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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통역업계의 속성을 이해하기

모든 통대생의 꿈 '프리에 입성하기'

통대 첫 수업기간 여러 담당 교수님들께서 현장 사례를 공유해 주셨다. 대부분 우리를 공포에 떨게 만들 사례들이었다. 가뜩이나 통역을 담당하는 업무 자체가 두려운 일이거늘, 거기에 통역을 실패한 이들이 보던 쓴맛을 상세히 설명해 주시면서 더욱 겁에 질리게 하셨다. 하지만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에서 말씀하시면서 역시 우리가 실패하지 않길 바라는 속내를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업계의 냉정함도 동시에 보여주시려 하셨다. 통역사는 갑도 을도 아니며, 심지어 정의 위치도 아니다.


통대도 전문대학원이니 변호사, 의사처럼 통역사도 전문지식인으로 사회에서 존중받고 대우가 다를 줄 알고 문을 두드리는 신입생이 계시다면 이 사실에 발을 돌리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현실을 그대로 말하면, 통역사는 현장에서 의사, 회계사 등처럼 전문 지식이 있는 전문가로 존중을 받지 못한다. 이것이 사실이다.


사실, 전문지식은 현장 인력들이 제일 많이 가지고 있다. 통역사는 언어를 잘 아는 사람들이지 각 업계의 전문지식을 습득한 사람들이 아니다. 미팅에서 현장지식이 제일 부족한 사람이 통역사라는 말도 있다. 그래서 업계분들은 통역사를 고용하면서도 늘 통역사가 뭐라고 옮기는지를 늘 검토할 사람을 현장에 투입시킨다. 이 상황에서 영어를 통역하는 통역사가 가장 위태롭다. 이유는 바로, 희귀어인 베트남어, 아랍어, 힌디어뿐 아니라 프랑스어, 포르투갈어만 돼도 현장에 동일 언어를 할 수 있는 실력가가 있는 경우는 드물고 또 그분들이 bilingual인 확률도 희박하다. 하지만 영어는 세계 공용어이고 한국인들 중에 리스닝이 부족한 분들은 업계에서 실무를 맡진 못하니까 영어- 한국어 통역사가 못하면 금방 들통이 난다.


생활 Dialogue (대화)는 누구나 문제없이 출발어에서 도착어로 옮기겠지만 전문지식을 그것도 각 상황이 가진 미묘한 분위기를 읽어가면서 통역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것이다. 전문 지식도 지식이지만 흐름을 읽는 행위는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최소 20년, 게다가 10년의 시집 눈치를 견뎌낸 사회생활 고단수인 노장들이나 가능하지 않을까. 사회 초년생 분들에게 미안하지만 연륜이란 것은 책상에 엉덩이를 오래 붙이고 앉아있었다고 쌓이는 것이 결코 아니다.


통대생들이 입학하면서 가장 흔히들 하는 착각이 입학만 하면 성공가도로 입성했다고 생각하는 점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결코 통대 입학은 성공으로 가는 티켓이 아니다. 나도 처음 입학할 때만큼은 잠시나마 착각했으나 금방 환상에서 깨어났다. 다른 전문 대학원처럼 공부는 자신 있는 사람이 막상 현장에 투입되면 적성이 맞지 않아 오랜 학업의 과정을 마친 뒤에도 어쩔수없이 포기하고 진로를 변경하기도 하니까. 통대 졸업 후에도 회사에 입사해서 보통 회사원처럼 살아가는 통역사들도 적지 않다 한다. 그만큼 통역 프리랜서로 먹고살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심지어 업계에서도 넘쳐나는 통역사들 중에 옥석을 가려내길 바라지만, 단순히 학교 네임 밸류만 가지고 통역사의 실력이 반영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학교 입시 시험은 뻔하고, 입시 공부만 최대 3년씩 하면 누구나 입시 시험 기계가 되어 달달 외운 실력으로 합격의 메달을 달기 때문에 진짜 실력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내가 만난 최고의 네임밸류를 가진 대학의 졸업생들의 실력이 언제나 최고라고 할 수 없음을 통역사들보다 일을 맡긴 고객분들이 제일 먼저 알고 있다. 단지, 그들에겐 타 대학생들보다 더 많은 기회들이 주어졌을 뿐이다. 하지만 결과에 따른 책임은 오로지 고객의 몫이 되어버리겠지.


 사람들은 불안해서 안정적인 선택을 한다.  


업계는 그동안 통역사가 투입되어야 진행되는 일이 수십 년 간 있어왔다. 그 사이에 정말 많은 통역사들을 겪어온 그들은 상당히 많은 경험들을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실제로 나 또한 현장에 나가기 앞서 고객이 사전 미팅을 잡아서 실력 테스트를 하곤 했다. 현장에서 통역을 하고 있는 중에 나에게 통역사 고용에 대한 고충을 상담하신 분들도 더러 있으셨다. 통역사는 고용만 되면 이력이 쌓인다고 생각하며 좋아하지만, 고객은 수십 장의 통역사 이력서를 검토하는 과정부터 미팅이 완전히 종료될 때까지 안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내 말을 상대가 들을 수 있는 메시지는 언제나 통역사의 목소리로만 전달이 되기 때문에 공증된 실력이 아닌이상 불안하겠지. 중대한 사안만을 다루기 위해 통역사까지 대동하는 미팅들이 대부분인데다가 통역사 고용 비용이 상당하다. 사소한 미팅정도라면 기업이나 기관에도 소화할 수 있는 영어 실력자들은 포진하고 있다.


회사 또는 나라의 사활이 걸린 중대한 회의를 결정짓는 자리의 통역사를 뽑는 결정은 불안을 가중시킬 것이다. 통역이 회의 실패의 원인이 된다면 그 사람을 고용한 책임자 문책도 피해갈 수 없기에 그들은 이력서의 학교 네임밸류를 보고 안정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 의례 관행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 중대한 미팅에서 제일 노련하고 빠릿빠릿하면서 경험까지 있는 실력자 찾는 일을 그저 출신 학교 네임밸류로만 결정할 수 없을 것이다. 진짜 옥석을 가려야 한다. 나도 입시를 조금이라도 했다면 전기대에 충분히 붙었을지 모르지만, 나이도 많은데 육아까지 하면서 입시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첫 번째이고, 어떤 학교를 졸업했더라도 결국 이 바닥은 실력이 깡패라는 진리를 믿었던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통역사는 오로지 개인의 역량이 전부이다. 고객께서는 반드시 출신 배경이 아닌 실력위주의 통번역사를 고용하시기를 추천드린다. 과거부터 오랫동안 업계에서 없어지지 않는 진리가 있다고 한다면 이 바닥은 무조건 실력이 깡패라는 말이다. 그리고 바로 이 네임밸류. 나는 내가 다닌 학교에 대하여 말하고 싶다. 내가 입학한 서울외대 통대는 학과장님과 유수의 실력있으신 업계 선배님들을 필두로 오로지 통 번역만을 위하여 설립된 특수 목적 기관이었고 창립이 가장 늦었지만 가장 빨리 주류로 자리 잡은 기관이다. 기관의 실력은 보증된 것이다. 그리고 현장에서 선배들의 선전 덕택에 점점 긍정적 평가가 뒤따르면서 주목받고 있는 통대로 자리 잡았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예전에 선문대 통대 졸업생들도 실력 있으신 분들이 업계의 주류로 활동하셨던 기억이 난다. 요약하면, 학교 네임밸류로 통역사 개인의 실력이 반영되지 않음을 이해하고 있다면, 업계에서도 실패의 확률을 줄일 수 있다고 말씀드리겠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진실.


 에이전시도 그들만의 속사정이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 계속 이야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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