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시인 구상의 가족>
나는 요즘 매주 전시회를 가고 있다.
갑자기 활동량이 엄청 늘어나서 자꾸 몸살이 난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테마로 한 <한 겨울 지나 봄 오듯>
1930-1940년대의 선배님들의 예술 이야기를 담은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마흔부터 붓을 잡았던 윤석남 선생님의 궐기와 에너지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
세 전시회를 차례차례 돌면서 계속 떠오른 단어는 '그럼에도'였다.
꿈이 좌절되고 일상이 파괴되고
우리의 중심과 관계된 모든 것들이 위협받을 때도
'그럼에도 당신이 정한 것을 계속할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게 되었던 거다.
현역에서 일하면서도 사업에 대해, 진로에 대해, 미래에 대해 모든 게 불안정하고 불분명하기에 그랬을 거다.
에너지가 회복되며 자연스럽게 마음도 단단해졌는데 다시 이 질문 앞에 설 수 있었다.
'그럼에도 당신이 정한 것을 계속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럴 결심이 서서, 밥벌이하고 있는 분야에 감사하며 밥벌이로 번 돈으로 좋아하는 분야의 연구와 공부들을 더 하면 되지 싶어서,
그럴만한 애정과 각오가 아직은 있어서 나는 다시 질문해보는 것이다.
지난 전시에서 나는 이중섭이 그린 <시인 구상의 가족>에 마음을 빼앗겨 한참을 바라보았다.
가족과 함께할 희망이 좌절된 시간에 오랜 벗 구상의 가족을 바라보며 부러움과 쓸쓸함을 앓았던 이중섭.
그의 마음이 잘 드러난 슬픈 작품 앞에서 나는 '인생'이란 단어와 '그럼에도'라는 단어를 생각했다.
그의 좌절과 눈물 항아리는 이렇게 깊은 작품을 남겨서 67년 후에 나에게 와 닿았다.
#해나의전시회가는길
"이중섭은 경주 오산고보에서 임용련에게 처음 미술을 배우기 시작하여,
일본 제국 미술학교와 문화학원에서 서양화를 공부했다.
원산에 살던 그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남한으로 피란 내려와
제주도, 부산, 통영 등에 머물렀는데,
전쟁 중 사랑하는 가족들을 일본으로 보낸 후
이들과의 재회를 꿈꾸며 작업에 매진했다.
<시인 구상의 가족>은 가족과의 재회의 꿈에 부풀었던 이중섭이
그러한 희망을 완전히 포기하게 되었을 때 극심한 '절망' 속에서 제작한 작품이다.
그는 1955년 1월 개인전이 경제적 실패로 돌아가자,
이후 일본에 있는 아내와의 연락을 단절하고,
오래된 친구 시인 구상의 왜관 집에 머물러 있었다.
구상이 자신의 아들에게 자전거를 사서 태워주자,
이를 몹시도 부러워한 이중섭 자신의 모습이 담겨있다.
이미 구상을 따라 종교에 귀의하고 싶다고 고백했던 이중섭은
이전의 강렬한 색채를 버리고,
누런 색감으로만 가득 찬 초라한 자신의 옆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_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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