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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라스의 말]과 [고통]을 덮으며

해나의 책장을 덮으며

by 해나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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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극심해서 숨이 막힐 것 같고 고통으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고통에는 자리가 필요하다.' (고통) p.10


반년 정도를 깊은 슬픔 속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매일매일 너무나 많이 울었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계속 울었고 그렇게 울다 보면 구토가 났다.

슬픔의 표출이 구토라는 걸 알게 된 날들.


[고통]에서 뒤라스는 숨을 잘 쉬지 못한다.

잠시 숨을 고르게 될 때 살기 위해 빵을 먹으려 시도하지만 토할 것 같아 먹지 못한다.

그 시절의 그녀는 잘 먹지도 자지도 못한다.

그렇게 잠들지 못하던 날에

'검은 구덩이 속 그의 곁에서, 죽은 그의 곁에서 매일 저녁 잠든다'는 일기를 끄적인다.


처음 뒤라스의 [고통]을 읽으며 포로수용소에 끌려 간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의 마음을 섬세한 글을 통해 뒤라스가 2차 세계 대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가장 개인적인 자신의 슬픔은 그 시절을 증언해주는 탁월한 장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웬걸.

그녀는 정치적인 의도로 이 글을 쓰지 않았다.

뒤라스는 그런 방식을 위해 문학을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글을 쓸 땐 모든 이데올로기와 문화적인 기억을 잊는다고 말한다.

그녀에게 글은 맹목적인 열정과 사랑이며 분출구인 것이다.


"난 나를 짓누르는 침묵을 말하게 하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열두 살 때인가, 오직 글쓰기만이 방법인 것 같았죠." (뒤라스의 말) p.23


그럼에도 [고통]은, 그래서 [고통]은 너무나 특별한 책이었다.

극강의 섬세한 묘사를 통해 불안함과 죄책감, 자포자기한 마음과 놓지 못하는 마음을 보여 준다.

정치적인 의도로 쓴 소설이 아님에도 시대적 증언이 풍부하다.

전혀 정제되지 않은 어조로 사랑과 정의, 고통의 의미에 대해 너무 많은 질문을 던지니까.

그녀의 글 속에는 결론은 없고 질문과 서사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뒤라스를 탐험하듯 읽게 된다.








[뒤라스의 말]을 이어서 읽으며 [고통]을 좀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열 두 개의 테마로 진행된 인터뷰집이다.

기억, 이탈, 플래시백.

뒤라스의 서사구조에 빠지지 않는 요소이다. 망각과 구멍이야 말로 진정한 기억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그녀의 인생의 기억의 조각들을 재료로 글을 쓴다.

세상에 글을 내놓을 때면 논란과 비난이 따라다녔던 그녀.

늘 어딘가 제정신이 아니고 비논리적이라는 비난이 그녀를 따라다녔고 뒤라스는 사람들이 지적하는 광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 한다.

그 불안증을 이기지 못해 그녀는 알코올 중독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열정들을 그녀는 글로 남겼고 글쓰기 앞에서 보인 그녀의 성실함과 진지함은 '뒤라스라는 세계'를 만들어 간다.


그녀는 고통의 여인이었지만 눈물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짊어지고 슬픔 속으로 걸어가며 자신의 고통을 연료로 글을 써내려 간다.

그녀의 글은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끌어안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라 말로 할 수 없어서 터져 나와 줄줄 흐르는 무언가를 막을 수 없어서 완성된 것만 같은 글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고유함이 '뒤라스의 세계'가 아닐까.


뒤라스를 읽기 위해 거의 한 달을 헐었다.

쉽게 말할 수가 없어서, 정리되지 않아서, 그럼에도 계속 생각하게 되어서 (아니 이것은 연애의 패턴인데) 사랑하게 되었다.

자신의 고통을 연료로 삼아 불꽃처럼 평생 성실하게 글을 쓰다 간 여인.

고통에서 시작했지만 내게 가장 선명하게 남은 것은 글을 대하는 그녀의 진실하고 성실한 태도이다.

진실하고 성실해서 반짝이지만 결코 보드랍지 않은 글.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관념을 배제하고 문학이라는 창 안에서만 이야기할 때 나는 그녀의 문학적 세계를 계속 탐험해가고 싶다.

고통에는 자리가 필요해서 뒤라스의 세계는 완성되었다.

험한 인생을 살았던 그녀, 그럼에도 결코 글쓰기를 놓지 않았던 그녀에게 무한한 애정을 보낸다.




https://www.youtube.com/watch?v=u4-2Q4fORo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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