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 당신이 그 프레젠터인가요?

어쩌다 보니 프레젠터 4

by Dolphin knows

그 회사에서 주로 한 작업은 다른 사람이 발표할 내용을 만들어 주는 일이었다. 가끔 영상 콘티도 하고 그전에 해왔던 대로 카피라이팅까지 함께 하긴 했는데 '대행'의 느낌이 강했다.

보통 큰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는 실제 발표할 분은 대외적으로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분일 경우가 많아서, 그 부서에 있는 실무자들과 주로 미팅을 했다.

그분들을 만나서 요구사항과 유의사항을 듣고 그분이 주는 초기 자료를 바탕으로 얼개를 구성하고 개념화시키고 디자인 바로 전 단계까지 그분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그리고 그분들이 윗 분들에게 설명하기 쉽게 만들기 위해서는 장표를 그리는 것 말고도, 장표를 설명하기 위한 나만의 내부적 원고가 필요했다.

사실 이 상태가 꽤 맘에 들었다. 다양한 정치/경제/문화/과학/사회 자료들을 접할 수 있고 그걸 쪼고 묶어서 뭔가 자료를 만들면서도 나는 철저하게 감춰져서 안전한 느낌이었다.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면 갈 데는 무한대로 많지만 불러주는 데가 없다. 불러주더라도 도저히 이게 뭐지 싶은 곳들이 많다. 졸업하고 얻은 능력치가 그나마 글을 쓸줄 안다는 건데. 뭐 요새 한글 모르는 사람이 있나? 그리고 잘쓰고 못쓰는 거는 정성적 평가는 가능하지만 정량적 평가가 힘들다.

문예창작학과 수업은 얼마 간의 이론수업을 빼면 거의 창작과 합평으로 이뤄져 있다. 글을 한 번 썼다 하면 40명에게 4년 내내 합평회로 레프트 훅 라이트 훅 쨉 원투 맞는 거다. 아 항상 필살의 일격은 교수님이 하신다. 불어난 건 맷집, 줄어든 건 자신감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졸업하고 나니 '나는 세상에서 제일 글을 못 쓰는 쓰레기'가 돼있고, 하필 '이 시국'에 문송을 넘어 예송까지 해버리는 터라. 일단은 어디고 들어가고 보자였다.

멘델스존처럼 아예 은행가의 아들이라면 모를까. 오래전 사혼의 구슬 조각처럼 오조 오억개로 조각나 세상에 흩어진 글에 대한 열정이나 자존감을 찾아올 시간과 여유가 없었다. 나는 서민 집안의 딸이었기에 더욱 일단은 나의 생활비와 집에 보탤 돈이 필요했고, 다행히도 학교 때 이툴 저 툴을 배워와서 그런지 출판사에 편집 디자이너(!)로 취업을 해버린다.

그 일을 몇 년 정도 한 뒤 카피라이터를 오래 했을 땐, 그저 투잡으로 편한 일 정도였는데.

그 PT 회사에 와서는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그때까진 디자인 툴에만 감사했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내 전공에게 감사할 일이 생겼다.

일을 주는 곳에서 '스크립트' 즉 '발표 원고'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에... 뭐냐... 그러니까.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뫄뫄 프로젝트의 제안을 하게 된 뫄뫄 소속 뫄뫄입니다.


한 단락을 열 단락으로 늘리고 열 단락을 한 단락으로 줄이는 것. 그게 대부분 이 문예밀레가 해왔던 작업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소설과 희곡을 쓰고 쓴 만큼 두들겨 맞으면서 이 정도는 괜찮겠다 싶은 '말'의 감이 있었다.


장표를 만들고 기획하는 것보다는 수정하는 것이 적어서. 이 일은 그리 애쓰지 않고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가끔 만들고는 혼자 주절주절 읽어보곤 했다. 각 장표에 맞게 시간에 맞게. 등등.

하지만 궁금했다. 이 분들은 현장에서 과연 어떻게 하실까?


그러나 곧 내겐 이 발표하시는 당사자, 심지어 발표를 전문으로 하시는 분들, 즉 프레젠터(발표자)를 만날 기회가 생긴다.


당시 대표님은 대한프레젠테이션 협회 이사를 역임하고 계셨고, 프레젠터 협회와도 관계가 깊으셨다. 그래서 한 번은 우리 회사에 그 프레젠터 협회 관계자 분들이 오셨다.


세상에 눈부셔라. 뭐지 이 광채 나는 분들은?

카라바조 '다메섹 도상에서의 회심'

용모 단정, 뭐 입고 다니시는 것도 화려하진 않지만 단아하고 고급스럽고. 세상 잘난 사람들은 다 프레젠터 같았다. 정말 '프레젠터'만 전문으로 하시고 아나운서 출신, 성우, 스피치 강사 출신, 심지어 연예인 MC 출신도 있으셨다. 실제로 대표님께서는 한 아나운서 출신 여성 프레젠터와 함께 이야기할 기회를 주셨는데(지금도 여러 가지에 감사하는데, 이 대표님은 직원에게 배울 기회를 다양하게 열어주셨다), 와 설렐 정도였다. 떨리더라.

그리고 나의 웅앵대는 그때도 역시 아재 같았던 말투와는 차원이 달랐다.

표정 하며, 뭐 특히 리액션 부분이 대단했다. 어떤 남자분과는 거래처 미팅 때 협업으로 같이 들어갔는데, 자료 파악이 매우 빠르셨다. 그리고 옷차림이 정말 TPO를 제대로 지키고 계셨다.


그 전에 난 프레젠터 라고 하면 웅변 식으로 말을 잘하시는 분들을 생각했는데, 내가 만난 그 분과 또 다른 분도 일단은 굿 리스너, 잘 듣는 분이었다.


지금에야 이해가 된다. 프레젠터가 발표할 자료를 파악하려면 기획자처럼 로 데이터(raw data) 분석보단, 다 만들어진 자료를 토대로 담당자가 설명해주는 것을 듣고 이해해야 한다. 그 일을 파악하고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다.
나는 그분들이 열심히 훈련해서 획득한
그 '말하기 위해 듣는 능력'에 대해
지금도 감탄하고 있다.


이런 전문 프레젠터 같은 경우는 제안보다는 설명 쪽의 PT에서 많이 활약한다고 알고 있다.

각 PT마다 선호하는 프레젠터의 스타일이 좀 다르다. 실제 제안 같은 경우는 실무자를 원하기 때문에 좀 거칠더라도 이 사람이 실제로 이 사업을 제대로 이해하고 투입될 사람이냐가 중요해. 경쟁 PT, 특히 국책사업의 경우는 실제 그 프로젝트를 끝까지 마무리할 PM이 발표자여야 한다는 규정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부분은 기획자다. 거기에 프레젠터적인 역량이 플러스가 되면 화룡점정이고.

그러나 사업을 제대로 홍보하고 설명하기 위해서는 발성이나 모든 것이 잘 갖춰진 전문 프레젠터가 필요하다. 당시 내가 만난 분들이 바로 그 프레젠터다.


남 앞에서 말을 하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되도록 피하고 싶어 하는 일일 거다. 나 같은 경우 뭐 아무 의도 없이 아는 건 알고 모르는 건 모른다 손들었다가 후 두려 맞았으니 더욱 그랬다.

그 대단한 분들이 하시는 걸 나중에 내가 덜덜 떨면서 하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하긴, 알면 내가 사람이겠냐.


되면 한다가 그때도 그렇고 지금의 내 인생 모토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