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기구 5] 나의 고향

by 한나


나는 전형적인 한국의 아파트에서 자랐고, 또 살고 있다. 똑같이 생긴 것들이 여러 개 뭉쳐있고 개성이라고는 알 수 없게 자로 딱 자른 듯이 잘라져 있는 구멍에 살고 있는 거다. 잘 보면 감옥이나 개미집 같이 생겼다. 벌레들이 기어들어가는 곳 같달까. 언제나 같은 위치에 어쩌면 바뀌는 것도 없다. 조경마저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대강 조명을 색감도 전혀 맞추지 않은 채 둘둘둘 나무에 둘러놓은 판이다.


이곳에서 많은 일이 있었지만 다시 조용히 아침이 왔다. 반복.


죽고 싶으면, 죽어. 인생이 뭐 특별한 줄 아나. 다 그렇게 사는 거야. 나는 언제나 강렬히 새어 나오는 그 말로부터 나와 가장 가까운, 그리고 아마 가장 가까울, 부모라는 사람들마저 타인이라는 점을 깨닫곤 했다. 그럼 내게 다가오는 모든 것을 온전히 나 혼자 받아내야 하는데 나는 그게 싫었다. 싫었고, 자신도 없었다. 내가 지금 가진 것들도 싫었다. 벗어날 방법을 곰곰이 생각해 본 적도 있었는데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망상도 해보았는데 현실을 맞닥뜨렸고, 그 이후로도 특별한 재주는 발견하지 못했다. 여기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같은 처지일 텐데, 나라고 창조주인지 뭔지가 뭐 아이고 예쁘게 여겨 여기를 벗어나게 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아마 나는 계속 이렇게 살겠지. 내가 자살한다 해도 모두들 며칠이면 잊어버릴 거다. 부모라는 사람들은 슬픈 시늉을 할 테지만, 어쩔 수 없지-라는 말을 되뇌고는 이내 일 년 내로 일상으로 돌아갈 거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그렇지만 살아야 하는 이유는 아무도 모르지. 때때로 한나 얘기 들었어요-라는 말에 사회적으로 알맞게 참담한 표정을 지어주면 그만이다. 하지만 엄마는 여전히 회를 맛있게 먹을 거고 아빠도 나물을 쩝쩝 거리며 먹을 거다. 그리고는 빠른 시일 내에 병에 걸리든 자다가 죽든 아무튼 죽을 거다. 그러면 내가 자살이라는 사회적으로 듣기 꺼림칙한 사건으로 죽더라도 사십 년 내로(그나마 나의 최측근인 부모님의 최대 기대 수명에 맞춘 시점) 모든 게 잊힐 거다. 그렇게 생각되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우리 동네에서도 자살과 타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죽음은 빠르게 사람들 입에 올랐고 또 내려갔다. 예를 들면 중학교 때는 나의 반 친구 중 한 명의 엄마가 죽었다. 듣기로는 걔네 아빠가 죽였다. 말싸움을 하다가, 때리다가, 칼에 찔린 뒤 도망가는 엄마를 아파트 문 입구까지 쫓아나가서 칼로 두 번 더 찔렀다고 한다. 한동안 아파트 동 앞 시멘트 바닥에는 갈색 빛 핏자국이 남아있었다. 처절하게 도망가는 피투성이의 아줌마를 떠올렸다. 사건 이후에는 동네에 소문이 돌아서 걔는 이름을 바꾸고 결국 전학 갔다. 무척 충격적인 사건이었는데 아파트값 때문인지 기사도 몇 개 안 났다. 얼마 안 되는 기사 밑에는 분노로 가득 찬 알 수 없는 말들만 가득할 뿐이었다. 그래서 자세한 진상은 알 수 없었고 소문만 엄청 들었다. 이상하게 나는 칼에 찔려 죽은 엄마를 보고 안도할 그 가엾은 아이를 떠올렸다. 아마 이젠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을 거야. 그 아빠는 감옥에 갔다고 들었다. 걔를 데려간 이모가 좋은 사람이길 바랄 뿐이다. 어쩌면 그 벌레집 같은 곳에서 좋은 곳으로 탈출한 걸지도 몰라.


이외에도 운전기사의 과로사라든가 사연을 알 수 없게 아파트 연못가로 뛰어내려서 자살한 사람이라든가, 입시 결과를 비관해 자살한 학생이라든가, 하여튼 나의 고향은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걸 이해하는 사람이 많은 곳이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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