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메시지 긴 위로
그 여자는 한국에서의 삶에 적응하는 데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했다. 미국에서는 단순히 교사로만 지내면 되었는데, 한국에서 맡게 된 싱가포르 국제학교 교장직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아침 일찍 학교에 나와 하루 일정을 점검하고, 제일 늦게 퇴근해 주말까지 업무를 이어가는 하루하루. 학부모들의 기대치는 하늘을 찔렀고, 교사들과의 갈등 조율, 예산 관리, 교육과정 개편까지 모든 결정이 그녀의 몫이었다.
“교장선생님, 우리 아이가 잘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은데요.”
“이번 달 운영비가 예상보다 초과되었습니다.”
“새로 온 원어민 교사와 기존 교사들 사이에 문제가…”
끝없이 밀려오는 현안들 앞에서, 그녀는 종종 미국에서의 평온했던 시절을 그리워했다. 어떤 날은 집에 돌아와 침대에 쓰러지듯 누우며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하고 후회하기도 했다.
그 치열한 나날 속에서도, 가끔씩 이어진 미국의 그 남자와의 연락은 그녀를 웃게 했다.
“오늘도 고생 많았어요.”
“몸 챙기면서 해요.”
짧은 메시지 한 줄만으로도 미국에서 함께했던 시간들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함께 걸었던 공원의 가을 단풍, 교회 셀모임에서 나누던 작은 농담, 커피숍에서의 조용한 대화. 그 기억들은 바쁜 일상 속에서 작은 위로가 되어, 힘든 하루를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문득 떠올렸다. 어느 날 그 남자가 진로를 고민하며 자신에게 물어왔던 순간을.
“어떤 전공이 좋을까요?”
스포츠를 좋아하고,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던 그 남자.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체육 교사를 추천했었다.
“방학이 있어서 여행도 가능하고, 너한테 정말 잘 어울릴 거야.”
솔직히 말하면, 혹시라도 방학이 겹친다면 함께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도 품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핸드폰이 울렸다. 시차를 계산해 보니 그에게는 새벽일 터였다.
“여보세요?”
“누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사고가 났어.”
“어디 다쳤어? 병원은 갔어? 지금 어디야?”
걱정되는 마음에 말이 빨라졌다.
“몸은 괜찮아. 다친 데는 없어. 그런데…”
“그런데 뭐?”
“… 사고 순간에 누나가 생각났어.”
휴대폰을 쥔 손이 떨렸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걱정인지, 안도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온몸을 휩쓸었다.
‘내가 그에게 그렇게 큰 의미였던 걸까?’
죽을지도 모르는 순간에 자신을 떠올렸다는 그의 말은, 예상치 못한 설렘과 함께 가슴을 두드렸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도 잠이 오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 그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미국에서 함께했던 시간들이 더욱 선명하게 떠올랐고, 그 남자가 단순한 동생 이상의 존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방학을 며칠 앞둔 어느 날, 그녀는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열흘 정도 미국에 갈 거야. 꼭 만나자. 시간이 된다면 여행도 함께 하고.”
메시지를 보내는 손끝에 미묘한 설렘이 깃들었다. 전송 버튼을 누른 뒤에도 한참 동안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며 그의 답장을 기다렸다.
다시 만날 날을 세어가며, 그녀의 가슴은 오랜만에 두근거렸다.
이번에는 정말로, 못다 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을까.
그리고 혹시… 이 마음을 확인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