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요조)을 덮으며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사람과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사람.
세계는 이렇게도 나뉜다'
일할 때의 정신적 에너지 소모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일할 때 외에 에너지를 안 쓰는 나는 생활 바보였다.
가깝게는 길 찾기부터 멀게는 미래, 재테크, 계획, 경력 개발 등에 대한 대책이 체계적이지 못하고 야무지지 못했다.
그래서 직장의 울타리는 나에게 안전한 방패 같았다. 매달 월급이 나오고, 저축이 가능하고, 다음 달의 나의 지출이 예측 가능한 삶은 지금 생각해보면 천국이었다.
나는 어쩌다 보니 프리랜서가 되었고 몇 달 후 나의 안전한 울타리는 자취를 감췄다.
그러다 보니 미래, 재테크, 계획, 경력 개발에 혈안이 된 것처럼 굴고 있었다. 불안했기 때문이다. 새벽 네시의 자욱한 안개보다 내 미래가 더 뿌옇게 보였다. 두려움을 이기려 정말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열심히 할수록 마음이 팍팍해졌다. 채워지지 않는 인정 욕구랄까, 아니... 채워지지 않는 잔고랄까.. 미래에 대한 기반을 어떻게 닦나요 프리랜서 선배님들.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의 화자는 말한다.
'성공을 더 잘 사랑하기 위해서 실패를 사랑하는 거라고'.
이십 대에 예술적 소양을 쌓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더 예술가처럼 보이는가'에 더 치열하게 고민했다는 화자는 시간이 흐르면서 예술가 역시 그저 노동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싱어송라이터인 그녀는 곡이 안 써져 울적해하고, 무대에 올라가는 것을 겁낸다.
그럴 때 그녀는 박연준 시인의 <음악에 부침 - 낙원악기 상가를 떠도는 시인, 루시에게>라는 시를 떠올린다.
시 속의 루시는 '겁이난다는 사실이 겁이 나고 그 겁이 또 겁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다.
겁이 나는 마음 때문에 피하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용감하게 겁을 내며 직진하는 것이다.
그래서 루시는 '용감하게 겁이 나'라고 말한다.
화자는 이 시가 너무 좋아 자주 울고, 이 시를 읽으며 자주 우는 자신이 너무 좋기 때문에' 너무 좋아하지만 가끔 들여다본다.
나 역시 이 시를 읽으며 약간 울 것 같았다.
'나처럼 막연한 재능과 세상의 받아들임과 불안정한 잔고에 두려움 속에서도 자기의 업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면서.(참고로 이 책이 담아내는 이야기는 이 보다 다채롭고 다른 부분들로도 위로가 많았다)
3년 차 프리랜서이자, 포트폴리오 만들려다 얼결에 3년 차 북 튜버가 된 나는, 이제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담대하게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나는 여전히 두렵고, 여전히 모르겠다.
나의 예측은 자주 빗나가고, 의외의 발견이 교훈과 연료가 되고, 실패와 성공이 한 철이며 반복된다는 걸 이젠 알지만, 그것이 나를 '완. 전. 히' 초연하게 하진 못한다.
여전히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노력한다. 내년과 5년 후엔 기반이 잡혀있길 바라며 불확실한 씨앗을 매일 뿌린다.
그러나 아주 조금 더 알게 된 게 있다면, 내가 퇴화하는 것 같을 때, 성과가 안 보일 때, 그 흐름을 타고 인간관계와 잔고마저 비수기일 때도, 내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과정임을 이제는 안다는 것이다.
여전히 불안하고 겁이 나도, 용감한 겁쟁이가 되어 성큼성큼 걸어간다.
성큼성큼 가는 이유는 무서우니까. 두려울 땐 생각을 조금만 하고 야무진 눈빛으로 전진하는 공격수가 되어야 한다는 걸 이제 아니까.
'루시는 여전히 겁이 나.
그러나 겁이 난다는 사실은 하나도 겁 안 나.
루시는 지금 아주 용감하게 겁이나.
그 마음으로 오늘을 노력해 볼게.' (음악에 부침)
이 책의 장점을 세 가지 정도 추려본다.
1. 재미있고 담백하다. 멋 부리거나 각 잡고 글을 쓴 느낌이 없어서.
2. 동글동글하고 사랑스러운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3. 고유한 경험을 잘 수집하고 표현할 때 드러나는 남다른 시선이 풍부하다.
예술가로서의 고민, 직업인으로서의 고민, 러너로서의 성장기, 사별에 대한 트라우마, 트라우마를 극복해가는 과정, 창작자로서의 고민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문체가 가지는 반짝거림, 자신의 고유한 경험을 진솔하게 담아내는 깊이, 그리고 독자와 연결되는 시선이 잘 어우러진 글이라 여러 모로 좋으니 아직 안 본 분들에게 추천드림.
https://www.youtube.com/watch?v=4QJzaAefjF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