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과 요리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3월에 매주 전시회를 다니면서 번아웃이 왔다.
좋아하는 책들도 독해력을 요하는 책들은 진도가 안 나가고 서점에 책 고르러 가도 전부 일 같아서 좀 질리는 마음이었달까.. 그래서 가볍게 힐링하면서 읽을 수 있는 책들을 많이 읽었다.
그중 추천하고 싶었던 좋은 책들을 추려보았다.
#1 ORANGE 오르한 파묵 | STEIDL
"하루의 집필을 마치면 카메라를 들고 이스탄불의 여러 동네를 구석구석 걸었던
오르한 파묵의 시선이 담긴 사진집.
이 책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오르한 파묵과 함께 이스탄불의 밤거리를
조용기 걷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노벨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이 이스탄불의 거리를 담아낸 사진집이다.
이 책은 하루의 집필을 마치면 카메라를 들고 이스탄불의 여러 동네를 구석구석 걸었던 오르한 파묵의 시선이 담겨있다.
이 책에는 7페이지 분량의 오르한 파묵의 서문 'ORANGE'가 함께 수록되어 있는데 그가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주황색 불빛이 현대화된 전구의 밝고 차가운 하얀빛으로 서서히 대체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스탄불의 상점들과 거리가 오렌지 색에서 차가운 백색 조명으로 서서히 바뀌어가는 풍경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불 켜진 창문마다 다양한 사연들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 책을 보고 있으면 오르한 파묵과 함께 이스탄불의 골목길을
구석구석 걷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굉장히 아늑해진다.
그가 매일 밤 작업을 끝내고 산책하며 바라본 다양한 동네의 풍경을 통해 그는 소설을 써 내려가는 많은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2 길에서 만나다(쥬드 프라이데이) | 예담
"이 책에는 하지 못한 말, 듣지 못한 말, 마무리하지 못한 이별,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꿈, 긴 기다림 등이 등장합니다.
그 시간을 통과하는 동안 서울의 골목을 구석구석 걸으며 고군분투했던 인물들의 열정과
서로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는 과정이 수채화 같은 그림 속에 잔잔하게 담긴 이야기예요."
이 책은 남산에서 우연히 만난 두 주인공 희수와 미키가 서울 곳곳을 산책하며 각자의 꿈을 위해 고군분투하면서도 서로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는 과정을 잔잔하게 담은 이야기이다.
이 책을 쓰고 그림을 그린 쥬드 프라이데이는 영화 현장과 방송국에서 연출과 편집 관련 일을 하다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에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작가님은 '힘들 때마다 걸었던 길들의 표정을 살필 수 있게 되었을 때 서울의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다고 생각했다.'라고 이야기한다. (뭉클)
그럴 만도 한 게 이 책에서 인물들이 서울의 골목골목을 걷는 동안 시간이 천천히 흘러간다.
그 시간 속에는 매듭짓지 못한 인연, 이루지 못한 꿈, 말하지 못한 마음 같은 것들이 굉장히 섬세하게 담겨있다.
각각의 인물들의 치열하고 고독한 마음들이 잔잔하게 표현되는 걸 읽고 있으면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서 마음이 뭉클하고 위로가 된다.
서울의 골목을 걷는 희수는 영화감독을 꿈꾸며 계속해서 기다림이 길어지는 인물이고,
미키는 마음에 품었던 사람을 찾으러 한국에 온 일본인이다.
그런데 약속을 잡고 온 게 아니라 우연히 만나 지길 바라며 서울의 길들을 걷고 있다.
밥벌이가 필요해서 면접을 보러 갔다가 나오며 자괴감을 느끼는 희수가 남산에서 풍경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미키가 다가와서 "당신의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다.
희수는 자신의 속내를 표현하는 걸 잘 모르고 말수가 적은 성격이고 미키는 다정한 성격이다.
사진작가인 미키는 거리에 이름을 붙이고 풍경 속에서도 의미를 발견하고 이야기를 찾아내는데 탁월한 사람이다.
이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거리의 풍경들이 풍부해지는데 이런 것들이 작가님의 그림과 너무 잘 어우러지면서 읽는 내내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
이 책에는 하지 못한 말, 듣지 못한 말, 마무리하지 못한 이별,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꿈, 긴 기다림 등이 등장한다.
나 역시 이 모든 일을 다 경험하고, 또 통과해가는 사람으로서 이 책의 이야기들이 구체적인 위로로 다가왔다.
한 끼를 잘 차려 먹는 것, 매일 산책을 하는 것, 사진이나 그림, 글로 일상을 기록하는 것.
그런 일들이 내 하루에 있다는 건 일상을 잘 가꾸어가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바쁜 일상에 지쳐서 휴식과 산책이 필요한 분들께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3 경양식집에서 (조영권) | 린틴틴
"28년 경력의 조율사가 출장 후 들려주는 맛집 이야기를 통해
풍미 있는 식사와 담백한 위로를 만날 수 있습니다. 너무 좋았어요."
이 책은 28년 경력의 조율사가 출장 후면 들리는 경양식 맛집 탐방기이다.
책 읽는 것도 질릴 만큼 번아웃이 와있을 때 교보문고에서 힐링하려고 골라온 책이다.
읽을수록 마음이 풀렸다.
만화, 맛집 사진, 짧은 에세이로 구성된다.
평소 경양식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는데도 책을 읽으면서 나오는 메뉴들이 다 먹고 싶었다.
작가님이 굉장히 풍미 있게 맛을 표현하시고 사진도 잘 찍으시기도 했고.
이 책 속에는 오래된 경양식 집들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천천히 시간이 쌓여 있는 공간들이 주는 위로가 있다. 따뜻함이 주는 힘은 막강하다.
그리고 작가님의 조율사라는 직업에 대해 가지고 있는 책임감과 생업에 대한 고단함, 미래에 대한 막연함 들도 엿볼 수 있는데 그런 이야기들로 흘러가다가 경양식집에 도착하면 풍미 있는 묘사와 먹음직스러운 사진들이 등장한다.
그러면서 막연한 불안과 피로도 같이 싹 씻기며 마무리가 된다.
상가 경영이 어렵지만 그걸 알면서도 몇십 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가게들이 주는 위로가 또 있고 그 사람들이 정성껏 내어준 따뜻한 음식을 먹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 일상도 성실하게 잘 가꾸고 살아보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상큼한 샐러드를 중간에 한 번씩 맛보았고,
감자튀김은 포만감에 도움이 되니 양이 부족하지 않다.
디저트는 탄산음료와 커피가 있는데,
나는 늘 커피를 고른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주방 쪽을 무심히 본다.
50년간 요리사라는 직업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평생 주방에서 일하시는 사장님.
눈 감았다 뜨기도 무서울 만큼 빠르게 변하는 요즘 세상에서 그 50년은 어떤 의미일까.
내게도 한 가지 일을 해온 그런 시간이 있다.
점점 사라져 가는 어쿠스틱 악기들.
피아노 조율사라는 직업은 50년 후에도 존재할까?
그럴 리가 없지. 커피 맛이 좋다. (국제경양식, 인천 송도) p.92
내 직업이 50년 후에도 존재할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그럴 리가 없지. 하면서도 거기에 대한 연민이나 뭔가 더 이어지는 어떤 넋두리 없이 담백하게 '그럴 리가 없지. 커피 맛이 좋다. 끝.' 이런 느낌의 글들이 참 좋았다.
그리고 내가 워낙 음식이나 집 이야기가 나오는 책을 좋아한다.
읽으면서 이 책이 워낙 좋아서 조영권 작가님의 전작인 [중국집]도 바로 주문해서 지금 읽고 있다.
좀 지쳐서 어디 교외로 나가고 싶은 분들께 이 책 [경양식집에서]를 추천한다.
#4 부엌 매거진 8호 The Recipe of Home
"삶의 모든 것을 재정비하는 공간인 집,
그리고 자신을 위로하고 건강한 에너지를 주는 집밥.
자기 분야에서 성실하게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인플루언서들의 부엌 풍경과 그들이 소개하는 레시피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아름답고 건강한 잡지예요."
이 잡지는 로우 프레스에서 나온 부엌 매거진 8호이다.
개인적으로 부엌 매거진 기획을 너무 좋아해서 나올 때마다 하나씩 장만하는 책이다.
잡지가 사진집처럼 예쁘고 콸러티가 높아서 집에 소장용이나 전시용으로도 너무나 예쁜 책.
코로나 시대가 되면서 집밥과 재택이 트렌드가 되었고 거기에 맞춰서 집밥에 대한 기획이 나왔다.
이번 8호는 자기 분야에서 성실하게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인플루언서들의 부엌 풍경과 각각의 레시피를 소개하는 기획으로 구성된다.
집을 아름답고 정갈하게 가꾸고 사는 거에 관심이 많아서, 책을 보면서 다양한 인테리어와 요리들, 사는 풍경들을 보는 게 너무 좋았다.
집은 삶의 모든 것을 재정비하는 공간이다.
나는 건강한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규칙적인 생활, 정리정돈, 그리고 집밥이라고 생각한다.
그중에 집밥은 단순한 에너지원을 넘어서 자신에 대한 성의이고, 내일도 잘 살겠다는 의지이고, 그리고 오늘 수고한 나에 대한 위로인 것 같다.
인터뷰들을 읽다 보면 음식에 얽힌 기억들을 이야기하는데 그게 참 따뜻하고 좋았다.
인터뷰 속에서 느껴지는 고유한 집의 무드가 너무 좋아서 읽는 동안 힐링이 많이 된다.
그리고 인터뷰의 말미마다
'집에서 요리를 만들고 식사하는 일은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인가요?'라는 질문을 하는데
이 답변들이 저마다 참 아름답고 공감이 되었다.
'문자나 전화로 연락하는 일에 익숙해지니,
실제로 누군가를 만나 얼굴 맞대고 소통할 기회는 점점 줄어들죠.
하지만 요리를 하면 손으로 쓴 편지를 전할 때처럼 제 진심을 잘 표현할 수 있어서 좋아요.
클릭 몇 번이면 문 앞에서 음식이 배달되는 세상에서,
밥을 하기 위해 시간과 정성을 들인다는 건 그만큼 나와 상대를 아낀다는 뜻이니까요.' (손석원)
집밥이라는 단어는 아무래도 정성, 따뜻함, 관계라는 말과 연결되는 것 같다.
글도 좋고 다양한 레시피도 만날 수 있어서 요리 에세이 좋아하는 분들께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식탁 위에서 펼쳐지는 우리의 삶.
그 보이지 않는 일상의 흔적은 나와 내 앞에 놓인 음식을,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연결해준다.
그렇기에 직접 요리하며 정성스럽게 식사를 준비하는 작은 의식이 반복될수록 우리의 일상은 더욱 견고해진다.'
https://www.youtube.com/watch?v=SxTMXvkEs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