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크리스티앙 보뱅의 작은 파티 드레스
긴 여정이었다.
올 초에 크리스티앙 보뱅을 운명적으로 만나고 그의 아홉 편의 단편을 읽으며 마음이 일렁였고,
여러 번 읽을수록 놀라워서 마음을 부여잡고, 책에 밑줄을 긋다 보니 끝이 없어 밑줄 긋기를 포기하게 되기도 했다.
그의 <작은 파티 드레스>는 내가 아는 "책, 독서, 글쓰기, 사랑"을 이야기하는 가장 낭만적인 방식이 아닐까 싶다.
아홉 편의 단편은 일종의 공통점이 있는데 무심한 일상으로 시작해 인물들의 내면으로 들어갈 때 완전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그들의 책 속에, 그들의 글 속에, 그들의 시선 속에서 깊고 풍부한 세계가 파도처럼 밀려오는데(과장이 아니라 정말 파도처럼 밀려온다. 읽어보시길) 그 순간 빛나는 건 크리스티앙 보뱅의 맑고 영롱한 문체이다.
이렇게 극찬을 하는 리뷰를 읽으면 나는 제법 반감을 가지게 되는 사람이지만 책을 읽는 동안의 나의 일렁임은 너무 컸고 내 단어들은 너무 하찮아서 이렇게밖에 표현이 안 된다.
그만큼 좋았다. 올해의 책 세 권 중 한 권이다. (최근에 얼음 속을 걷다를 읽어버려서 나의 올해의 책은 네 권이 되었다. 헷-*)
고단하고 가난할수록 정신적인 풍요에 집착하게 되는 걸지도 모르겠는데 (내가 가난하고 고단한 사람이라 그럴 수도 있다) 책 속에 인물들도 퍽이나 가난하고 고단하지만 그들이 가진 또 다른 세계에는 경계가 없다. 풍요롭고 깊은데 무척 공감된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에 다다르면 작은 파티 드레스가 나온다.
사랑하는 이가 알몸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묘사하지만 전혀 외설적이지 않다.
사랑의 본질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이가 알몸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흰 드레스를 입었다."라고 이야기한다.
사랑하면서도 고독감을 느끼고 결핍을 느끼는 현실적인 마음까지 담아내면서도 마지막 꼭지의 사랑의 연서는 무척 아름다웠다.
내가 사랑하는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처럼.
짧은 단편이라 각 잡고 읽으면 반나절이면 읽을 책.
그러나 나는 이 책을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읽고 리뷰로 담아내기까지 거의 몇 달이 걸렸다.
그럼에도 크리스티앙 보뱅의 깊이를 담아내기엔 내가 너무 얕고 미천하다.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문장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사랑 밖에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사랑 안에는 알 수 없는 것들뿐이다.
나는 당신을 알아보았다. 당신은 봄 깊숙한 곳에,
정녕 시들지 않는 꿈의 이파리들 속에 잠들어 있는 여자였다.
난 당신을 이미 오래전부터 예감했었다.
산책을 하며 맛보는 상쾌한 기운 속에서, 좋은 책이 지닌 고귀한 분위기 속에서,
깨지기 쉬운 침묵 속에서.
당신은 근사한 것들에 대한 소망이었다.
당신은 하루하루가 선사하는 아름다움이었다.
그 구겨진 드레스에서 흔들리는 웃음에 이르기까지, 당신은 생명 자체였다.'(작은 파티 드레스)" p.122
https://www.youtube.com/watch?v=zCAMutCcsc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