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아이폰 PT로 PT계의 최고 존엄으로 등극하신 고 스티브 잡스 선생님 [출처 : 전자신문]
2007년 이전엔 PT는 거의 광고회사에서 통하는 문구, 아니면 동네 헬스장에서 퍼스널 트레이닝 정도로 정리가 되었다. PT기간이면 예민 보스가 되고 마이크로 소프트의 모든 프로그램이 바이러스 걸려서 빠그라지길 원했던 지인이 기억난다. 광고회사 AE였다.
그때까지는 MS만 죽이고 싶어 했는데, 2007년 어떤 사건 이후 그는 매킨토시의 '키노트'까지 증오하게 되었다는 슬픈 전설이 있다. 능력있는 사람이라 격무에 몰려서 그랬다는 걸 알고 있었다. (원래 회사는 일 잘하는 놈에겐 일을 더주고, 줄을 잘 타는 사람에겐 떡을 준다. 나도 이런 거 알고 싶지 않았다.)
PT에 PT를 거듭하는 그분이 PT툴을 대하는 그 표정은 마치 젠틸레스키의 유디트 같았다.
2007년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 신제품 설명회 프레젠테이션에서 아이폰은 물론 그의 터틀넥과 청바지 무엇보다 업계 사람들과 그 업계에게 일을 의뢰할 사람들에겐 '키노트'를 선보였다.
무엇보다! 잡스 스타일의 프레젠테이션. 즉 검은 화면의 단순한 글씨. 핵심 아이콘. 그걸 채우는 잡스의 '현실 왜곡장(!)' 소위 뛰어난 언어 구사능력과 설득의 카리스마가 패키지로 구성된다.
터틀넥 따라입고 구라치다 슬프게 된 엘리자베스 홈즈. 출처 : 위키피디아
우리가 생각하는 PT는 퍼스널 트레이닝 빼고는 P(피)가 T(튀) 기게 경쟁하는 경연장을 연상시킨다.
광고나 홍보대행 회사에서 (광고) 주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 마감 몇 주일부터 사람들이 경쟁피티 기간에만 나타난다는 전설의 신기 '도깨비 방망이'에 픽셀 단위로 갈아지기 시작한다.
'일 주세요, 일 주세요. 우리는 이렇게 모든 것을 갈아 넣을 수 있고, 이걸 이만큼이나 잘한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갈렸어요.)' 그리고 몇 분간의 치열한 눈치싸움 심사위원과의 티키타카.
결과는 하늘만이 아신다. 미리 내정된 업체에게 가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정된 업체의 제안이 너무나 영 아니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한 쪽으로 가거나. 혹은 자기 업체가 미리 이야기가 되었는데, 넘사벽으로 확실히 눌러서 예정대로 진행되거나. 아무도 모른다.
그럼 그분들이 모두 스티브 잡스 스타일로 갔을까? 대부분은 아니다. 광고나 서비스 관련 제안서를 저렇게 만들어서 선보였다가는 심사하시는 분들이 '심사'할 거리가 너무나 없어서 어리둥절 하실거다.
아이폰이야. 워낙에 그 물건 자체가 대단하고, 스티브 잡스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고. 키노트의 애니메이션은 눈이 돌아갈 정도로 유려했다.
그때는 애플이 지옥에서 온 미니멀리스트이자 프로 디테일 집착러인 고 스티브 잡스 선생의 다스림 하에 있었던 시절이다. 실제 노트북 광고까지도 뭐 안 넣고 그냥 때깔 좋은 파워맥을 360도 돌리는 걸로 때웠을 정도다. 단순하지만 때깔 나게 이게 그분의 모토였다. 그리고 그걸로 성공을 했으니.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러나 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실무자들의 피, 땀, 눈물이 뿌려졌을지...(나 잠깐 눈물 좀 닦고 오겠다)
무엇보다 저 프레젠테이션은 그냥 프레젠테이션을 넘어 대형 엔터테인먼트 쇼 였다. 스티브 잡스가 리사를 출시했을 당시에 쌓았던 경험들이 오롯이 담겨 조명, 장소, 모든게 완벽하게 세팅 된 상태였다. 그리고
저 프레젠테이션은 경쟁 PT가 아니었다!
이미 아이팟의 성공을 기반으로 새로운 제품을 소개하는 자리엔 심사위원보다는 이미 반할 준비가 된 사람들과 기자단, 평론가들이 모여있었을 것이다. 저 프레젠테이션은 '새 제품을 선보이는 즉 -제품설명회-'에 가깝다.
또한, 실제로 경쟁 PT에 들어가면 의외로 한 페이지에 수많은 정보들이 들어가고 무엇보다 '애니메이션'이 구현되는 경우가 적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차라리 시안 영상이나 자료 영상을 넣었으면 넣었지. PT장소의 시스템 환경이 워낙에 랜덤이라 때론 프로그램 구동이 안 될 수도, 혹은 PDF만 가능할 수도 혹은 특정 폰트가 적용이 안되어 열심히 짜넣은 애니메이션이 다 망가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심사위원들은 의외로 정보값이 적다. 몇 분은 아닐지 모르지만 몇 분은 최소의 정보를 듣고 저 자리에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처음 보는 분도 꽤 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정보를 전달해야 하며 시간제한까지 있다. 장표 한 장 한 장, 일 분 일 초가 아깝다.
모든 PT가 경쟁 PT가 아니다. PT는 열심히 뭔가를 꾸려 남에게 보여준다는 측면에서는 두루두루 통하지만. 그게 전부 뭔가 일을 따내기 위해 제작되지는 않는다.
내가 그 PT회사에서 만든 자료들은 매우 다양했다. 제품 설명, 서비스 설명, 혹은 공공 정책 설명자료나 경쟁 피티였던 '매니페스토 경진대회'자료 등등. 모든 PT가 다 피 튀기는 경쟁피티는 아니었지만. 또 각 PT를 만드는 데는 나름 다른 모습으로 피 튀기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리고 가장 PT의 가장 중요한 목적!
바로 설명하고, 보여주고 나아가 설득하는 것이다! PT는 Presentation의 약자로 그 어디에도 경쟁 즉 Competition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지 않다.
무엇보다, 저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 때문에 수많은 의뢰업체나 기관들이 '스티브 잡스'식으로 해주세요.라고 했을 때. 그게 왜 이번 일에는 적용이 안 되는지 설명하는 것도 일이었다. 같이 일하던 대표님이나 이사님이 그 분야의 통 이라 차분하게 잘 설명해주셨다. 나도 그걸 보고 듣고 배워 잘 써먹었다.
그리고 키노트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매킨토시가 필요한데, 실제로 프레젠테이션을 구현하는 환경은 대부분 Windows 기반이었으니. 말 다했다. 정부 공공기관이면 더 그렇다.
키노트는 매력 있는 도구다. 그러나 키노트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특정한 장소, 시간, 목적이 분명히 있다.
그리고 까만 화면의 하얀 글씨, 아이콘과 사진으로만 간단하게 할 수 있는 프레젠테이션도.
프레센테이션에서 특정한 형식이나 소프트웨어를 고르는 건 그냥 상자를 고르는 거다.
가장 중요한 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 어떤 상자에 무엇을 담느냐인데, 사과를 생선을 담는 보냉 상자에 담을 수 없고. 고기를 그냥 비닐 포장해 상온으로 배달할 수는 없다.
그런 생각을 해봤다.
'역사상 가장 훌륭한 프레젠터는 소크라테스야. 종이에 글씨 하나 안 남기고도 수많은 사람을 깨우치고 설득시켰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