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밝은 밤 (최은영) | 문학동네
나는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견디는 시간이 정신적으로 압도하여, 시선을 내게 두고 생각이라는 걸 한다면, 내가 겨우 서 있다는 걸 내 입으로 인정해 버리면 둑이 무너지고 물이 넘쳐흐르듯 곪아있는 것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아서.
그 시절을 견뎌내던 나는 어렸고, 너무 고독했다.
고독은 나를 곪게 했고, 나는 그걸 잘 인지하지 못했다.
현실의 나를 놓아두고 오른 여행길,
이국에서 나는 나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연상의 친구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그저 나의 이야기를 들었고, 나는 한국에서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내 마음의 응어리를 실타래처럼 풀어냈다.
다 비워내니 깨끗해졌다.
그리고 2주 후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지옥 속으로.
비워내고 깨끗해진 마음으로 다시 싸워갔다. 전쟁 같은 내 일상과.
견딜 수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괜찮다고, 그것이 너에겐 최선이었다고.'
그런 얘길 하고 싶고 듣고 싶었다.
'말'. 말들이 있다.
누군가 그것을 열린 마음으로 들어줄 때 우리는 치유된다.
<밝은 밤> 속 증조할머니 이정선에겐 새비 아주머니가, 할머니에겐 지연이, 그리고 지연에겐 할머니와 할머니의 이야기 속 새비 아주머니의 말들이 그런 역할을 한다.
'증조할머니 - 할머니 - 엄마 - 나' 4대의 여자들 사이에 10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들이 미처 회복하지 못한 상처를 두드리는 '사이의 말들'이 있다.
아무도 위로해주지 않던 시간, 그저 견디고 받아들이라는 말들은 깊이 새겨져 자국이 남았지만, 그 상처 위로 새로운 말들이 쌓인다.
당신의 상처가 나에게로 와서 치유의 말이 될 수 있음을 나는 잘 안다.
최은영 작가의 이야기는 언제나 내게 단아하고 섬세한 치료의 말들이었다.
나는 '마음치유'와 '내면의 아이'에 관한 책들을 잘 읽지 않았다. 내겐 필요가 없었다.
슬픔을 이토록 섬세하게 다루는 작품들로도 나는 충분했으니까.
특히나 최은영 작가의 글을 읽고 나면 나는 내 속에 정제되지 못한 응어리들을 한차례 비워내고 말끔히 다시 일어나는 기분이 들곤 했다.
지난날 뉴욕에서 연상의 나의 벗이 내게 걸었던 마법처럼.
"내게는 지난 이 년이 성인이 된 이후 보낸 가장 어려운 시간이었다.
그 시간의 절반 동안은 글을 쓰지 못했고 나머지 시간 동안 <<밝은 밤>>을 썼다.
그 시기의 나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누가 툭 치면 쏟아져 내릴 물주머니 같은 것이었는데,
이 소설을 쓰는 일은 그런 내가 다시 내 몸을 얻고, 내 마음을 얻어 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p.2
그녀의 슬픔이 만들어낸 <밝은 밤>을 나의 눈물 항아리에 담는다.
올해의 책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rp_j7W0i66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