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그리트 뒤라스 고통, 뒤라스의 말
지난해부터 프랑스 문학을 한 편 한 편 읽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경험한 프랑스 문학은 문장이 아름답고, 자유로운 세계관을 가진 작가들의 작품들이 공통점이었다.
내가 읽은 작가들은 로맹 가리, 크리스티앙 보뱅, 아니에르노 정도.
그리고 최근에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꼭 전작을 탐험해야 할 작가가 한 명 생겼다.
바로 마르그리트 뒤라스.
나는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고통]을 읽으며 너무나 놀랐다.
어쩜 이렇게 개인적이면서도 정치적일까,
어쩜 이렇게 문장이 섬세하면서도 거칠까.
뒤라스는 어떤 세계를 가진 사람일까. 많은 질문이 생겼다.
https://www.youtube.com/watch?v=u4-2Q4fORo0
마르그리트 뒤라스 소개
[고통]의 줄거리
이 책의 장점
마르그리트에게 고통과 사랑은 어떤 의미일까?
뒤라스의 말
그녀의 본명은 마르그리트 도나디외.
1914년 베트남 사이공 근교 지아딘에서 태어나 수학교사였던 아버지와 초등학교 교사였던 어머니, 그리고 두 오빠와 함께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다.
1932년 대학 입학과 함께 프랑스에 정착,
1939년 첫 번째 남편 로베르 앙텔므와 결혼
2차대전 중 프랑수아 미테랑과 함께 레지스탕스로 활동한다.
오늘 소개할 [고통]은 그녀의 첫 남편 로베르 앙텔므가 2차 세계 대전에서 포로수용소에 끌려가 있는 동안 그를 기다리며 기록한 일기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1950년대에는 공산주의자로서 현실 정치에 참여하며 알제리 전쟁 반대 운동과 68 혁명에 목소리를 낸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삶을 글쓰기의 소재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시대적 배경이 밀도 높게 증언되지만 그녀는 글쓰기를 할 때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고 한다.
이 부분이 고통을 읽다 보면 참 묘하게 다가온다. [고통]은 상당히 개인적이면서도 정치적인 소설로 느껴졌으니까.
그녀는 부재와 사랑, 고통과 기다림, 글쓰기와 광기, 여성성과 동성애의 결합 등을 이야기하며 통속과 서정성이 뒤섞인 독자적인 세계를 표현해 낸다.
뒤라스의 문학을 통해 극강의 섬세한 묘사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뒤라스 문학의 강점이다.
전쟁과 경계인의 삶, 이국에서의 불우한 어린 시절이 만들어간 그녀의 독특한 세계가 그녀의 작품들에서 빛을 발한다.
놀라울 만큼 섬세하고 처절한 그녀의 세계를 마주하는 동안 나의 세계도 함께 확장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고통]은 그녀의 자전적인 이야기이자 레지스탕스 문학이다.
이 작품에는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고통의 여인 뒤라스.
포로로 붙잡혀간 뒤라스의 남편 로베르 L.
현재 뒤라스의 곁을 지키는 그녀의 연인 D.
"전쟁이란 일반적 여건이며, 전쟁의 필연성인 죽음 또한 그러하다.
그는 내 이름을 부르며 죽었다." p.10
그녀의 고통의 원인은 전쟁에 있다. 그녀는 포로수용소로 끌려간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살았을까', '그는 죽었을 것이다'
끊임없이 그녀의 생각은 우왕좌왕하고 그녀의 정신과 육체는 나약해진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타의에 의한 원치 않은 이별이 그 사람의 감정을 어떻게 황폐하게 만들어 가는지, 그리고 무엇이 그녀를 견디게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면 이 이야기는 더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6년간의 전쟁이 끝나고 나치 독일이 멸망했다.
이 시기의 그녀에게 '죽음'이란 자신의 인생의 마무리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를 기다리는 일을 멈추는 것. 그것이 그녀의 죽음의 의미였다.
그녀가 선택한 '고통'은 남편에 대한 기다림이다. 그리고 그녀는 고통에서 빠져나갈 생각이 없다.
그녀의 남편을 다시 만나는 날, 살았든 죽었든 남편의 실질적인 존재가 확인되는 날, 그녀는 고통을 마무리할 것이다.
'고통이 극심해서 숨이 막힐 것 같고 고통으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고통에는 자리가 필요하다.' p.10
나는 반년 정도를 깊은 슬픔 속에 지낸 적이 있었다.
그때 난 매일매일 너무나 많이 울었는데, 사람이 너무 심하게 긴 시간을 울면 구토가 난다는 걸 알게 됐다.
슬픔의 표출이 구토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울었다.
뒤라스의 고통을 보며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뒤라스는 숨을 잘 쉬지 못하는 고통을 이야기한다.
잠시 숨을 고르게 될 때 살기 위해 빵을 먹는다. 하지만 토할 것 같아 먹지 못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생각한다.
'이 빵은 그가 먹지 못한 빵, 이 빵이 없어서 그가 죽었다.'
잘 먹지 못하고, 잘 자지 못하고 일상을 이어가는 시간들이 일기 속에 내내 이어진다.
'검은 구덩이 속 그의 곁에서, 죽은 그의 곁에서 나는 매일 저녁 잠든다.' p.14
1. 극강의 섬세한 묘사
책 속에는 불안함과 죄책감, 자포자기한 마음과 놓지 못하는 마음이 공존한다.
그녀는 용기를 낼 다른 이유가 없었다고 말한다.
그녀와 로베르 L 사이의 아이는 전쟁 중에 의사가 왕진을 오지 못해 죽는다.
우리의 감정과 상황은 뭉뚱그려서 정의할 수 없는 여러 층이 있는데 전쟁 속에서 포로로 잡혀간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의 마음을 너무나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보여준 책이다.
읽으면서 어떤 교훈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뒤라스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의 세계가 확장되고 있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2. 정치적인 의도로 쓴 소설은 아니지만 풍부한 시대적 증언
뒤라스와 남편은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다.
이 책을 통해 2차 세계 대전 종전의 상황과 레지스탕스 운동가들의 움직임, 당시를 견뎌낸 사람들의 마음과 삶 등의 시대의 증언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사건에는 연합군이 도착하기 전 날의 이야기가 나온다.
살아남은 2만 명의 포로들이 연합군이 도착하기 전 날 수용소에서 총살 당한 1만 1천여 명을 애도한다.
독일군들이 도망가면서 살인을 자행하지 못하도록 어떤 장치가 필요했는데. 정부에선 주도권이 레지스탕스 운동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소극적인 입장을 취했고 그로 인해 포로들은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했다.
그 당시 파리의 불안정한 모습을 가까이 느낄 수 있다.
이 책을 꼭 추천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가 이런 부분 때문이다.
뒤라스가 정치적인 메시지를 가지고 쓴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정치적인 문제들로 인해 가장 개인적인 삶이 얼마나 처절하게 영향을 받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나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뒤라스가 레지스탕스로 활동을 했기 때문에 정치적 입장이 분명하고 그것을 작품에 녹아내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읽은 [뒤라스의 말]을 보며 뒤라스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문학을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3. 사랑과 정의, 고통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책
소설 속에서 포로였던 신부가 독일 고아 아이를 본부로 데리고 온 이야기가 나온다.
그 신부는 종교적인 신념과 명분에 가득 차 있을 뿐 실질적으로 상실하고 부서진 사람들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한다.
그는 아이의 손을 잡고 자랑스럽게 아이를 어떻게 발견했고, 이 전쟁은 아이의 잘못이 아님을 설명하면서 용서할 권리, 죄를 사해줄 권리를 설파한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여인들의 마음에는 분노와 증오가 차오른다.
이 신부는 다른 사람들이 부서진 마음을 치유하고, 용서하고 다시 일어설 권리를 빼앗아간 것이다.
상실한 자들의 마음을 모르면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정의를 강요했을 뿐이다. 뒤라스는 이런 모습을 날카롭게 포착해낸다.
책을 읽다 보면 뒤라스의 마음이나, 다른 인물들이 처한 모습과 그들의 낙심을 마주하며 고통과 불안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처절한지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용서란 뭘까?
사랑이란 뭘까?
우리는 타인의 고통과 자신의 고통을 얼마나 헤아리고 있는가?
뒤라스가 통과하고 있는 고통이 너무나 구체적이고 섬세하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타인의 마음에 대한 존중과 조심스러움이 깊어진다.
책 중반 즈음 바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바닷가가 그를 제일 기쁘게 한 것이고,
그의 건강에도 좋을 것이다.
그는 바닷가에 이르러 해변에 선 채 바다를 바라볼 것이다.
나에겐 그, 그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p.42
그리고 이 책은 그와 함께 있는 바다에서 마무리된다.
하지만 지고지순한 사랑의 기다림과 행복의 회복, 안도감. 이런 결말이 아니다.
뒤라스는 정말 의외의 선택을 한다.
(스포가 될까 봐 말할 순 없지만)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뒤라스의 선택의 이유가 고통으로 인해서라고 생각했다.
감당할 수 없게 처절한 고통을 써 내려간 글을 읽으며, 남편을 기다리는 건 어떤 미션처럼 느껴졌고, 그리고 그 시절의 치열한 괴로움을 그냥 다 잊고 싶은 마음으로 내린 선택이 아닐까 생각한 거다.
하지만 [뒤라스의 말]이라는 책을 읽으며 이런 해석은 너무나 나의 프레임에 기반한 해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뒤라스는 그렇게 정제되고 지고지순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고통을 부르는 사람이고, 고통을 선택하는 사람이고, 고통을 연료로 글을 쓰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삼각관계를 원했던 사람이었다.
뒤라스는 사랑과 고통의 중심 가치가 내가 추구하는 결과도 내가 해 온 사랑과도 너무나 다른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뒤라스의 문학을 읽는 건 나의 세계를 확장해가는, 내가 경험하지 않은 마음을 가늠해 보는 시간이 된다.
뒤라스라는 인물 자체가 타인의 공감과 위로를 바라며 타인의 세계 속에 받아들여지고 동일시되길 바라는 욕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2차 세계 대전 종전 직전과 직후의 상황을 그린다.
뒤라스의 남편 로베르 L은 1934년에 체포된다. 그리고 뒤라스는 이 책을 1985년에 쓴다.
그녀의 일기를 토대로 50여 년의 시간이 흐른 후, 그녀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그녀에게 사랑은 존재에 완전히 사로잡히는 감정이지만 그 속에서 그녀의 결핍을 채우진 못한다.
뒤라스의 글 속에는 결론은 없고 질문과 서사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뒤라스를 탐험하듯 읽게 된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나는 뒤라스에게 사랑과 고통은 어떤 의미일까 명쾌하게 결론 내릴 수 없었다.
그러나 뒤라스의 고통과 그 시절의 역사는 나의 내면에 분명한 흔적을 남겼다.
최근 마음산책에서 [뒤라스의 말]이 출간되었다.
나오자마자 다 읽었다.
이 책은 이탈리아의 저널리스트 레오폴디나 팔로타 델라 토레가 1987년부터 1989년까지 2년에 걸쳐 진행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읽어보면 인터뷰어인 레오폴디나 팔로타 델라 토레의 질문도 범상치가 않다는 걸 느끼게 된다.
거의 뒤라스 전문가처럼 그녀의 작품들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인사이트를 가지고 질문한다.
그게 또 무척 흥미롭다.
이 책은 열두 개의 테마로 진행된다.
유년 시절, 파리지엔느 시절, 글쓰기의 여정,
텍스트 분석에 대하여, 문학, 비평과 독자,
인물 묘사에 대하여, 영화, 연극, 열정과 알코올, 여성, 장소들.
모두 뒤라스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들이라 한번 열거해 보았다.
뒤라스를 읽기 전에 뒤라스의 세계를 이해하고 출발하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고통]에 대한 해석이 완전히 달라졌다.
처음에 고통을 읽을 때 굉장히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썼다고 생각했다.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를 장치로 사회적인 메시지를 분명하게 만드는 그런 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뒤라스가 레지스탕스 공산주의자로 활동했었기 때문에 문학을 통해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는 작가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웬걸..
이 책을 읽으며 뒤라스는 그런 방식을 위해 문학을 사용하는 사람이 전혀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그녀는 글을 쓸 땐 모든 이데올로기와 문화적인 기억을 잊는다고 말한다.
그녀에게 글은 맹목적인 열정과 사랑이며 분출구인 것이다.
"난 나를 짓누르는 침묵을 말하게 하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열두 살 때인가, 오직 글쓰기만이 방법인 것 같았죠." p.23
뒤라스의 글을 읽을수록 점점 더 뒤라스를 사랑하게 되는 이유는 글쓰기에 대한 그녀의 맹목적인 열정과 성실한 태도 때문이다.
그녀는 열정으로 기진하여 말로 털어놓을 기력이 없어서 글로 쓰기로 결심했다고 말한다.
그녀의 야수성이 표출된 <연인>,
유일하게 정치적인 목소리를 담았던 <태평양을 막는 제방>,
자신의 성숙기로 간주하는 시기의 작품이라고 일컫는 <지브롤터의 선원>,
자신을 형상화 한 <모데라토 칸타빌레>와 <히로시마 내 사랑>
그렇게 울부짖듯이 토해 낸 그녀의 글들이 '뒤라스의 모든 세계'를 형성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열심히 뒤라스의 전작 읽기를 진행 중이다.
기억, 이탈, 플래시백.
뒤라스의 서사구조에 빠지지 않는 요소이다.
망각과 구멍이야말로 진정한 기억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그녀의 인생의 기억의 조각들을 재료로 글을 쓴다.
세상에 글을 내놓을 때면 논란과 비난이 따라다녔던 그녀.
늘 어딘가 제정신이 아니고 비논리적이라는 비난이 그녀를 따라다녔고 뒤라스는 사람들이 지적하는 광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그 불안증을 이기지 못해 그녀는 알코올 중독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열정들을 그녀는 글로 남겼고 글쓰기 앞에서 보인 그녀의 성실함과 진지함은 '뒤라스라는 세계'를 만들어 간다.
그녀는 고통의 여인이었지만 눈물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삶을 짊어지고 슬픔 속으로 걸어가며 자신의 고통을 연료로 글을 써 내려간다.
그녀의 글은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끌어안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라 말로 할 수 없어서 터져 나와 줄줄 흐르는 무언가를 막을 수 없어서 완성된 것만 같은 글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고유함이 '뒤라스의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작가의 글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고통]이라는 책으로 시작했지만 두 권의 책을 읽으며 내게 가장 선명하게 남은 건 글을 대하는 그녀의 진실하고 성실한 태도이다.
진실하고 성실해서 반짝이지만 결코 보드랍지만은 않은 글이다.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관념을 배제하고 문학이라는 창 안에서만 이야기할 때 나는 그녀의 문학적 세계를 계속 탐험해 가고 싶은 애독자가 되었다.
쉽지 않지만 모르고 살고 싶진 않은 뒤라스의 세계.
당신에게 뒤라스는 어떤 사람인가요?
해나의 한 줄 요약 : 고통에는 자리가 필요해서 뒤라스의 세계가 완성되었다.
https://linktr.ee/hannahbookshe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