 언어, 꿈, 이름, 평균)

4. 수학적 사고의 구조 (점, 구, 스케줄)

5. 물질의 세계와 창작 (검정, 소리, 재료, 도구, 인공지능, 상 전이, 복잡함)


주제 단어를 제시할 때 두 분이 전혀 다른 시각으로

꼭지들을 완성해 가는 게 대단히 흥미로웠다.

인문학을 전공한 나에게 이 주제들로 글을 쓰라고 했다면

다분히 문학적인 시각으로 글이 전개되었을 텐데

과학자와 예술가의 시선으로 써 내려간 글은 전혀 다른 시각으로 글을 완성한다.

게다가 두 분의 글이 인문학적인 깊이와 단정함이 있어서 매 꼭지가 너무 좋았다.



뉴턴의 아틀리에 (소통, 편지, 재료)


소통


유지원 (호흡하고 소화하며 경계 넘나들기)



유지원 교수님은 아모레 퍼시픽 미술관에서 열린

라파엘 로자노헤머의 '결정의 숲' 전시회를 이 꼭지에서 소개한다.

전시 중 '고동치는 밤 Pulse Room' 이 나온다.

이 전시에서는 나의 심장 박동이 센서를 통해

커다란 방 전체에 빛과 소리로 울린다.

그러면 방에 있던 다른 관객들은 그 박동을 같은 공간 속에서 경험하게 된다. (어떻게 이런 발상을 했지?)

인간은 단지 숨을 쉬고 심장의 고동을 울리는 것만으로도

다른 누군가에게, 그리고 지구 전체의 대기와 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유지원 교수님은 우리 모두는 생체 에너지의 파동으로 연결된다고 말한다.

나의 행동이나 말 한마디가 지구의 대기에 영구적인 각인을 축적한다는

자존감과 경각심을 갖게 된다고.

음성과 문자, 표정과 몸짓, 먹는 행위, 호흡과 대사 활동 역시 소통이 된다.


김상욱 ( 소통할수록 소통의 미묘함은 커져만 가고)


김상욱 교수님은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에서

자신이 만든 사각의 구조물 안에서 외로움이라는 병을 앓는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20세기 말에 인간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소통 방법을 찾아내지만

여전히 외로움을 느낀다.

이 꼭지의 말미에서 김상욱 교수님은

'인간은 소통을 필요로 하지만 제대로 소통하는 것은 기적이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소통이라는 하나의 단어를 두고도

유지원 교수님은 나의 심장 박동 소리를 함께 공유하게 되는 전시회의 경험에서

모든 생명체가 연결되는 지점을,

김상욱 교수님은 외로움을 바라보며

제대로 소통하는 것의 기적 같은 감흥을 이야기한다.


편지


유지원 (오지 않을 편지를 기다리는 마음)


유지원 교수님은 빌헬름 뮐러의 연작시 스물네 편으로 구성된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를 소개한다.

이 작품 속의 우편마차는 우편 마차의 말발굽 소리를 표현한다.

이 이야기 속의 주인공 나그네 청년이 사랑한 아가씨는

부잣집 약혼녀가 되어 버린다.

청년은 홀로 남고 우편 나팔 소리에 청년의 마음에는 헛된 희망이 고동친다.ㅠㅠ

오지 않을 편지를 기다리는 마음은 그런 것이다.

마음의 과학은 양적 근거의 데이터를 조심스럽게 확보하며

인간의 마음을 과학의 방식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과학이 아직 답을 내리지 못한 곳에서

생생히 살아서 꿈틀대는 우리의 마음은 방치될 수 있을까?


유지원 교수님은 말한다.

"답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인과 음악가는 결연히 걸어간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섣불리 희망을 노래하거나 처방을 내리지 않은 채,

그들은 인간의 마음이 겪는 고통의 심연을 따라갔다."


시대를 넘어서는 보편적인 마음이 문학과 예술에 어떻게 스며들어가는지,

답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인과 음악가는 결연히 걸어갔다는 문장을 보며

편지라는 단어로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는

유지원 교수님의 인사이트에 많이 감동하게 될 것이다.


김상욱 (친애하는 마그리트 작가님께)


김상욱 교수님은 편지라는 꼭지에서 정말로 편지를 쓴다.

바로 초현실 작가인 르네 마그리트가 수신자이다.

초현실주의자 조르조 데 키리코의 [사랑의 노래]에는

석고 두상, 고무장갑, 공이 이유나 맥락도 없이 한 데 놓여 있다.

마그리트는 의미를 묻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고 이 책은 말한다).

김상욱 교수님은 이 작품을 보면서

이유는 묻지 말고 그냥 감상이나 하라는 협박처럼 들렸다고 표현한다.

1920년대 초현실주의 운동이 절정에 다다르던 시기에 양자역학이 탄생한다.

양자역학에는 중첩과 관측이 있다.

중첩은 공존할 수 없는 두 상태가 공존하는 것,

관측은 공존하는 것을 바라볼 때 하나의 상태로 선택이 일어나서

다른 두 개체로 양립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중첩과 관측은 모순이 된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을 보며 김상욱 교수님은 물리학의 중첩을 떠올린다.

하나의 장면 속에 낮과 밤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밤을 바라보면 동시에 낮 속에 공유될 수는 없다.

이런 모순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걸 김상욱 교수님은 '언어는 세상을 기술하기에 충분하지 않으니까요'라고 표현한다.

사람들은 의식하지도 못하는 중에 영향을 주고받는다.


1920년대 유럽이라는 시공간은 양자역학과 초현실주의를 동시에 탄생시킨다.

이런 흥미로운 사건이 2020년대 한반도라는 시공간에서

다시 한번 일어나길 기대한다는 바램으로 이 글을 마친다.

초현실주의 작가의 작품 속에서 물리학자는 양자역학의 개념 중 하나인

중첩과 관측을 포착해내는 시선이 너무 흥미로웠다.

모순되지만 실제 하는 현상과 그것을 담아내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세상의 언어,

이러한 세계를 담아내는 게 물리학과 예술의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인 것 같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런 부분이 되게 많아서

읽는 동안 너무 재미있고 지적욕구가 마구 채워지는 쾌감이 있다.



재료

유지원 (물감과 종이가 오래도록 서로 붙어 있으려면)


화가 얀 반 에이크는 템페라 물감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미디엄으로 기름을 섞어보다가 유화의 길을 열었다.

19세기 초반의 프랑스 화학자들은 합성 색 재료들을 개발해내며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들이 발전한다.


20세기 중반에는 아크릴 물감이 개발되어 벽화가 발달한다.

공기 속의 성분, 수분, 온도, 햇빛과 바람의 강도 등 작품들은

이렇게 재료들의 결속으로 특정 환경 속에서 탄생한다.

유지원 교수님은 이렇게 재료의 발전 과정을 소개하며

'그렇게 결합된 생을 힘껏 버텨 내며 다가와,

마주 보는 우리에게 감정의 작용을 일으킨다'라고 표현한다.

예술의 재료의 발전, 화학 작용, 그리고 예술가의 표현이 만나

우리의 감정을 일렁이게 하는 이 연합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던 꼭지였다.


김상욱 (눈에 보이는 다양한 세상, 모두 원자로 이루어졌다)


김상욱 교수님은 미술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

벽화의 재료들의 발전 과정을 설명한다.

벽화를 보존하는 방법, 석회 반죽인 프레스코, 달걀을 재료로 한 템페라,

그리고 색의 발전 과정에서 조개의 체액으로 얻던 귀한 재료였던 보라색 티리언 퍼플은

1856년 윌리엄 퍼킨이 석탄에서 나온 콜타르에서 추출한 아닐린 퍼플로 대중화된다.

김상욱 교수님은 이렇게 다양한 재료들의 발전의 근원에 원자가 있다고 말한다.

"만물은 원자로 되어 있고 우주가 하나의 예술작품이라면 그 재료는 원자다."

인간과 흙, 미술의 재료는 서로 다르지만

원자 수준에서 보면 모든 것은 원자로 되어 있는 거라고.





이렇게 뉴턴의 아틀리에에는 예술과 과학이, 나와 세상이 연결되고 확장된다.

다섯 카테고리로 분류한 단어들 속에서

타이포 그래퍼와 물리학자의 참신한 시선으로

깊이 있는 문장을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간다.

낯선 언어는 인식을 확장시킨다는 말처럼

책을 읽고 나면 미지의 세계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들에 만족감이 커서

굉장히 질 좋은 재료들로 좋은 음식을 먹은 것 같은

풍성한 만족감이 감돌게 된다.

예술과 과학은 나에게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고

아무리 관심을 가져도 얕은 독자이지만

이렇게 유지원 교수님과 김상욱 교수님이 계속 길을 열어준다면

난해한 세계도 조금 더 친숙하게 읽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림1.png



해나의 한 줄 요약 :

뉴턴의 아틀리에는 사고의 확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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