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음악의 언어(송은혜) | 시간의 흐름
서른이 넘으며 나의 인간관계의 3할은 상담과 조언으로 깊어졌다.
어린 동생들과 후배들의 진로 선택, 연애, 직장, 이직, 퇴사, 그리고 크리스천으로서의 삶의 방향성까지, 내가 먼저 건너온 다리 저편에 서 있는 그들에겐 고민과 방황이 많았다.
고집과 소신, 곤조가 많았던 이십 대 삼십 대 초반을 지나온 나는 체계적으로 실패를 예측하고 피해 가는 영민함이 없었다.
어른들이 하지 말라고 강요해도 내가 직접 겪어보고 깨져야만 납득이 되고 내려놔졌다.
때문에 많이 실패하고 아팠던 날이 많았다.
후배들이 내가 겪은 일들을 피해 갈 수 있도록 마음을 쏟아 조언을 해주고, 그러면 상대방은 진심으로 듣고, 그리고 당연하게도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보통 고민을 이야기할 때 이미 본인의 답을 정해와서 듣고 싶은 대답만을 듣고자 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자기가 듣고 싶은 대로 미래에 대해 긍정해주지 않을 때,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언해주지 않을 때 그들은 얼굴을 붉히고 완고해졌다. 소통할수록 완고해지고 무례해지는 후배들을 보며 나는 정이 떨어지곤 했다.
원했던 건 조언이라기보다 듣고 싶은 말이었고, 하고 싶었던 건 대화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는 것일 뿐.
상대방이 완고할수록 나는 좀 질리는 마음이 되곤 했는데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내가 가진 어떤 틀이 선명해졌다.
경험과 감각을 익히는 것은 각자의 몫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그들은 그들의 경계를 넓혀나가야 한다.
자신의 좁은 경험 안에서 완고해진 세계관은 세상과 계속 부딪히고 까지면서 넓혀갈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선 실패의 경험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나는 그 과정마다 너무 아파서 내가 애정 하는 후배들은 결코 겪지 않았으면, 조금 더 꽃길만 걸었으면 하는 마음에 더 마음을 쏟아 이야기하게 되는 것 아닌가?
나 역시 경계를 넓혀나가야 하는 과정인 것이다.
겪어보지 않으면 와닿지 않는 일이 젊은 시절엔 많다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
자신의 선택에서 오는 실패를 겪을 때 너무 힘들기 때문에, 어린 후배들이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앞에서도 조언은 내 몫, 선택은 내 몫이 아닌 그들의 몫인 것을 인정하는 것이 내겐 필요했다.
선택에 책임을 지고 경험과 감각을 익혀 성장할 수 있도록 한 발 뒤에서 바라봐주는 것도 내가 배워가고 넓혀가야 할 경계인 것이다.
송은혜 작가의 [음악의 언어]에는 삶을 듣는 순간의 이야기가 나온다.
제자들이 작곡가의 의도를 이해하며 음악을 몸에 익히는 연습을 하는 과정은 길고 길었다.
작가는 더디더라도 조급해할 필요가 없음을 당부한다.
우리는 모두 다르게 생겼고, 다른 성격을 가지고 다른 삶을 살아가기에 각자의 시간은 다르다.
한 사람의 성숙한 연주자로 성장하기까지 자신의 경험과 감각을 쌓아가는 시간이 연주자들에겐 너무나 필요하다.
깊은 슬픔에 잠겨 눈물을 떨구어본 사람이 연주할 수 있는 <저 노래가 들려오면>은, 사랑하는 이 앞에서 두근거려본 사람이 연주하는 슈만의 <봄밤>은 반드시 다를 것이다.
자신의 삶을 낱낱이 살피고 되새기고 쌓아가는 것은 멘토의 역할이 아닌 각자의 몫이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 찾아오면 진심 어린 조언을 하고, 실패가 분명해 보이는 선택일수록 완강하게 마음을 쏟아 말하게 되겠지만 한 가지를 더 해보려 한다.
나의 이야기와 마음이 전달되지 않을 때, 그들이 예정된 실패를 선택할 때, 그럼에도 실망하지 않고 바라봐주는 것.
우리 각자는 삶을 연주하는 연주자이기에, 그들이 빚어낼 연주가 성숙해갈 때까지 어려워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음을 끊어서 연주하라고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어떻게, 어느 정도의 강도로 연주해야 하는지, 음은 어떤 느낌으로 끝내야 하는지,
음과 음은 어느 정도의 간격을 두어야 하는지, 왜 그래야 하는지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결국 자신의 경험과 감각을 되짚어 보고, 그것을 연주하는 몸에 적용하는 수밖에 없다.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이 삶을 그냥 흘려보내지 못하는 이유다.
무르익은 봄밤 부드러운 달빛 아래에서 빛을 뿜어내는 꽃망울을 본 사람,
사랑하는 이 앞에서 두근거려본 사람은 슈만의 <봄밤>을 어떤 느낌으로 연주해야 하는지 직관적으로 안다.
깊은 슬픔에 잠겨 눈물을 떨구어본 사람은 <저 노래가 들려오면>에서
피아노 마지막 음을 어느 순간에 어떤 색채로 내려놓아야 하는지 안다.
생트 콜롱보가 말하는 '음악가'는 음악으로 먹고사는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음악으로 사고하며 삶을, 감정을 음악이라는 언어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일상의 경험을 소리로 옮기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낱낱이 살피고 되새기는 사람이다.
한 음 한 음을 우리 각자에게 의미 있는 음악으로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렇게 음악에 스민 누군가의 삶이 우리가 듣고 싶은 음악이다. (음악의 언어, 송은혜) p.81
https://www.youtube.com/watch?v=-MOcw4vkQW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