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4. 첫 실습에서 받은 스카우트 제의

20년의 땀과 노력이 증명한 통역 실습

나는 통번역 전문대학원생이다.

 우리 학교는 타 학교와 다른 문화가 있다. 바로 실습을 내보낸다. 다른 학교는 그냥 공부만 하지만, 우리는 학기 내내 실습이 들어오면 순서대로 나가야 한다.

 


실습을 나가는 것이 부담도 되겠지만 현장 실습을 나가는 것과 나가지 않는 것은 너무 큰 차이이다. 다른 학교는 학생에겐 일을 할 기회가 잘 없다.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업계라서이다. 그래도 정말 실력이 좋으면 교수님이 학생에게 일을 주시기도 한다. 그러니 정말 잘해야 일을 나가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 학교는 실습이라는 명목으로 학생에게 통역의 기회를 주시니 어찌 보면 감사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학교에서 일을 다 주신다 해도. 모두가 실습을 나갈 기회를 얻는것도 아니며, 실습을 나가는 횟수도 다 다르다. 실제로 한 학기가 끝나가지만 한 번도 못 나간 학생들이 있다. 에이전시에서 이런 이유로, 저런 이유로 통역 요청이 갑자기 취소되거나, 남자보다 여자를 고객이 원한다는 요청도 있었다고 한다.

 

나 또한 앞서 여자를 원한다는 에이전시의 요청으로 캔슬된 남학생 덕분에 운(?)으로 일을 받아서 4일의 실습을 나갔고, 고객은 매우 까다롭게 내 통역을 살폈다. 이탈리아 분이셨는데 3개의 언어를 구사하셨고, 영어를 굉장히 잘하셨다. 이탈리아에서 큰 회사의 대표 중 한 명으로, 한국에는 사업 확장과 파트너 유치를 위해 오셨다. 시종일관 매의 눈으로 날 살피셨고, 회의나 미팅이 끝나면 매번 나에게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정리해서 알려달라 하셨고 내가 한 문장씩 정리하여 불러들이면 바로 옆에서 본인이 직접 상담일지를 받아 적으셨다.

 

통역을 하며 내가 허투루 들었거나, 내용 이해가 미숙한지 알아보신 것이다. 하지만 만족하셨는지 셋째 날부터는 상담일지 작성을 하지 않으셨고, 굉장히 많은 미팅을 함께 했다. 수출 전시회에서 이례적인 일이다. 한 업체는 현장에 회사 대표님과 중역들이 직접 나오셔서 즉석 미팅을 하기도 했다. 그 회사에서 처음엔 현장 직원과 간단한 미팅이었는데 2차 책임자 미팅에 이어 3차로 대표님이 직접 오신 것이었다. 나와 함께 한 미팅의 결과들이 다 좋아서 그런지 바로 이탈리아 대표님께 즉석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것은 물론, 주최사인 이탈리아 무역협회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다.

그리고 이탈리아 무역협회 대표님께서 혹시 다음에도 통역을 개인적으로 요청해도 되냐는 제안을 받았으나 우리 통대로 직접 연락을 주시라고 말씀을 드렸다. 학교에 재능있는 인재들이 많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스카우트에 대해서는 졸업이 많이 남았기에 물론 거절했음에도 아쉬움이 많이 남았었다. 당시 4일간 나의 고객이셨던 이탈리어 배송 패키지 제조 기업의 대표이신 Valerino 씨는 지금도 나의 링크드인의 1촌이시고, 현재도 내 글에 좋아요와 추천을 남겨주시는 분이다.

 

고객은 굳이 요청하지 않았지만 실습 마지막 날에 손수 나의 사진도 찍어주셔서 학교의 실습 홈페이지에 이 사진이 올라갔고, 앞으로 한국에 오면 널 자주 만날 거 같다며 일이 맘에 드신다는 사인을 주셨다. 경력 단절을 딛고 합격한 늦깎이 통대생인 나에게는 감격스러운 칭찬이었다.

 

일이 다 끝나고 나서 에이전시에서도 늦은 저녁에 감사의 문자가 온 건 말할 것도 없었고, 학교 학과장님과 다른 교수님도 공개적으로 나를 칭찬하셨고 ( 이 일이 동기들의 질투를 샀던 것 같고, 몇몇 동기들은 도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교수님들이 이렇게 칭찬을 하냐고 물어보았다.) 학교 홈페이지에도 내 실습의 성과가 이름과 사진이 함께 걸렸는데 마치 성공의 훈장이 걸린 것 마냥 기뻤다. 많이 더 배우고 공부해야 하지만 이런 칭찬을 받으니 얼떨떨하고 일에 열정이 더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

 

이십 년 세월. 열심히만 하는 건 도움이 안 된다며 주변에서 적당히 하라는 말도 들었었다. 그래도 나는 멈출 수는 없었다. 남보다 더 노력해야 남들만큼 할 수 있고, 남들이 서 있는 그 자리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연예계에 입문하고 미술로 발을 돌리는 등 예체능을 고등학교 시절 내내 하면서 남들과 출발이 좀 달랐기에. 그래서 잠을 줄여가며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노력하며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속상했던 순간도 많았는데 이번 실습으로 그 긴 설움이 한 번에 보상받은 느낌이었다.

 

  그 뒤로 계속해서 일을 할 기회가 이어졌다. 아직 학생이지만 곧바로 9월과 10월에도 통역 일이 스케줄 표에 잡혀있었다. 그런데 이 일들은 학교에서 잡아준 일이 아니라, 내가 직접 에이전시로부터 따내거나 기업의 통역 테스트를 합격하여 따 낸 일들이다. 첫 스타트를 잘 끊은 느낌이랄까. 그 뒤로 비성수기를 제외하곤 성수기면 계속 일이 끊임없이 들어왔고, 어쩌면 앞으로의 프리랜서 인생에 긍정적 신호가 아닐까 기대해 본다. 실감이 안 나지만 주어진 일을 늘 최선을 다해서 완수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앞으로 기록할 그간의 통역 현장에서의 경험과 통대 생활에 대하여 계속 적어보려 한다.

 

누군가 혹시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싶은 이들에게

방향을 가르쳐 줄 성능 좋은 나침반이 되고 싶은

통번역사로서



  #통번역대학원 #통대생 #통번역 #통역실습 #통역사 #기업통역 #통대기억 #통대경험

이전 03화 3. 통대는 이런 곳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