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림 끝에 이어진 인연

가까워졌다가도 엇갈리는 우리

by Hannah

공항에서 다시 마주한 순간은 어색하지 않았다. 거의 1년 만의 재회였지만, 긴 헤어짐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익숙하고 반가웠다. 오랜만에 다시 오게 된 미국, 그가 “이번 여행은 내가 라이드도 해주고 보디가드도 되어줄게”라며 함께 동행을 자청했다. 그렇게 우리의 두 번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뉴욕 – 재회의 설렘

브로드웨이에서 함께 보았던 레미제라블 뮤지컬, 맨해튼의 흑인 합창단이 이끌던 가스펠 공연, 그리고 타임스퀘어의 눈부신 불빛.
브루클린브리지를 걸으며 마주한 노을, 센트럴파크에서 잠시 쉬던 평온한 오후까지… 뉴욕은 우리에게 하나의 거대한 무대였다.

오랜만의 만남이었지만 대화는 낯설지 않았고, 하루하루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길을 잃고 다시 찾는 순간마다 웃음이 터져 나왔고, 그의 곁은 점점 더 든든하게 느껴졌다. 돌아오는 길에 내가 다니던 대학 캠퍼스를 함께 걷고, 자주 가던 햄버거집에서 식사를 나누며, 철없던 동생 같던 그는 어느새 한결 남자다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 짧은 만남 뒤에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애틀 – 가족의 그림자

그다음 만남은 1년 뒤였다. 엄마와 함께 알래스카 크루즈를 다녀오고 돌아오는 길, 우리는 시애틀에 들르게 되었고, 이번에도 그는 시간을 내어 우리와 동행했다.

이미 번듯한 직장에서 자리를 잡고 바쁘게 지내던 그는, 휴가를 내어 조심스럽게 “함께 해도 괜찮을까?”라고 물어왔다. 엄마와 나는 두 팔 벌려 환영했다. 그는 든든한 보디가드이자, 묵묵히 짐을 들어주고 섬세하게 우리를 챙기는 너무 다정한 여행 파트너였으니까.

회색빛 하늘과 잦은 비, 도시 곳곳에서 풍겨오는 커피 향 속에서 우리의 여행은 한층 차분했다. 그는 식당을 고르고,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며 한결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곁에서 나는 의외의 따뜻함을 발견했고, 엄마는 훗날 이렇게 고백했다.
“그때, 이 남자가 우리 사위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네가 부담될까 싶어 말하지 않았지.”

시애틀에서의 시간은 단순한 여행을 넘어, 작은 가족의 그림자를 우리 앞에 그려주었다. 하지만 다시 우리는 각자의 도시로 돌아가야 했다.


마지막 뉴욕과 메릴랜드 – 고백의 계절

마지막 여행지는 다시 찾은 뉴욕, 그리고 메릴랜드였다. 이번에는 모든 걸 그가 준비했다.
직장에서 매니저로 성장한 그는 자신감과 성숙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소년 같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든든한 남자의 기운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놀러 온 나를 위해 숙소 예약은 물론, 펜실베이니아 랭커스터의 루미나리에 빛 축제와 크리스마스 공연, 아담한 레스토랑까지 세심하게 짜인 일정은 완벽했다. 화려한 뉴욕의 불빛과 차분한 메릴랜드의 마지막 밤 속에서, 그는 나를 편안하게 하고 싶은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꼭 고백하리라 마음먹었다.”
뒤늦게 그가 털어놓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불빛만큼 반짝이던 그 마음은 결국 이별 앞에 멈추고 말았다. 나 역시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그의 적극적인 모습이 이제 곧 떠나야 한다는 현실 때문에 버겁게 다가왔다. 결국 이번 여행에서도 우리의 관계는 남녀로 발전하지 못한 채, 다시 엇갈려야 했다.


가까워졌지만, 다시 엇갈린 우리

여행은 우리를 가까워지게 만들었지만, 현실은 늘 우리를 갈라놓았다. 뉴욕의 화려한 무대, 시애틀의 잔잔한 빗소리, 메릴랜드의 고요한 밤 속에서 그는 언제나 곁에 있었지만, 우리는 끝내 ‘사이’를 넘지 못했다.

그렇게 흘러간 시간 속에서 결국 그는 내 곁에 남았다. 지금은 남편이라 부르는, 내 인생의 동반자로.
그때는 왜 그토록 서툴고 머뭇거렸는지, 이제는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다.
돌아보면 뉴욕과 시애틀, 그리고 메릴랜드의 마지막 밤은 모두 우리의 연애 예행연습이었다. 결국 그 모든 길이 지금의 우리를 부부로 이끌어준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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