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에서의 재회

셋이 된 여행 하나가 된 마음

by Hannah

그 남자의 마음

어머니의 장례를 막 치른 몸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두바이에 가 있었다.

파리를 경유해 스무 시간이 넘는 길고 지친 여정. 그럼에도 네 해 만에 그녀를 다시 만난다는 설렘은 그 모든 피로를 잊게 했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자리에 남은 건 텅 빈 집과 깊은 적막뿐이었다. 그러나 그녀를 다시 만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적막을 채워 주는 빛이 보였다.

긴 여행 끝에 마침내 도착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도 무너진 마음이 다시 세워지는 듯했다.

그 순간, 두바이는 내게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었다. 다시 살아가야 할 이유였다.


그 여자의 마음

하지만 내 마음은 조금 무거웠다. 이번 여행은 오롯이 둘만의 시간을 기대했건만, 현실은 달랐다.

가까운 친구가 며칠 전 허리를 다쳐 혼자서는 거동조차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 그녀는 나와 같은 학교의 CEO였고, 한국에서부터 오래 알고 지내던 영국 사람 크리스틴이었다. 휴가 내내 방에 홀로 남아 있을 그녀를 떠올리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결국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며칠만 같이 있어도 괜찮을까? 혼자 두기 미안해서…"

내 말이 혹시 그의 기대를 무너뜨리지는 않을까. 실망하게 하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그런데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곧바로 말했다. "당연하지. 힘든 친구를 보살피는 것도 중요하니까."

그 한마디에 안도의 숨이 흘러나왔다. 그는 언제나 내 마음을 먼저 헤아려 주는 사람이었다.


첫 만남과 낯선 셋의 여정

그의 비행기는 새벽에 도착했다. 나는 아픈 친구를 돌봐야 했기에 직접 마중을 갈 수 없었다.

대신 공항 근처에 숙소를 알아봐 주고, 아침 일찍 만나기로 했다. "미안해, 직접 마중 못 나가서…"

"정말 괜찮아, 이해해." 짧은 답으로 또다시 나를 안심시켰다.

그 순간 알았다. 이 여행은 우리가 계획한 그대로 흘러가지는 않겠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큰 의미로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아침 햇살이 두바이의 고층빌딩들을 황금빛으로 물들인 로비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그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도 나를 보자마자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상실과 장거리 비행의 피로가 겹쳐 있었지만, 그 위를 덮은 건 다정한 눈빛과 낮은 목소리였다.

"크리스틴, 이 사람이 미국에서 온 오랜 친구야."

"Nice to meet you. 많이 아프시죠? 괜찮으세요?"

영국인 친구와 함께 시작된 두바이 여행. 그는 금세 짐을 옮겨 주고, 크리스틴의 보폭에 맞춰 걸음을 조절하며 사소한 것 하나까지 세심하게 살폈다.

혹시 친구가 어색하지는 않을까. 계속 이야기를 건네고 분위기를 풀어 주는 모습 속에서 나는 변하지 않는 그의 선함을 다시 보았다.

2박 3일의 여정이 끝날 무렵, 크리스틴은 조용히 내게 속삭였다. "그 남자는 분명 너에게 마음이 있어. 게다가… 진짜 husband material 같아."

나는 웃으며 대꾸했다. "아무 사이도 아닌데, 무슨 남편감이야."

그땐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었기에 가볍게 흘려 넘겼다.


운명의 실

그때는 몰랐다.

두바이의 뜨거운 햇살 아래 시작된 이 작은 동행이, 단순한 돌봄을 넘어 훗날 우리 삶을 깊이 엮어줄 운명의 실이 되고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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