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미국 남자 엄마의 마지막 부탁
2016년 여름, 나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있는 국제학교에서 유치원·초등 교장으로 새 출발을 하게 되었다.
설레면서도 무거운 책임감 속에 맞이한 새로운 땅. 그곳에서의 삶은 치열하고 바빴다. 방학이 되면 자연스레 한국으로 가족을 만나러 갔고, 미국으로 돌아가 남자를 만날 여유는 좀처럼 없었다. 우리의 인연은 가늘게 이어졌지만, 다시 같은 길을 걸을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그 사이 남자는 미국에서 점점 자리를 잡아갔다. 직장에서 인정받고, 마침내 영주권을 받을 날도 가까워졌다. 부모님도 오랫동안 미뤄왔던 한국의 재산을 정리하고 미국에 집을 마련하면서, 남자의 하루하루는 안정 속으로 들어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 모든 평온을 무너뜨리는 소식이 찾아왔다.
남자의 어머니가 암 3기 판정을 받은 것이다.
그 순간부터 남자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저녁이면 병원으로 달려가 간병을 맡았다. 병원 대기실에서 보내는 긴 밤들, 퇴근 후 지친 발걸음으로 다시 병원으로 향하는 날들, 그리고 매일 조금씩 쇠약해져 가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느낀 무력감. 3년이라는 시간은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처럼 길고 고단했다. 남자는 종종 나에게 기도를 부탁했고, 나는 그와 함께 눈물로 그의 어머니의 회복을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지막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낀 어머니가 아들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네가 늘 얘기하던 그 여자 있잖아. 두바이에 있다면서? 엄마도 네 마음 다 안다. 힘들어도 한번 가서 네 마음을 전해라. 네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냥 놓치면 안 되지 않겠니.”
남자는 당황하며 울먹였다.
“엄마, 지금 이 상황에 내가 어떻게 두바이에 가요. 비행기로 14시간 넘게 걸리는데…”
그러자 어머니는 잔잔히 웃으며 말했다.
“네가 나 간병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안다. 이제 추수감사절도 다가오니 일주일 정도는 특별휴가를 받아 다녀와라. 엄마 걱정은 하지 말고, 네 인생도 챙겨야지.”
그 말은 유언처럼 남자의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 하지만 엄마가 우선이었기에 그는 쉽게 그러겠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이 상황에 어떻게 두바이를 가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어머니는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다.
남자의 마음은 공허함과 후회로 가득 차 있었지만, 가슴속에는 여전히 마지막 부탁이 맴돌았다. 장례가 끝난 며칠 뒤, 그는 서랍 속에 넣어 두었던 여권을 꺼내 여행 가방을 열었다. 옷가지 몇 벌과 여자에게 줄 선물들을 챙기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엄마가 원하셨으니까, 이제는 가야 한다.’
그 무렵 남자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연락을 해왔다.
“혹시 두바이에서 열흘 정도 여행하며 지내도 될까?”
나는 그의 사정을 모른 채, 마침 휴일과 방학이 겹친다며 걱정 말고 오라고 반갑게 말했다.
“그럼, 얼마든지 와도 돼. 힘들었을 텐데, 쉬어가면서 여행도 하고 가.”
그 말은 남자를 위로하는 가벼운 초대였지만, 사실 그것은 그의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부탁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