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의 지속적인 비교로 위축된 경험이 있다면 아니 에르노의 <다른 딸>에 등장하는 화자의 마음을 조금은 알 거다.
문제는 열 살부터 칠순이 넘은 나이까지 어린 시절의 상처는 영향을 미친다는 거다.
화자는 그렇게 오랜 그림자를 데리고 다닌다. 그리고 이제는 그 그림자를 향해 편지를 쓴다. 떠나보내기 위해. 자기 자신으로 굳건히 나아가기 위해.
나의 존재를 불안전하게 만드는 오랜 상처를 가진 이들에게 나는 이 책을 건네고 싶다.
이 책의 중요한 키워드는 <비교>이다.
나 역시 지난 시절을 돌아볼 때 가장 힘들었던 감정으로 남은 것 중 하나는 남과 비교당하는 마음이었다. 그건 자신을 위축시키고 그늘지게 한다.
화자는 유일한 딸, 사랑받는 딸, 고유한 존재였던 자신이 부모님의 마음속에 이상화되어 있는 존재와 계속해서 비교당하고 있을 것만 같은 마음과 싸운다.
부모는 아이에게 정서적으로 뿌리와 같은 존재다.
화자는 뿌리가 흔들리는 불안을 계속 가지고 자라게 된다.
정리하자면 이런 상황이다.
'책 속의 나와 언니는 둘 다 존재할 수 없다.
부모님은 아이를 둘 키울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언니가 살아있었다면 나는 세상에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살았고 당신은 없다.
하지만 부모님의 마음속에 이상화된 당신과 나는 계속 경쟁하고 있다.
나는 당신 대신 존재할 자격이 있을까.
내가 존재하기 위해선 당신을 부인해야 한다.'
화자는 이런 생각과 끊임없이 싸웠던 것이다.
그런 그녀는 자신의 자리를 스스로 찾아간다.
존재의 이유를 찾고, 성장해가며 자신과 그녀를 분리한다.
당신은 죽고 내가 삶에 선택된 이유는 글을 쓰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경험과 그림자를 한 편 한 편의 책으로 담아낸다.
어린 시절의 문화적 차이 속에서 투쟁하듯 자신을 정립해 간 시간을(빈 옷장),
가난한 노동자였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과 소외를 (남자의 자리, 한 여자),
죽은 언니와의 비교로 온전한 자신으로 존재하지 못했던 자신의 긴 유년을 (다른 딸).
그리고 그녀는 이 편지를 쓴다.
그녀를 부활시켜 자기 자신과 분리해내고 온전한 나로 해방시키기 위해서.
'아마 나는 당신의 죽음이 내게 준 삶을, 이번에는 내 차례가 되어 당신에게 돌려주며 가상의 빚을 털어내길 원했던 것 같아요.
아니면 당신과 당신의 그림자로부터 떠나기 위해 당신을 되살리고 다시 죽게 한 걸 수도 있고요. 당신에게서 벗어나려고.
죽은 자들의 오래 지속되는 삶에 대항해 투쟁하려고.' p.89
나를 무겁게 짓눌렀던 존재를 내려놓으며 애증의 시간을 떠올리며 보내주는 시간.
아버지를 향한 애도의 시간을 책으로 냈던 그녀는 <다른 딸>을 쓰며 자신의 유년의 상처를 떠나보내는 작업을 한다.
자신의 책을 통해 한 편 한 편 그 시간들과 작별한다.
그 무거움이 없었다면 자신의 온전한 시간을 얘기할 수 없었겠지.
'아니 에르노라는 문학'이 그렇게 탄생했으니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그녀의 책들을 읽으며 너무 섬세해서 너무 상처 받는 그녀의 영혼을 들여다보며 나는 얼마나 휘청거렸던가.
하지만 이번만큼은 아프지 않았다.
아니 에르노의 방식으로 맷집이 생긴 거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그림자를 질질 끌고 살아간다.
각자의 방식으로 무겁게 봉인된 그늘이 있을 거다.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정중하게 들추어 보내주는 작업들을 해낼 마음의 준비가 기어이 되었다면, 그런 당신이 이 책을 보며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길 바라본다.
벗어날 수 없던 아픔을 인정하고 꺼내놓을 때 우리는 온전한 나로 해방될 수 있다.
이 책을 마치는 나의 한 줄 평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2gIimuAtoV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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