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언어(송은혜) | 시간의 흐름_북리뷰
클래식을 좋아하지만 깊이가 얕아서 몇 년 전부터 음악가와 연주자들을 공부하며
음반을 하나하나 모으기 시작했다.
연초에 읽은 [음악의 언어]는 음악과 예술 이야기를 좋아하는 내게 너무나 감명 깊게 다가온 에세이였다.
리뷰 구성
1. 책의 구성과 작가 소개
2. 하루하루 정직한 열정, 연습
3. 연주자의 표현, 태도, 마음가짐
4. 음악과 인생, 인생과 위로
| 책의 구성과 작가 소개
이 책은 송은혜 작가님이 음악과 함께 걸어온 인생에서 의미가 되어준 순간들의 이야기와
그 시절을 함께 통과한 음악을 소개하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음악의 언어로 번역된 작가님의 삶의 이야기이다.
이 책은 네 개의 챕터 서른세 개의 꼭지로 구성되는데 각 꼭지마다 이야기의 재료가 된 클래식 넘버들이 소개된다.
1장 악흥의 한 때
2장 연주자의 해석 노트
3장 흐르는 시간에서 음표를 건져 올리는 법
4장 음악일기
1장 악흥의 한 때에서는 작가님의 음악 인생에 담긴 개인적인 서사가 4 챕터 중 가장 선명하게 담겨 있다.
2장 연주자의 해석 노트와 3장 흐르는 시간에서 음표를 건져 올리는 법은 악기와 음표로 구성되는 음악의 기본 요소들과 연결되거나 확장된 에피소드가 담긴다.
4장 음악 일기에서는 음악가들과 연주자들의 이야기와 그 속에 담긴 인생의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전체 구성을 생각하면서 이 책을 읽고 보면 한 사람의 연주자가 음악이라는 방대한 세계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음색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속에 스며있는 작가님의 바탕이 성실하고 진지하고 낭만적이기 때문에 읽는 내내 작가님이 그 서사를 쌓아갔을 시간만큼의 감동이 깊게 전해져 왔다.
그래서 읽는 내내 마음에 휘몰아치는 감동과 풍부한 낭만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음악을 좋아하지만 모래사장에 가득한 모래처럼 정보가 방대할 때 눈 밝고 귀 밝은 취향을 가진 이의 추천 리스트는 늘 반갑다.
이 책을 읽으면서 출판사 시간의 흐름에서 만들어주신 음반 추천 리스트를 같이 들으며 나에게 맞는 곡과 연주자를 발견하게 되는 탐험의 시간이 되기도 했다.
송은혜 작가님은 한국과 미국, 프랑스에서 오르간, 하프시코드, 음악학, 피아노, 반주를 공부했고 지금은 프랑스 렌느 음악대학과 렌느 시립음악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음악 선생님이다.
책을 읽으면서 너무 좋아서 책을 덮을 때까지 엄청 공감하면서 푹 빠져 읽었다.
당시 나는 일과 관련한 매너리즘에 빠져있었다. 뭔가 계속 루틴 한 작업들이 반복되는 것 같고, 내 기획도 나의 인사이트도 너무나 뻔한 것 같고 부족해 보였다.
그런 시기에 가장 본질에 가까운 자세로 돌아가자는 마음과 기대를 준 게 이 책이었다.
이 책에서는 하루하루 정직한 열정을 가지고 이어간 연습, 그것을 쌓은 후에 무너뜨리고 다시 쌓아가며 완성되는 예술가의 세계,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의 템포와 호흡, 음악이 나의 삶과 세상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음악을 통한 연대 등을 발견할 수 있다.
| 하루하루 정직한 열정, 연습
이 책을 읽으며 제일 인상 깊었던 부분은 하루하루의 정직한 연습이 얼마나 중요 한가였다.
작가님은 누군가 음악을 배우고 싶다고 이야기할 때 '연습을 위한 시간을 떼어 놓을 수 있나요?
그렇다면 시작하셔도 됩니다.'라고 말한다고 한다.
음악은 꾸준한 반복과 연습이 있어야만 성장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음악이나 예술, 문학과 글쓰기, 언어를 배우는 거나 내가 지난 반년 동안 열심히 하고 있는 발레처럼 당장의 성과가 바로 보이지 않는 일들이 있다.
거기서 고유한 자기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지루하고 반복되는 훈련을 각오해야 한다.
성장은 매일매일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이 쌓인 후에 오니까.
그 과정에서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것은 좌절이다. 결과물은 손에 안 잡히고 성과는 없고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을 때 어김없이 좌절이 온다.
그때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은 연습의 장소이다.
송은혜 작가님은
'음악을 배우는 건 좌절의 연속이고
스스로에 대한 꾸준한 실망과 낙담을 견딜 수 있는 방법도 연습'이라고 말한다.
십 대 내내 예술 계통의 학생으로 공부했던 피아노와 작곡, 전공을 바꿔서 공부했던 문학, 기획자가 되면서 계속되고 있는 글쓰기 훈련과 지금 6개월째 배우고 있는 발레까지.
내 인생은 '연습과 기다림의 역사'이다. 이렇게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 세계 속에서 계속 살다 보니
나는 누구보다 시간의 힘을 믿는 사람이 되어 있다. 검은 개처럼 때때로 오는 번 아웃과 슬럼프에 크게 요동하지 않고 할 일을 할 수 있는 안정감이 생겼다. 또 지나갈 거니까.
그리고 연습은 너무 정직해서 연습한 그 이상이 절대로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오랜 시간 훈련하며 쌓여온 것들은 오로지 내 것이어서 아무도 빼앗아가거나 허물어뜨리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 경험들을 반복하면서 슬럼프나 번아웃이 올 때 체력이 회복될 때까지 잠시 기다리고, 어느 정도 체력이 회복되면 나는 다시 나의 훈련장으로 돌아간다.
그 시간의 서사는 나만의 것. 그래서 이 부분을 읽으면서 너무 공감이 되고 좋았다.
당장 결과가 안 나올 때도 나는 그런 경험들을 생각하면서 '지금은 아무것도 결과가 없지만 방향을 계속 찾아가며 훈련한 시간들은 반드시 기회로 온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내 인생은 계속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할수록 좌절한 경험이 많아지면 얻게 되는 가장 큰 이점은 좌절이다.
좌절은 계속 따라온다. 거기서부터 깊이가 생기는 것 같다.
사람의 깊이는 좌절의 밀도와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그 좌절을 제대로 처리해가는 가장 건강한 방식이 연습이 아닐까 싶다.
| 연주자의 표현, 태도, 마음가짐
이 책을 읽으며 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점은 연주자의 표현, 태도, 그리고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하는지가 잘 드러난다는 거였다.
기획자라는 직업병 때문인지 맘에 드는 연주를 들을 때나 그림을 만나면 관련 정보를 전부 파본다. 작곡가는 어느 시대를 살아냈는지, 이 곡은 어떤 배경에서 만들어졌는지, 연주자는 어떤 바탕을 가진 사람인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그렇게 배경과 서사를 이해하고 나면 그 음악과 나의 접점이 좀 더 가까워진다.
책을 읽으며 그것을 연주자가 어떻게 표현해내는지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가 '잠깐의 멈춤과 호흡'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잠깐의 멈춤과 호흡"
이 책의 세 번째 꼭지 <노래하는 횡격막>에서는 연주를 위해서 호흡에 집중하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호흡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횡격막이라고 한다.
숨을 실어 노래하듯 악보를 다시 읽으면서 한 번의 숨으로 노래할 수 있는 구간을 정하고, 그 숨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도록 음표에 강약을 준다.
간단히 말하면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를 호흡에 싣는 것이다.
표현을 위해 호흡을 고른다는 건 그만큼 스스로의 내면에서도 충분히 소화해서 정리가 되었다는 거다.
책의 네 번째 꼭지 <깊은 밤을 향하는 오르페우스처럼>에서는 오페라에서 연주자로서의 해석과 표현방법을 정립해가는 과정이 나온다.
이 부분을 읽어보면 연주자가 곡 속으로 스며들어가는 과정이 잘 표현되었다.
"쌓았다가 허물어 뜨리고 다시 쌓아가는 과정"
"학생들이 자기 안에서 자신이 맡은 인물을 끌어내기 시작하자
그동안 열심히 쌓아 올린 테크닉이 조금씩 허물어졌다.
학생들은 불안해했고 그 마음이 그대로 노래에 스며들었다.
자신의 테크닉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학생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지켜낸 소리는 청중을 잡아끌 만큼 매력적이지 못했다.
오히려 과감하게 테크닉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았을 때,
갈라진 성대에서 속울음 같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세상에, 네 안에 그런 소리가 있었구나' 하는 감탄과 함께 더는 학생과 배역이 구분되지 않았다.
배역에 완전히 몰입한 학생은 인물의 감정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표현했고,
그것이 듣는 이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얼마나 완벽하게 노래를 불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그가 그 인물의 삶을 살아내며,
그 삶을 새로이 해석하여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었다.
음악 작품은 연주되어야만 그 안에 담긴 작곡가의 생각과 내면이 드러난다.
같은 작품을 연주한 수많은 음반이 있는데도 오늘 내가 다시 그것을 연주하는 이유는
'지금의 나'라는 독특한 시공간 속에서 새롭게 해석될 작곡가의 숨겨진 내면이
작품 안에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불안정한 '나'를 대면하는 경험 없이
그저 아름답기만 한 소리로는 작품 속 인물의 내면을 표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왜 그렇게 노래했어?"라는 연출가의 질문은
'너만이 표현할 수 있는 너의 세계, 너의 마음을 들려주렴'이라는 간곡한 부탁이다.
얄팍한 재주를 넘어 마음속 가장 깊고 어두운 곳으로 내려가기를.
모든 것을 놓아버린 그 자리에서 나만이 들려줄 수 있는 나만의 노래로 듣는 이의 마음에 가 닿기를.
오르페우스가 좌절한 바로 그 자리에서 피어날 진심을 마주할 수 있기를'
(깊은 밤을 향하는 오르페우스처럼) p.39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한 사람의 연주자가 곡을 이해하고 해석한 후 자신의 언어로 정리하여 가장 호소력 있는 모형으로 표현해내는 과정이 굉장히 치열하고 숭고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위로해주는 연주자들이 통과했을 여러 과정이 보이는 것 같았다. 오랜 시간 연습하고 좌절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중심을 단단하게 만들어가고 정제된 연주를 통해 내 마음에 닿기까지 연주자는 많은 좌절과 불안, 기쁨과 고독, 즐거움과 설레임을 다 지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 음악과 인생, 인생과 위로
마지막으로 꼭 나누고 싶었던 부분은 '음악과 인생이 닿아있다'는 점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음악가들이 음악을 대하는 태도에서 성실하게 자신의 세계에 매진해온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그리고 음악의 가장 큰 역할 중 하나는 '위로'다. 작가님은 음악이 세상과 유리된 채 경쟁에 섬에 갇혀버린 영역인 것 같아 고민하던 시절의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세월호 사건 일주일 후 프랑스 소프라노 나탈리 드세가 연주회에서 슈베르트의 <그대는 나의 안식>을 부른다.
그 순간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음악이 우리 마음에 와 닿아 주던 위로의 힘을 경험하신 이야기이다.
그 순간 내가 속해 있고, 알고 있는 세계의 한 축이 무너졌다.
세상과 유리된 채 경쟁의 성에 갇혀버린 음악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인간의 가치를 일깨우는 음악의 의미를 그제야 느낄 수 있었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을 끌어안는 음악의 추상성.
말도 그림도 우리의 마음을 담아낼 수 없다고 느낄 때,
한 소절의 선율로 모두를 위로하는 음악의 힘.
시간이 흘러 나는 음악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다.
비로소 세상에 발 디딜 곳을 찾는 것이다.
지금은 음악으로 나하고 다른 이의 마음을 전하는 법을 가르친다.
음악은 세상으로 통하는 다리를 놓는 나만의 방법이 되었다.
세월호가 가라앉은 그날로부터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서울에서는 프랑스 소프라노 나탈리 드세의 연주회가 열렸다.
한국의 상황을 알게 된 그가 희생자를 위로하기 위해
슈베르트의 <그대는 나의 안식>을 불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멀리서 그의 노래를 찾아들었다.
"그대의 빛으로 나의 눈과 마음을 채워주오"라는 노랫말보다,
쓰다듬듯 마음을 어루만지는 선율이 내게는 더 큰 위로를 주었다.
피아노 연주자의 신중한 타건과 부드럽게 읊조리는 노래가
슬픔과 분노에 생채기 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고
유족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을 건네는 것만 같았다.
어떤 말로도 행위로도 위로할 수 없는 마음속 깊은 곳,
음악이 있어야 할 바로 그 자리이다. (그대는 나의 안식) p.56
음악과 인생은 닿아있고, 인생의 과정마다 위로가 필요할 때 음악이 어떤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나는 일찍 독립하고 혼자 보낸 시간이 길기 때문에 조금 더 큰 의미와 애정의 영역이 음악이기도 하다.
해나의 한 줄 요약 :
음악의 언어는 흐르는 시간에서 음표로 건져 올린 인생의 여정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MOcw4vkQW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