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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나책장 Aug 24. 2022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힘

feat.홍진호 모던 첼로, 사빈모리츠, 안상훈, 도윤희 작가




#보이지않는것을믿는힘


창문이 아주 큰 카페에 왔다. 나는 이 카페에서 창 밖을 바라보며 글을 쓰는 걸 좋아한다. 소음들을 차단하려 내가 선택한 곡은 홍진호의 <꽃핀다>라는 첼로 연주곡이다. 첼로의 선율을 타고 음악이 흐르면, 어느 순간 다른 악기들이 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위를 미끄러지듯 다시 첼로의 선율이 포개진다.

꽃이 피고, 꽃이 지고, 다시 꽃이 피어나는 계절 위로 첼로의 선율이 흘러간다. 한 사람의 고독한 계절이 무르익어간다.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 사빈 모리츠와 안상훈, 도윤희 작가의 그림을 떠올린다. 뭉개 뭉개 피어나는 색채 속에 멜로디가 녹아들고 어느 시절이 지나간다. 그때가 아름다웠든, 슬펐든, 아팠든, 노래는 흘러가고 색채는 뭉개 뭉개 피어나며 시간이 흘러간다.

그렇게 반복 속에 꽃이 피고 지며 무르익어 간다.

나의 노래는 그 여정을 통해 술처럼 익어간다. 노래가 흘러가는 여정 속에 피어난 색채가 나를 어루만진다.


"힘들었니?"

"글쎄.."


"슬펐니?"

"조금.."


"아팠니?"

"사무치게..."


"잘했어."


시간은 내게 잘 견뎠다고 말해준다.

홍진호의 <모던 첼로> 음반을 들으며 나는 고독하고 외로운 여정을 기어이 걸어서 여기까지 온 사람의 노래를 생각했다. 아름답기 위해 통과해 온 과정의 녹록잖음은 늘 경이롭다. 고유한 노래를 만들어가는 여정이니까.

내가 믿는 신앙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힘을 믿음'이라 말한다.

나는 어떤 긴 시절을 그 믿음 하나로 견뎠다. 나의 여정과 삶과 사랑에 대해 어떤 기대는 견고하게, 그리고 어떤 기대는 버려야 했다. 내가 믿을 수 있는 건 미래에 있었다. 긴 계절을 지나 아름답게 여물어 있을 나의 시선과 나의 글에 대한 믿음, 폐인 상처가 많을수록 섬세하게 위로의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거란 믿음, 지금 나를 아프게 찌르는 것들은 상대의 잘못만은 아니야, 나의 무엇이 그것을 아프게 받아들이는 걸까 알게 될 거라는 믿음, 그리고 알게 되면 그것을 가만히 감싸고 더 맑은 창가에서 더 강하고 관대한 마음을 품게 될 거라는 믿음, 그것이 나의 노래가 되어 세상을 향해 노크할 거라는 믿음.


내가 지금 어디 즈음에 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의 여정은 이 노래 같다. 뭉개 뭉개 피어나는 색채 속에 스며드는 선율, 그 선율을 타고 어느 시절을 흘러가고 있는 젊은 연주자의 첼로처럼 앞서 말한 아티스트들의 그림 속에는 계절이 녹아있다. 사빈 모리츠에겐 4계절이, 안상훈 작가와 도윤희 작가의 그림 속에는 독일과 한국에서의 시간이.

우리는 저마다의 계절을 살아내고 자신의 노래를 부른다.

세상의 몫은 세상에게 맡기고 우리는 우리 몫을 살아내야 한다.

그때의 나를 위로해주고 힘을 주는 건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힘'이다.

내 몫의 삶과, 내 몫의 슬픔, 내 몫의 치열함과 오랜 기다림이 나를 빚어갈 거라는, 나의 아름다운 노래는 무르익어 깊어질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을 다독이며 젊은 연주자의 단단한 첼로 연주를 듣는다.



참고:

홍진호 <모던 첼로>

사빈 모리츠 <Raging Moon> 갤러리 현대, 2022. 03. 11-4.24

안상훈, <반복되는 문장으로 주름을 연습했다> 갤러리 조선 2022. 03. 26-5.6

도윤희, <베를린> 갤러리 현대 2022.1.14-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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