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회사는 이전의 회사보다 규모가 상당히 컸고, 부서가 세분화되어 있었다. 그 회사 전전에
20대의 마지막을 마친 대기업보다는 덜했지만. 그 정도면 그 분야에서는 몇 위 안에는 들어 보였다.
최종 면접 때 그 회사 대표님은 내게 이런저런 걸 물어보시더니, 스프링으로 묶인 두툼한 걸 보여주셨다.
많이 봤던 PT자료인데, 뭔가 공격적이고 세 보이고 무거워 보였다.
수많은 PT자료 중 한 갈래인 '제안서'라는 거였다.
'보니까 이거 금방 해낼 수 있을 거 같아요.'
잘 모르겠지만 노력해보겠다 했다 그러나 속으론 저걸 해내려면 수년은 걸리리라 예상했다.
지난 회사보다는 일의 범위가 넓어졌다. 제안서뿐 아니라 실제 제안 이후 약속한 작업들을 해 내야 했다.
당시 나는 경력직원으로 왔고. 거기엔 사수라고 할 사람들도 없었다. 각자 헉헉대며 자기 일을 쳐내느라 바빴다. 먼저 들어온 사람 중 누구는 도와주기는커녕 최대한 자기가 할 일을 떠넘기고 오히려 열심히 한 일에 숟가락을 얹고, 본인이 불안했던지 묘하게 후려쳤다. 특히 나와 그때 비슷하게 들어온 동료를 많이 괴롭혔던 기억이 난다. 지금까지도 그 동료는 서로에게 큰 도움과 격려가 된다. 버틸 힘이 돼주어 정말 고마웠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미생의 '성대리'를 만난다.
처음엔 다양한 매체를 다뤘다. 정부 공공기관의 각종 홍보용 정기간행물과 백서들. 글을 쓰고, 교정을 보고, 전체 기획을 하며 때론 외주 작가와 통화하면서 진행을 하고... 특히 클라이언트와 통화를 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뭔가 그 전 회사와는 달리 조금은 간접적인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영업부가 꽤 커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냥 충실히 받는 일을 쳐냈다. 전체적으로 프로젝트를 컨트롤하고 마무리하는 것이 내 일이라고 여겼다. 때로는 영문 애뉴얼리포트가 걸려서 고생하기도 했다. 그래도 어떻게 어떻게 하니 되긴 되더라.
그 일을 하며 '일정표'를 만드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단 걸 알게 됐다. 결국 돈을 준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일정 내에 원하는 결과물을 받는 게 중요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중간보고. 알아듣게 메일을 보내는 법, 커뮤니케이션하는 법을 익혔다.
그때 부서장은 그 전의 회사에서 내가 프레젠테이션 쪽 일을 한 걸 알고는 그 회사에서 기존에보유하고 있었던 제안서 자료의 디자인을 개선하라고 했고, 그 전 디자이너들이랑 같이 일하면서 본 것을 기억해 내가 만질 수 있는 툴로 개선을 했다. 반응이 나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때까지도 내가 '발표자'가 될 줄은 알지 못했다. 그냥 이렇게 자료를 만지는 게 좋았다. 그 회사의 좋은 점은 그 전 회사보다 더 많이 방대하게 자료가 들어온다는 점이었다. 회사 내의 책장엔 각종 포트폴리오가 있었는데 그건 한마디로 정보의 보고였다.
힘이 센 것도 아니고, 집안이 대단한 것도 아니고 돈도 없어서. 그나마 정보를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안전할 거란 믿음이 있었다. 가끔 일하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그 '정보로 가득한 창고'에 들어가면 맘이 안정됐다.
그러나 그 안전함에서 곧 끌려 나올 일이 생긴다.
세상에 마상에, 그전까지 상사가 할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지는 일 정도만 명령한 부서장이 한 공공기관의 홍보물 제안부터 발표까지 하라고 한 거다. 이게 대표님의 계획이었나? 입사하고 3개월 후의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회사 대표님은 영화 신세계의 등장인물인 '정청'급의 심계를 보유하신 듯하다.
제안서의 원 라이너는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그 회사의 역량은 그 전의 자료를 참고하면 됐다. 우리는 이제껏 이렇게 작업을 잘 해왔고 이 회사는 이 정도의 스펙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정도를 보여드릴 테니 우리에게 일을 주시옵소서! 그러나 이건 실제 작업물이 시안에 들어가야 했고 특별하게 어필을 해야 했다. 무엇보다 내가. 심사위원 앞에 나가서. 발표해야 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계속 체했다. 오죽하면 그 회사 들어가서 내 별명이 '자주 체하는 사람'이었을까? 위궤양까지도 따라왔다.
그래도 하긴 해야 했다. 안 한다 못한다는 말 자체가 통하지 않는 게 회사니까.
과정은 대충 머리로 시뮬레이션해봤더니 그랬다.
발표일까지의 스케줄 공유→ 콘셉트 공유 및 회의 → 디자인 콘셉트 확정 → 디자인에 필요한 소스 준비 제공 → 디자인 팀의 시안 디자인 착수 → (그와 동시에) 제안서 원 라이너 결정 → 목차 구성 → 강조점 체크 → 제안서 마무리 → 부서장 결제(제안서/디자인 동시에) → 제안서 디자인 및 디자인 완성본 삽입→ 발표 스크립트 준비 및 연습
내부의 킥 오프 미팅부터 잡아야 했다. 우선 밖으로 달려 나가 커피를 사고 숨을 돌렸다. 내가 몇 년간 내 몸에 들이부은 커피의 수분만 추출해도 아쿠아리움 하나 정도는 너끈히 채울 수 있을 정도였다.
안녕, 월급은 고마웠어요 하면서... 진심으로 지구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일단은, 발표와 제출 날짜를 역산해서 계획표를 짰다. 디자인팀과 회의를 들어갔을 때 날짜별 할 일을 문서화하고, 디자인화 시킬 수 있게 콘셉트를 짜서 전달했다. 2주도 채 안 되는 시간이었다. 다행히도 디자인을 하시던 팀장님이 짬바가 있으셨던 분이라 금방 파악하시고 작업에 돌입해주셨다.
그걸 맡겨놓고 제안서를 쓰고 스크립트를 썼다. 당시 회사에는 큰 연습용 회의실이 있었다. 워낙 제안입찰을 많이 하는 곳이고 뭐 등등 쓸 일이 많아서 그랬나 보다.
조용한 회의실... 주말이었다. 밥이 안 넘어갔다. 계속 스크립트가 포함된 제안서 프린트물을 한 장씩 손으로 넘기며 읽고 또 읽는데, 주책없이 눈물이 터진 거다. 무서웠다. 내가 발표에서 삐끗하면 이 프로젝트 관계자들과 부서 사람들이 나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옛날 일이 리와인드됐다.
언제는... 언제는 나보고 닥치라며? 근데 날 더러 또 말하래!
트라우마는 보통 맘에 깊숙이 숨어있다가 어떤 일이 방아쇠가 되면 툭 하고 튀어나온다. 꼬꼬마 시절 수업시간에 아는 거 발표했다고 또 질문했다고 애들에게 끌려가서 맞고 괴롭힘 당했던 기억이 역류했다. 소리도 못 내고 부들부들 떨며 울었다. 모양 빠지게. 사람이 없는 곳이라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다 맘에 뭔가 올라왔다. 뭐 해보자. 한다고 죽는 게 아니고 중요한 프로젝트면 나한테 맡겼겠나.
그동안에 이 회사 저 회사 다니면서 낯설지 않은 일을 해 본 적이 없다. 대학 시절 휴학하고 등록금 벌 때 '쇼핑몰'을 만드는 일을 받고는 PHP SQL하나도 모르면서 일단은 돈을 벌어야 하니 소스 어떻게든 구해서 쇼핑카트까지 결국엔 연결시켰던 기억이 났다. 일단은 하자. 하고 나서 관두든지 말든지.
그렇게 해서 내가 썼던 모든 스크립트를 달달 외었다. 그리고 발표시간에 맞춰 혼자 몇 번을 휴대폰 스톱워치를 켜고 맞추고, 심지어 그래도 불안했든지 내 목소리로 스크립트를 녹음해 집에 가서 혼자 한강까지 걸으면서 계속 들었다. 그렇게 하고 나서 부서장에게 한 번 점검을 받았는데 별 말이 없이 그대로 가라 했다. '긴장하지 말라'라고 하더라.
여하튼 제안서를 모두 다 마무리해서 제출하고 결국 운명의 그날 발표장 까지 갔다.
부서장은 바쁜 일로 동행하지 못했고, 나보다 나중에 들어온 차장급 상사와 영업부장과 동행했다.
긴장해서 생수병을 세 병이나 비우고는 프레젠테이션 자리로 갔다.
이상하게도 전까지는 긴장하다가 사람들이 있는 그 자리에서 서니. 이상하게도 그 두려움의 버튼이 저절로 꺼졌다. 그냥 술술 말이 나왔다. 슬쩍슬쩍 스크립트를 보면서 이야기했고, 정말 나도 이해가 안 가는데 그냥 뭐 그들에게 전달하면 될 뿐이라고 마음의 가지가 저절로 가지치기가 됐다. 심지어 시안을 들고 스크립트에는 없는 내가 이해하는 부분을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내가 내가 맞나 싶었다.
내가 발표하는 그 부분만 부분조명이었지 심사위원들이 있는 곳은 어두웠고 얼굴이 밝게 다 보이지 않은 것도 한몫을 했다. 질의응답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처음엔 같이 동행한 차장에게 맡겼는데, 한 부분을 차장이 좀 이상하게 대답해 그 부분은 내가 보완해서 대답하기도 했다.
그때 발표를 마친 직후 '어릴 때 혹시 내가 이런 애였었나'라는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르겠다. 다 끝나고 영업부장이 운전한 차에 들어갔을 때는 몸이 박살날 것 같았고,
입을 떼기도 어려웠다. 두 분께 양해를 귀하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