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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버거의A가X에게를덮으며

그럼에도 우리는 미래에 있어요.

by 해나책장


저녁에 집안을 정리하며 저녁에 들을 음악을 고른다.

오늘 고른 음악은 성시경의 <두 사람>


"때로는 이 길이 멀게만 보여도 서글픈 마음에 눈물이 흘러도

모든 일이 추억이 될 때까지 우리 두 사람 서로의 쉴 곳이 되어

서툴고 또 부족하지만 언제까지나 곁에 있을게

모진 바람 또다시 불어와도 우리 두 사람 저 거친 세월을 지나가리."


서로의 등불이 되어주는 마음은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비밀이 아주 작을 거라고 생각한다.

작고 은밀하고 드러나지 않는 것,

하지만 아주 큰 비밀들도 있는데 아이다는 그것을 '약속'이라고 했다.

사랑하는 이와 주고받은 편지, 그리고 그 편지를 쓰고 보내는 사이의 시간,

편지를 읽은 당신을 생각하는 시간, 그 사이의 시간 속에 약속이 담겨 있다.


나에게 A가 X에게는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그럼에도'이다.

존 버거의 책은 대체로 '그럼에도'이지만..

이 책은 아이다가 보낸 편지와 사비에르가 그 편지 뒤에 끄적인 메모로 이루어진다.

이 책의 시작에 존 버거가 직접 등장해 어느 폐쇄된 교도소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고 말하며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문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고 나서도 어딘가에 두 사람이 살아있을 것만 같다.


사비에르는 이중 종신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힌다.

이중 종신형이란 서로 다른 사건에 대해 각각의 종신형을 받는 것이기에

그가 살아서 나올 확률은 희박하다.

그러나 그의 연인 아이다는 일상을 이어가며 그를 기다린다.

그녀는 편지 속에서 일상을 이야기하고, 우리의 견고한 약속을 이야기하고, 지난날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그녀의 주변의 사람들이 견디고 있는 어려운 상황을 이야기한다.


오래 무언가를 바라며 기다려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내가 기다릴 수 있는 가장 긴 시간을 기다렸지만,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사람은 가장 나약해진다.

언제까지일지 모를 불안과 기다림에 내일은 없을 것 같으니까.

하지만 아이다의 시선 속에서 미래는 언제나 희망이다.

나는 그녀의 편지를 읽으며 사랑과 인내를 배운다.

조건 없이, 보상받지 못할지라도 사랑을 영원히 이어가겠다고 매 순간 다짐한다.

무너지지 않는 마음을 부서뜨리려고 세상은 더 높은 장벽을 세우지만 그 모든 걸 막을 수 있을 만큼 높은 담장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의 다부진 눈빛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사랑을 매개체로 한 견고한 약속과 옳은 방향을 향해 가고자 선택한 굳은 신념 앞에서 그들의 사랑의 약속은 반짝반짝 빛난다.

그 이야기가 무척이나 좋아서, 읽다 보면 나의 장벽보다 나의 마음이 조금 더 높이 나아갈 것 같아서 나는 이 이야기를 읽고 또 읽었다.


나는 가끔 '죽음'이라는 단어를 생각한다.

크리스천인 나는 죽음 이후의 영원한 세계를 믿기에 죽음이 두렵지 않다.

오히려 이 세상의 고 된 여정보다 죽음 이후가 더 나을 거라고 기대한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 단 하나 내가 붙잡고 갈 것이 무엇일까,

나의 시간이 아주 조금 남아있다면 나는 무엇을 할까, 누구와 있을까를 가끔 생각한다.

죽음 앞에서 그가 움켜쥔 것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아이다와 사비에르의 두 손에는 <사랑과 정의>가 놓여 있다.

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보물은 '서로를 향한 약속'이다.

이 약속은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것들보다 더 선명하고 힘이 세다.

그래서 그들은 '그럼에도', '장벽이 높아도', '만날 수 없어도' 사랑을 선택한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작은 목소리로 보이지 않는 약속을 바라보게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얼마나 진심인지 말하기 위해 많은 말을 하지 않고,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걸음으로 약속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길 바랬다면, 그건 아이다와 사비에르의 이야기가 그런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거다.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 준 사랑하는 나의 벗, 나의 스승 존의 인생이 그러했듯이.


최근에 책이 낡아서 책싸개를 했다.

손 때가 많이 묻은 책이다.

이야기가 좋아서, 존의 문장처럼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사모하는 김현우 피디님(번역자)의 시선을 닮고 싶어서 나는 이 책을 참 많이도 읽었다.

사랑의 의미가 가벼워지는 이 시대에, 이런 사랑도 있다고, 그게 너무 좋았다고 꼭 소개하고 싶은 책이다.


지금도 여러 곳곳에 있을 수많은 아이다와 사비에르의 안녕을 기도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TjpIMI8HF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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