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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통대는 이런 곳이다.

통대가 궁금한 분들에게

  그래도 통대 들어갔으니 누구나 하는 오리엔테이션 경험과 통대 슬기로운 생활 팁 정도는 올려야 통대 진로를 생각하는 분들, 혹은 통대를 다니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거 같아 올린다.


내가 입학한 2022년은 코로나 위기 상황에 줌으로 대학원 오리엔테이션을 하게 되었고, 그래도 나름 학교 수업에 임하는 자세와 팁을 얻을 수 있었다. (코로나는 정부에서 재택근무 및 수업을 진행하게 한 강제령이라 학기 중간까지 전교생은 전 과목을 줌으로 수강했다. 중간고사 또한 줌으로 시험을 친 것은 물론이다.)



오리엔테이션을 하면서 우리 학교를 졸업하고 현직에서 훌륭하게 임무 수행을 하고 계시는 선배들의 인사 영상들을 볼 수 있었는데 다양한 직종과 분야에서 뛰고 계시는 학교 선배님들을 뵈니 가슴 한편이 뿌듯함으로 가득 찼다. 나도 언젠가는 그들과 같이 현역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을까?라고 이때까지만도 스스로를 의심하면서 첫 학기를 지냈던 것 같다. 글을 다시 쓰는 지금은 되돌아보는 시점에서 덜덜 떨며 불안해하던 나 자신에 헛웃음이 나오긴 한다.


 통대는 들어가기만 한다고 절반은 된 것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고 한다. 입학보다 졸업이 훨씬 어렵다고 하는 통대기에 중도에 그만두는 사람도 허다하다. 기대보다 어쩌면 부담과 두려움이 더욱 커지는 듯한 그런 장소이나 모두의 꿈과 열정이 모여 만들어진 곳이 바로 통번역 대학원이다.  


 1차, 2차 시험 면접장에서 보았던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몇 배수씩 걸러낸다. 학기 중에 한 교수님이 말씀하시길, 어차피 이 사람은 들어와도 과정을 쫓아올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 떨어트린다고 하셨다. 경험담으로 우연히 한 사람을 두 번이나 불합격시키셨는데, 운명의 장난인지 그 사람을 세 번째 면접실에서 만나게 되어, 다른 면접관에게 보내셨다고 하셨다. 세 번째로 불합격시킨 원인 제공자로 남고 싶진 않으셨다고. 하지만 본인이 실력이 있다면 4개의 지문 중 단 한 개만 잘해도 교수님들은 알아채고 뽑아주실 것이다.


  그리하여 거두절미하고 여러 교수님들과 선배들의 지혜와 내 생각을 얹어서 통대생활에 필요한 팁 등을 적어보고자 한다.

 

 1. 이력서 항시 준비

 학생 때부터 통번역 대학원생은 실습을 나가기 때문에 이력서는 항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현장 경험 없이 실전에서 바로 뛰는 운동선수가 없듯이 통역사도 직접 피부로 느끼고 몸으로 배우는 공부도 너무 중요한 공부이다. 책으로만 배우다가 현장에서 얼어버리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현장 실습은 필요한 과정이라고 본다.


 2. 배경지식 함유

 입만 가지고 가는 통역은 제일 준비가 안 된 통역이라는 데에 모두 공감할 것이다. 입만 가지고 간다는 뜻은 바로 출발어 또는 도착어로 단순히 의사소통만 가능한 경우를 일컫는다. 통역은 전문지식을 가진 각 계층에 전문가들의 지식을 다른 언어로 바꾸어서 전달하는 일이니 통역을 하는 분야의 배경지식을 미리 공부하고 숙달해야 연사의 의도를 이해하고 머리로 정돈하여 나의 입으로 재 생산해 낼 수 있다. 잘못 이해하여 전혀 다른 내용을 옮겨 대형 사고가 되거나, 회사에 손실을 입히게 되는 일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3. 깔끔한 복장과 신뢰를 주는 자세

 통번역사의 숙명이겠지만 의뢰인의 의뢰를 받아서 업무를 수행하고 그 대가를 비용으로 청구하는 서비스직에 투입되는 상황과 더불어, 통역이 필요한 상황은 대개 비즈니스 세팅이고 국가적, 외교, 정치적 Affair 인 경우가 많기에, 통번역사는 의사전달자로서 언제나 프로페셔널한 인상을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옷매무새가 단정, 깔끔해야 하고, 말투와 태도에서 보이는 성실과 책임감은 빼놓으면 안 되는 소중한 무기가 될 것이다. 공부하는 내내 책상에만 앉아 있다 보면 몸도 처지고 살도 오르고 둔해질 테니 공부하는 틈틈이 운동은 꼭 해야겠다.  


4. 스터디, 스터디, 스터디

입시 기간에도 통대 입시생들은 모두 하루에도 여러 개의 스터디를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최대한 많이 말을 하고 연습하는 훈련을 하는데, 통대에 들어와서도 어김없이 스터디는 너무 중요하다고 모두가 강조하고 있다. 실력이 좋아도 학기 내내 스터디를 열심히 안 하면 실력이 떨어졌고, 처음엔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스터디를 열심히 하고 실력이 확 좋아진 학생들을 교수님들께서 많이 보셨다고 꾸준히 스터디를 하루도 빼먹지 말고 하라고 하셨다. 혹, 시간이 안되었다면 스터디 메이트에게 자료라도 받아서 혼자 스터디를 하고 자는 열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5. 근자감 장착

 자만심이 아니라 근거 없는 자신감이다. 학과장님께서는 하버드 학교의 실험과 에디슨과 아인슈타인을 예시로 드시면서, 자신감이 실제로 실력을 더 나아지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귀중한 말씀으로 잔뜩 긴장한 학생들의 마음을 열어주셨다. 나를 믿는 마음.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동시통역 임무 수행을 위해서라도 자신감 탑재는 필수이다.



 대개는 학기 초반에 모든 교수님들이 동일하게 전달하는 메시지를 아우르는 내용이기도 하다. 직접 경험해 본 결과, 대부분 맞는 말이었으나 다만 스터디에 있어서는 개인차가 있기에 나에게 가장 맞는 방법을 선택하면 될 것 같다는 소견을 내어본다.  


내가 생각하는 스터디는 나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함께 친분을 맺는 자리라기보다 상대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실력 평가를 하고 지적을 하는 관계이기에 다소 민감하며 쉽게 갈등이 발생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지적을 했는데 상대가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상대가 지적을 했는데 내가 동의할 수 없다면 분위기가 엄해지는 것은 다반사이다. 특히, 실력의 편차가 크다면 그 거리감은 더욱 커질 것이다.  


내 경험상, 실력의 편차가 무엇보다 주된 문제의 근원이다. 문제는 나도 상대도 그 편차를 정의 내릴 수 없다는 데 있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실력을 내가 혹은 상대가 단편만 보고 저울질하는 것에 얼마나 감정이 상하겠는가? 현실에서도 타인이 나의 영어 실력을 평가하면 기분이 상하는데, 통대를 들어오면 그 일을 매일 겪어야 한다. 사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들어온 학우라도 크리틱은 힘들 겠지만, 나처럼 사회나와 20년 가까이 영어에 올인해 온 사람은 솔직히 심리적으로 더 힘들긴 한 거 같다. 그래도 어쩌랴, 받아들여야지. 출산 전까지만 해도 팽팽 돌아가는 두뇌 덕에 기억력, 사고력 등은 자신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기계가 어느 한 곳이 잘못되면 전체 기능을 상실하는 것처럼 아쉽게도 내 몸과 마음도 통대 입학 당시, 출산과 동시에 고장 나 있었다.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온몸과 삶의 리듬이.


  그럼 통대가 뭐하는 곳인가?  


 모든 교수님은 각자 다른 교수법으로 최대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전수해 주려 하셨던 것 같다. Chat GPT가 생기기 이전인 당시는 그래도 각자의 실력이 번역으로 잘 드러나던 때였다. 우리 한영 번역 교수님은 매주 모두의 과제번역을 공유 드라이브에 올리라 하셨는데, 서로 보면서 배우라 하신 의도를 엿볼 수 있었다. 통대에서는  개인의 번역을 불러와, 스크린에 올려서 교수님들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검수를 해 주시기 때문에 내 번역이 걸리면 밤에 잘 때 이불킥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통역도 마찬가지로 출발어(ST)인 영어나 한국어로 된 연설문이나 매우 어렵고 난해한 대화체 전문을 3-4분가량 들려주시면 그걸 다 기억하거나 노트 필기를 하며 받아 적다가 한 명의 이름을 불러 도착어(TT)로 내용을 옮겨보라고 하신다. 바로 원하지 않는 때에, 나라는 자신이 모두 앞에서 발가벗겨진 채 모욕당하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랄까? 어느 정도라도 알아들으면 다행히지만, 완전히 다른 내용을 말하게 되면, 모두가 말하지 않아도 나부터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어 진다.


전해 듣기론, 옛날부터 통대는 크리틱 시간이 가장 두려운 시간이라고들 한다. 동기들의 크리틱도 그렇지만 교수님들의 크리틱은 정말 따갑고 날카로워 깊이 상처로 남기도 했다고 한다. 수업시간에 울거나 토를 하거나 정신적, 심리적 트라우마가 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학업을 그만두는 학우들도 있다 하니 역시 통대는 쉬운 곳이 아니다.


하지만, 모두가 공감하는 두려움과 동질감에 편승하여 자신을 합리화시키면 결코 통역의 중압감을 이길 수 없게 된다. 정말 두려운 것은 수업이 아니라, 실제로 업무에 투입되었을 때이다. 적게는 한 공간에 10-20명, 많게는 수백, 수천 명이 그리고 공중파라면 금방 수천이 아닌 수만, 수십만이 되는 통역을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 본연의 영어 실력은 그 중압감에 압도당하면 발휘를 하지 못한다.



현장에 투입되었을 때, 통대를 다니지 않았던 분이 갑자기 기자 회견이나 회의 통역을 요청받으면, 말 잘하던 그분들도 갑자기 말을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몇 마디 못하고 서둘러 말문을 닫는 모습을 목도하곤 했다. 그래서 통역을 제대로 하고 싶다면 나는 통대를 들어오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통번역대학원은 통역 및 번역 기술을 가르쳐 주는 곳이고 기술을 마스터함으로써 우리는 쓸모 있는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니까.  


이 말은 쓰지 말까 고민많이 했다. 비통대생도 통대생만큼 잘하는 분들 너무 많다는 말씀을 하시는 걸 내 귀로 들은 적이 있다. 한 에이전시 대표님이셨는데 그렇게 자신 하시면서 나 대신 미국권 거주를 오래 한 비통대생분을 회의 통역에 보내셨다가 통역 당일 딱 한시간만에 나한테 도와달라고 전화를 하셔서 바로 그 회의장으로 다음날부터 계속 출근했다. 현장에 가니 전날 함께 상대 통역을 맡으셨던  통역사분이 계셨는데 '어제 그 분은 통역사가 아니셨어요. 통역이 뭔지도 모르고 한 마디도 못하다가 멀뚱멀뚱 앉아만 있다가 가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럼 통역사의 진의를 가릴 판단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관련해서 더 심화된 내용으로 다뤄보고 싶어서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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